Masked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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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누군가가, 평상시보다 더 커져 있었느냐고 당시의 네 자지 상태를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고 답하겠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동요도 없었던 걸까.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너는 ‘초대’를 받아 본 적, 그에 응한 적은 많았지만 누군가를 초대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능숙해서 놀랐다. 대상이 친한 친구인 점까지도.
“인사해야지.” 물줄기 소리가 끊기고, 욕실 문이 열린 다음 실내 습도가 조금 오른 듯했다.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만. 너는 목줄을 팽팽하게 당겼고 나는 네가 힘을 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버텼다. 몸 안에 있는 장난감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물기가 남아 있는, 조금 찬 기운의 몸에게 너는 인사하도록 지시했다. “싫어, 안 할래, 싫어.” 내가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의 전부였다. 너는 낄낄 웃다가 팽팽해진 목줄을 거두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나.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고 태양이었으니까. 나는 이내 고분고분해졌다. “착하다.” 최근 BDSM 테스트 결과가 조금 달라져 놀랐는데 어쩌면 큰 원인이 너는 아니었을까. 네 손이 이끄는 대로 나는 네 발로 어기적거리다가 침대 위로 이끌려 올라갔다. 보이지 않아 추측할 수밖에는 없었다. 아마 네가 침대 헤드에 앉거나 혹은 누워 있었을 테고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벌어진 네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네 친구는 한동안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무언가 도자기를 빚는 장인인가 싶어 잠시 웃음이 샜다. 여전히 하나도 취하지 않은 채였다. 네 손은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집거나. 엉덩이를 쓰다듬던 네 친구가 몇 차례, 삽입을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짜증 반 감탄 반, 네 친구는 “아씨, 왜 이렇게 좁아.”했다. 너는 나를 돌아 눕히더니 네 벌어진 다리 사이 안에 나를 가뒀다. 그러니까, 안긴 모양새가 됐다. 쓰리썸은 그동안 딱 한 번이었는데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안겨서 박힌다는 생각을. 따뜻했다. 네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네 손을 꼭 붙든 채로 “싫어, 안 할래.” 여전히 칭얼거렸다. 이제 맞잡은 손을 빼고 네 친구의 몸을 밀어내려는데 너는 내 두 손을 한 손으로 붙들고는 “싫어? 왜? 걸레되기 싫어? 존나 좋잖아.”하고 어르고 달랬던 것 같다. “아, 씨발.” 아마 네 친구가 내 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 뱉은 외마디였을 걸.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안 하겠다며 발버둥치고, 그럴 때마다 너는 나를 더 꼭 안았던 것 같기도. 입 안을 헤집었다가 딸랑거리는 젖꼭지를 상기시켰다가 귓바퀴를 간질였다가, 음. 계속해서 무어라고 얘기했는데 뭐랬더라, “씨발년아, 싫긴 뭐가 싫어.”랬었나, “걸레되니까 어때?”랬던가, “우리 ㅇㅇ이-”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친구는 내 안에 사정했고, 그 때에도 내 눈은 가려져 있었다. 네 친구가 옷을 다시 입고 돌아갈 때까지도 나는 네 친구의 모습 중 그 어느 것도, 하다 못해 발끝도 보지 못 했다. “언제부터 벗고 있었어?” 내 기억의 마지막에는 네가 옷을 입고 있었다. 검정색 티셔츠.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너를 만졌을 때에는 맨살이었던가 싶었다. “너 침대로 데려오면서.” “친구분은 갔어?” “응. 무서웠어?” “아니, 너가 옆에 있잖아.” “응.” “너는? 또 부를 거 같아?” “음.” 대답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쩌면 대답을 대신해서 네가 나를 꼭 안았던가 싶다. 어느 새부터인가 너는 그랬다. 잠결에 뒤척이면 너는 나를 꼭 안았다. “팔 저리면 빼도 돼.” “안 저려.” “나중에라도.” “응.” 얼마를 뒤척이더라도 팔을 빼는 법은 없었다. 네 팔에 피가 잘 도는지 걱정돼서 종종 팔을 주무르면 너는 손끝에 내 손이 닿기가 무섭게 손을 잡았다. 그러면 나는 그 손을 내 가슴팍으로 가져오고, 너는 내 등 뒤에서 귀에다 소리나게 쪽쪽거리고. 그렇게 꿈나라 중간중간을 같이 뛰놀았던 것 같다. 다음날 이르게 일정이 있었다. 누군가를 두고 일찍이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은 언제고 미안한 일이었다. 뒷전이 되는 것들에게 기실 나는 미안했다.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어서 차라리 미안하지 않음을 택했던 것이었다. 이제는 사진과 동영상과 돌멩이로밖에 남지 않은 내 예쁜 고양이에게 나는 매일을 미안하다고 울었다. 사료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자기 전 버둥거리는 말랑한 몸을 끌어안으면서, 퇴근하고 현관에 주저앉아서 나는 그 애에게 매일 같이 빌었었다. 살려달라고 그랬다. 앞으로 딱 10년만 같이 살아달라고 그랬다. 10년 뒤에는 나도 혼자 꼿꼿해질 테니까, 10년 뒤에는 아마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러니까 네가 필요 없어질 10년 뒤에는 죽어 줘도 좋다고 그렇게나 간절했었다. 그 때에는 아무 미련 없이 보내 주겠노라고. 감정은 전이된다. 사람 간에만 그런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목놓아 우는 날에는 꼭 다가와서 내 정강이를, 어깨를 작고 따뜻한 발로 쓰다듬었다. 자려고 누우면 꼭 옆 베개 위에 웅크려 앉아서 발톱으로 얼굴을 살살 긁었다. 정수리와 머리칼을 성글게 빗어줬다. 추운 날엔 품을 파고들고 더운 날엔 가랑이 사이에 둥지를 틀었다. 10년만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그 날은 내 눈을 한참이나 바라봤었다. 아주 작고 가느다랗게 울었었다. 야옹. “응, 예쁘다. 귀엽네.” 가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주면 너는 꼭 그랬다. 아마 너도 좋아했을 걸. 걔도 너를 좋아했을 거고, 너도 걔를 좋아했을 걸. 누구나 좋아했으니까. 모두에게 사랑 받았었다. 평상시에 걸리는 준비시간보다도 조금 덜 걸렸다. 네가 깰까 조심했는데 역시나 네 잠귀는 밝았다. 바지가 부스럭거린 탓도 있었을까. 너는 버릇처럼 양팔로 양다리로, 사지를 이용해서 나를 안았다. “몇 시야?” “7시 10분 전.” “안 피곤해?” “괜찮아.” “마스크 끼고 나가.” “마스크 왜?” “새벽에 기침 엄청 심하게 했어.” 아, 맞다. 그랬다. 그 날은 옷이 얇았던 탓인지, 여러 차례의 운동으로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했던 탓인지, 아니면 바람이 강했던 탓이었는지 자는 도중에 크게 기침을 했다. 침사레가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곧장 다시 잠에 드는 바람에 내가 새벽녘에 기침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혼자 잘 때에도 나는 자주 침사레에 들려서 기침했고, 또 자고 일어나면 그걸 다 잊었었다. “마스크 끼면 가습 효과 있대.” “응, 고마워.” “가방 옆쪽에 있을 걸.” “음, 가는 길에 편의점 들러서 사 갈게.” “조심히 가.” “맞다, 고구마. 출근해서 먹어.” “고마워.” 주말의 이른 오전, 엷은 안개가 차가웠다. 비가 오려나. 3장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 마스크가 도무지 생경했다. ‘나 말 잘 듣지 ㅋㅋ’ 사진. 처음 만났던 바로 다음날이었나, 팀원들과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뭐라고 카톡을 보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네가 보내온 것은 사진이었다. 헬스장 거울 셀피. 웃음이 났었다. 네가 내 마스크 낀 사진을 보고 웃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생각했던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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