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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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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무실로 가면 이제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네 자리로 뚜벅뚜벅 찾아 간다. 모니터 세 개를 번갈아 보는 얼굴이 왜 섹시한지 나는 아직도 그 구체적인 이유를 알지 못 한 채로. 파티션 너머로 멀뚱히 바라보는 게 한 5분 남짓. 성큼, 네 무릎 위에 마주 앉아서 언제 놀아줄 거냐는 물음을 대신하는 눈치를 주면 너는 그제야 내 몸을 더듬는다. 글을 적으면서 이제야 생각했지만, 네가 내 몸을 더듬지 않으면 조금 서운할 것 같기도.
“배가 단단하네. 브라 안 했어?”
“아니.”
하긴 했지. 그런데 착용하나마나, 브래지어의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 와이어와 옆밴드, 그리고 어깨끈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젖꼭지를 가리는 용도는 전혀 충실하지 않는 브래지어.
너는 믿기지 않는다는 음흉함 반 놀라움 반의 얼굴을 하고 내 가슴을 연신 쓰다듬었다.
“볼래?”
그리고 씨익 웃는 건 나였을까. 너도 웃었던 것을 보면 우리는 거의 동시에 웃었을지도.
너는 형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쪽을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보다도 네가 더 잘 알았다. 아마 창 밖 맞은편 건물 쪽으로 눈을 두었던 것은 어쩌면, 나에게 긴장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응. 보여줘.”
나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순식간에 위아래로 펄럭거리고는 혀를 샐쭉이 내밀었다. 바로 코 앞이었다곤 하지만, 내 브래지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그 찰나의 순간만 가지고서는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고 하더라도 캐치하지 못 했을 걸. 이제 내 웃음이 조금은 얄밉게 보였을까. 너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을 조금 세게 쥐었다가 이내 풀어 주었다. 그것은 아주아주 작은 형벌 같은 거였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치. 그럼 나는 점점 더 큰 잘못을 하고 싶어졌다.
“팬티는 안 입었어.”
“그래?”
넌 시큰둥했다.
“이건 안 보고 싶어?”
“음.”

너는 내 손을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아주 시끄러운 고깃집이었다. “여기서 살아남기는 어렵겠다.”고 던진 내 개소리에 너는 “살아남았다는 것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라고 맞받아쳐 주었고.
“병원에서는 뭐래?”
“음. 얘기 엄청 많이 했는데, 뭐부터 알려줘야 하지.”
“천천히 다.”
“천천히 다? 일단 약이 바뀌거나 하진 않았고…….”
내 조바심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거. 누군가의 염려와는 다르게 나는 약물의존도보다 관계의존도가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거.
“결혼할 사람 찾아 보래.”
곧이곧대로 말을 전하는 것이 너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그 어떤 부담도 없이 그냥 문자그대로 전해졌기를 바랐다. 과연 그랬는지 넌 별스러운 대답이 없는 채였다.
고기 한 근을 주문하는 너를 보면서, 그리고 라면 한 그릇과 함께 다 먹어 갈 무렵, 배부르다고 탄식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웃었다.
“대체 고기 2kg는 어떻게 먹을 생각이었던 거야?”
너는 조금도 머쓱해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 눈에는 3근이 넘는 고기 한 팩을 집어들고 구석구석 샅샅이 노려보던 네가 선연하다. 그리고 집에 와 랩을 풀었을 때, 검게 변한 부분을 보면서 신선도를 탓하던 모습도.
“산소랑 오래 안 닿으면 일시적으로 검게 변하기도 하나 봐. 공기중에 다시 노출시키면 빨개질 수도 있어.”
“어, 그렇네?”
대체로 너는 다방면에서 아는 게 많았는데 그 날처럼 가끔 허술함이 보이면 그건 또 그대로 웃겼다. 이를 테면 설거지 후의 기름기가 여전한 접시들 같은 거.

“노팬티는 그닥.”
“왜?”
“얼마나 젖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잖아.”
“너 진짜 개씹변태야.”
“응. 싫어?”
아니, 존나 좋아. 그 말 대신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춰서서 까치발을 들고는 잡고 있던 손으로 너의 얼굴을 감쌌다. 네가 고개를 뒤로 빼거나, 아니면 턱을 크게 벌리는 걸 막으려고. 근데 네 혀가 갑오징어마냥 내밀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엑.”
입술에 묻은 네 침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너를 흘겨봤다. 너는 흡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개씹변태스럽게도.


너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 어떤 주문도 없었다. 이를 테면 어떤 옷을 입어달라거나, 신발의 형태 같은 거, 심지어는 속옷들조차도. 내가 머리를 자를지 말지 고민할 때에도 너는 묵묵했을 뿐이었다. 3년 전의 동영상을 보고나서 그제야 “짧은 것도 잘 어울리네.” 했다.
그래서 내가 네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민해야 했다. 티백을 입었던 날, 내 면전에서 코에 파묻고 킁킁거린다거나 아니면 후줄근하게ㅡ네 말에 따르면 일본 사람처럼ㅡ 입고서 산책을 한 날에 네 웃음이 좀 더 늘었다거나 하는 징후로. 물론, 너의 입을 거치지 않은 내 의견은 단순히 짐작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그러고 보면 너는 그 어떤 코스튬에도 상황에도 별다른 페티시가 없는 듯했다. 이것저것의 선택지를 여러 개 꺼내어 주더라도 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한 번 눈을 반짝였던 순간은 다름 아닌 임산부. 그러면서 덧붙이던 말은 이랬다.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임신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섹스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조차도 성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 오는 흥분 아닐까?” 아마 그 날 내 대답은,
“흥분하면 안 되는 상황이 제일 꼴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웃음 참는 게 엄청 힘든 것처럼. 고속버스나 지하철, 회사, 영화관, 도서관…….”이었을 걸.
그리고 너는 그것보다 한참 전에 얘기하기를,
“존나 꼴려서 발정나 있는 거 보고 싶어.” 그랬다. 아마도 그 날이 네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이었을 걸. 아, 나는 네 친구를 못 봤지만 말이지. 네 말에 의하면 그 날 나는 발정이 날 대로 나 있었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 너는 “코르셋 입어 줘.”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이 주문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웠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함께 내어 온 서비스로는 네가 유독 크게 반응했던 앞이 없는 브래지어와 가터벨트였지. 그런데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조거팬츠, 백팩 차림의 속에 그런 차림을 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집에서는 알기 힘들었던 거. 백팩의 끈이 티셔츠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타이트해진 가슴깨가 걸을 때마다 출렁거렸다는 거. 젖꼭지의 윤곽을 가리기 위한 의료용 테이프 마저 없었다면 그 날 마주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처럼 나를 ‘노브라’로 인식했겠지.

그 날 너는 평소보다도 나를 더 거칠게 다뤘다. 어쩌면 이건 내 주문 탓이었을지도.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마음대로 다뤄주세요.”
“존나 아무렇게나 걸레처럼 해도 돼?”
“응, 노예처럼.”
“발정난 정액받이야?”
“네, 제 보지 안에 주인님 정액 엄청 싸주세요.”

도중에 척추가 반으로 접힐 뻔해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놀랐던 것, 치렁치렁해진 머리카락을 묶지 않은 탓에 내 등 뒤로 머리카락이 모두 깔려 버려서 수습하느라고 잠시 집중을 흐트러뜨렸던 것을 제외하면 제법 오랜만에 한 섹스는 아주, 아주 좋았다.
특별히 하나를 꼽자면 아침에, 오줌이 마렵다고 연신 칭얼거리는 와중에 너는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평소보다 짧은 이동반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좋았다. 비유하자면 공기 펌프 같았다. 안에서 계속 부풀고 부풀다가 펑 터져버려서는 내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연달아서 세 번을 느끼고 나서는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고, 너는 한참이나 뒤에야 나를 놓아줬다. 해파리처럼 침대 위에서 흐느적거리는 나에게 네가,
“오줌 이제 안 마려워?” 하고 묻고 나서야 나는,
“아 맞다!” 하고 화장실로 달음박쳤고.
네 정액은 왜 항상 맛있을까. 변기에 앉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르가즘을 잔뜩 느낀 직후의 방뇨는 왜 또 그렇게 다디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가끔이지만 이렇게 변기 위에서 부르르 떨고 있을 때에 네가 씨익 웃으며 들어와서는 아직 채 다 가라앉지 않은 자지를 입에 물려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코르셋 안 불편해?”
“음- 감수할 만한 불편함이야.”
“그렇군.”
“나 오늘 좀 신나 보여?”
“응.”
“응, 내가 느끼기에도.”
“날씨 좋다.”
“응, 좋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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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4-06-02 10:45:05
소설인가요? 경험담인가요? ㅎㅎ
익명 / 소설일걸요? 헤어지셨다고 바로 얼마전에 글 봤어요
익명 / 본문 작성자) 왜 궁금하신지가 궁금한데 ㅋㅋ 저는 경험담일지라도 함께 겪은 게 아니라면 읽는 입장에서는 어느 글이고 소설과 다를 게 뭘까 싶습니다만 ㅎㅎ
익명 / 그렇겠군요 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
익명 2024-06-02 10:09:39
예뻤다
익명 / 어 아는 분이실까요 ㅋㅋ
익명 2024-06-02 04:39:41
좋은밤이네요^^
익명 / 밤이라기에는 꽤 야심한 시각이었어요 ㅋㅋ
익명 / 그럼에도 어둠은 짙게 깔려 있었고, 그 시간에 총총히 빛나고 있을 별들과는 상관 없이 저는 님의 글을 정독할 수 있었고, 그 좋은 밤에 읽는 글들은 쉽게 집중되고 좋은 환경이였던 것 같아요. 충분히 '좋은' 밤이였다고 생각해요. 야.심 해서 더 좋았던^^ /// 다음 글을 기대하는 건 무리 일까요? 되도록이면 이날 같은 야심한 밤에 읽게 되면 더욱 좋겠네요.
익명 / ㅎㅎㅎ 말씀 고맙습니다 어제 늦게 뜬 달 예쁘더라구요 다음 글은 저도 확답 드리긴 어렵지만 쓰게 된다면 야심한 시각에 올려볼게요
익명 / 야심한 상상들이 겹쳐서 야심한 밤을 빛낼 수 있겠군요. 그 기대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오늘 부터 빌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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