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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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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보러 갈래? 너 퇴근하고 이리로 오면 나도 정리하고 나갈게.”
“헐, 재밌겠다. 나 뭐 챙겨 가면 돼?”
“그냥 오면 돼.”
경험으로 비롯했을 때 ‘그냥’이라던가, ‘무조건’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나 상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아무나라도 필요했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베풀어지는 호의인 듯 보이더라도 결코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베푸는 것은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노파심에 묻는 건데,” 네 호의에 함의가 있을 거라고 단정했다.
“응.”
“뭐 너 바다 보면서 섹스하기, 그런 판타지 있어?”
“원양어선 태울까 봐?”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바다 보면서 섹스하는 것도 비현실적인데. 좋긴 하겠다.”
“그럼 나 그거 해야 해? 아무 조건 없이 몸만 떨렁떨렁 가서?”
“그럼 좋고.”
오히려 솔직해서 고마웠다. 아니라고 했더라면 나는 경계를 풀기 더 어려웠을 걸.
한바탕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정리가 됐다. 꼬막비빔밥은 나중에, 바다 보이는 벤치에서 회랑 소주, 숙소랑 해충기피제는 내가, 너는 운전. 아- 그러고 보니까 재작년 이맘때에도 바다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퇴근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럼 작년 이맘때에는 뭐했더라, 앨범을 뒤적거려 보니까 적응하는 데에 고군분투했다. 사진이 남는다. 물론 남는 게 사진뿐인 건 아니지.


하루는 네가, 아는 누구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래서 걔가 그 때 불면증이 생긴 거야.”
미안하지만 네가 이야기해 주는 ‘걔’한텐 관심 없었다.
“나도 있어, 불면증.”
“진짜 뭔, 별… 너 우울증 같은 것도 있고 그래?”
“오, 어떻게 알았어?”
“뭔 찐따 같은 건 다 갖고 있네.”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키 차이에서 오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너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봤고 이윽고 네 입에서는,
“그런 거 존나 의지박약 같아.”
“왜?”
“그냥. ‘난 안 된다’, ‘우울하다’, ‘외롭다’ 이런 생각만 하니까 자기가 진짜 그런 줄 아는 거 아니야.”
“그런가.”
“안 되겠다, 너는 내가 한 2달 정도 같이 있으면서 정신머리를 존나 개조해 줄게. 나랑 있으면 우울증 그딴 거 진짜 싹 고쳐져. 걔도 그랬어.”
“너 의사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불쾌 표현이었다.

불편이 불쾌가 되기 전에 표현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불편을 참다 보면 꼭 불쾌로 변모하기 마련이던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불쾌를 건네받는 일이 불쾌일 가능성도 높을 뿐더러, 불편을 초래한 줄도 몰랐다가 부지불식간에 불쾌로 변해버린 그것을 달갑게 받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니까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위해서는 불쾌가 되기 전, 참지 말고 불편일 때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네가 정신질환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나에게 불쾌였다. 불편은 아주 빠르게 불쾌가 되어 있었다. 건조한 들에 퍼지는 불처럼 내가 걷잡을 틈이 없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보는 눈 어느 구석에는 멋쩍음이 있었다. 그 멋쩍음 탓이었는지 너는 내가 끌던 카트를 빼앗아 갔다.

“이거 먹어. 하루에 하나씩 먹어.”
너는 계산대 앞에 비치된 대용량의 쌀과자를 집어들었다.
“나 군것질 안 좋아해. 너 집에 가져갈 거면 사고, 아니면 내려두고 와. 칫솔만 사면 돼.”
“너 다 먹어. 확인할 거야.”
너랑 내가 애정 관계에 놓여 있다면 상황이 좀 다르게 받아들여졌을까.
“안 먹어.” 내 고집을 나는 가끔 미워했다.
너는 “이런 건 당연히 내가 계산해야 하는 거야.”라며 날 쳐다봤지만, 난 네가 담아온 품목들을 결제할 용의가 전혀 없었다, 칫솔은 몰라도.
“그럼 내가 들게.”
“됐거든? 그냥 좀 가.”

집으로 가는 길에 네가 흩뿌린 불쾌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계단을 두 칸씩 오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 다르게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아무런 생각이나 말이 없을 수도 있겠고, “오, 엄청 빨리 가네. 안 힘들어?” 라거나, “평소에도 두 칸씩 올라가? 언제부터?”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다리도 짧은 주제에 그렇게 가면 뭐가 좋아?”라고 할 수도.
너의 말습관이나 표정, 걸음걸이, 모든 태도가 내내 불쾌했다.

결정적으로 너는,
“(생략)… 그러니까 나한테 우울하니 어쩌니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한테 가지는 불쾌함을 남김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내 우울을 너한테 전가한 적 있어? 혹시 어떻게 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처럼 들렸어?”
“너가 전달한 적은 없지.”
“전가 얘기한 거야, 전달 말고. 나 너한테 내 감정 책임지라고 한 적 있었어? 나는 너한테 감정적으로 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아직. 수면제 먹어도 잠 안 오니까 재워달라고 한 적도 없어. 우울증 얘기한 거, 아까 너가 마트에서 물어봤잖아. 찐따처럼 우울증 같은 거 있느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말했을 뿐이야.”
‘얘기하고 나니 후련했다’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일상의 대화였다. 너도 내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나도 저 말로써 관계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것들을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말로는 싫다 싫다. 박으면 어차피 좋아할 거면서. 너도 똑같아.”
그러게, 너는 싫었는데 섹스는 이상하게 좋았다. 자지에 박혀서 꼼짝 못 하는 순간이 좋았다. 내 무력을 타인에 의해 확인하는 게 좋았던 걸지도.

며칠 뒤, 너는 바다에 갈 수 없음을 고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너는 징징거리고 싶다고 말했다. 네 표현을 빌리자면 ‘앵겨서 찡찡거리고 싶다’고 했지.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생각하다가 네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놓쳤다.
어쩌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거든.
“너랑 나랑 싸우면, 둘 다 절대로 화해 안 하려고 할 거 같아.”
“왜?”
“둘 다 고집이 드럽게 세서.”
“맞아, 나 고집 세. 근데 화해하고 싶으면 화해하자고 해. 미안한 일 있으면 사과도 해.”
“난 죽어도 안 해. 상대가 굽혀야 그냥 좀 봐주는 편?”

차라리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던 그 날로 다시 돌아가서, 난 너랑 섹스할 의사가 없다고 못을 박았더라면.
네가 ‘여태 안 먹고 뭐했냐’던 쌀과자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한 개 먹고 말았다. 그리고, 하루에 하나씩 먹었는지 확인하겠다던 너는 아직-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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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4-09-08 06:24:11
조만간 연락이 올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쌀과자가 궁금해서 저는 연락 할 것 같네요^^

쌀과자, 잘 드시고 계신가요?
익명 / 이 글 올린 날 다시 먹어 봤는데 여전히 제 취향이 아니었고 ㅋㅋ
익명 / 한번 더 시도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니라면 괜한 수고는 하실 필요는 없겠죠. 대신 한번 더 시도를 해본다면 마음은 조금 편해지셨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햇살이 좋은 휴일에 느즈막히 기지개를 펴고 잠시 이 곳에서 수다를 떠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쌀과자를 대신 할 좋은 '꺼리'가 있는 휴일 되십시요^^
익명 2024-09-08 01:03:39
더없이 우울한 건 남자 같아
익명 / 비슷한 생각
익명 2024-09-07 19:48:46
남자 별로네요. 너 뭐 돼?
익명 / 뭐 되는 사람이긴 해요 ㅋㅋㅋ
익명 2024-09-07 03:25:03
rude...
익명 / Umm
익명 2024-09-06 23:05:48
쌀과자 살찌는뎅
익명 / 살은 내가 찌징
익명 2024-09-06 22:47:54
어우....남자분 너무 무례한데요....? 섹스가 아무리 좋아도 .....저라면 애초에 저분과 섹스를 할 일이 없을거같네요.
익명 / 글에서도 언급했듯 남자가 가진 뭔가 매력이 있었겠죠
익명 / 저는 님이 아니니까요 ㅋㅋ
익명 / 아...ㅎㅎ 죄송합니다ㅠ 님 의견을 반박하는게 아니라 제 사견으로 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남자를 욕보이게 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ㅎ 추억을 회상하는 느낌으로 작성한것 같아서 제가 보기에 남주 여주가 다른 성격과 가치관으로 일어난 헤프닝 같이 보여서 쓰니 입장에서 생각하고 댓글 단건데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익명 / 본문 작성자) 아 헐 죄송해요 헷갈리셨겠다 바로 위에 덧글 남긴 거 저고 원댓글 작성자님께 드린 얘기예요 ㅋㅋ 죄송하실 필요 없습니다
익명 / 본문 작성자) 좀 퉁명스러웠나 싶어서 덧글에 덧붙이자면, 저도 원댓글처럼 무례하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그게 그 친구의 방식이겠거니 했어요 ㅎㅎ 회상이든 결례든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썼을 뿐이고 감상이야 각자의 몫이니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ㅋㅋ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까요 육교에서 계단을 두 칸씩 오를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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