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lty-Pleasur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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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기는 했지만 오래지 않아 일정 속에서 금세 잊혀진 답장을 지하철 안에서 받아 볼 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평상시였다면 의식하지 않는 척, 흔들리는 열차 속에 고스란히 엉덩이를 내맡겨겠지만 스마트워치에서 짧고 얕은 진동이 두 번, 이른 아침에 문자를 보내 올 곳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마’ 사람은 당황하면 으레 온몸이 얼어붙는다고들 하지. 나라고 왜 그런 적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당황하지 않은 척했다. ‘좋은 건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참는 게 아닌데’ 일순간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열차가 실내 또는 지하를 지날 때 창밖이 어두워지면 괜히 휴대폰 속을 들여다 보거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 날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뜨거웠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했다. 나든 그 사람이든, 둘 중 누구 하나는 먼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의 전원을 켜는 것과 동시에 가방을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얼굴이 얼마나 빨개져 있는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소 서둘러서 문을 닫고 입고 있던 바지와 팬티를 우악스럽게 내렸다. ‘찰칵’ 휴대폰 촬영음에 놀랐다. 찰나의 순간에는 다른 칸에 있는 누군가에게 불안감을 야기했을까, 닫혀 있던 칸이 있었던가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런 텍스트 없이 사진 한 장을 전송했다. 그 사진이 과연 ‘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사진을 받아보기도 훨씬 전부터 혼잡한 지하철 속에서 다 알고 있었을 걸. 이제는 답장보다도 출근을 더 기다리게 됐던 것 같다. 퇴근하자마자 퇴근이 하고 싶었던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출근하자마자 출근이 다시 하고 싶었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을 어떻게 손에 잡았으며 밥이 코로 넘어갔는지, 무슨 정신으로 퇴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날에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랄까, 어둡고 크고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사실은 수면제에 취해 얼마나의 대화를 했는지 내가 기억을 하지 못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관계에서 전화를 거는 건 내가 술이나 약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마도 “나 혼자 하려는데 잘 안 돼.”웅얼거리며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을 걸.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내가 잠에 잘 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짜 연민이나 과장 섞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는 것. “나는 잘 자는데. 머리만 대면 자.”라고 말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던가. 아무렇지 않은 일에 아무렇지 않지 않은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반응해 주는 그 사람에게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서로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고 해서 서두르거나 조급해지지는 않았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내가 탄 지하철보다 먼젓번의 열차를 타고 출근한다고 했다. 늦잠을 자게 됐을 때 탔던 것이 내가 탄 열차였고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우연히)내 뒤에 서게 됐을 때 내 반응이 재밌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열차를 탄다고 해서 지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힘주어 말하던 것이, 아무 엉덩이에게나 자지를 들이대는 미친 새끼는 아니라고 했다. 물어 오기를, “너는 자지면 다 꼴려?”했는데 하필 내가 대답을 아주 잠깐 망설였던 게 그 사람에게 어떠한 트리거로 작용했을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의 기준에는 많이 늦었겠지만 “아니야.” 나는 수습했다. 물론 그에게 나의 “아니.”는 “존나 응.”이었겠지. 언젠가 일정이 비슷하게 겹친 적이 있었다. 야근을 마친 퇴근길이라고 했었나, 아니면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나는 친구와 함께 초대 받았던 독서모임에 다녀 가는 길이었다. 그 때에도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몰랐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물어 오는 ‘어디니?’에 내 위치를 전송했다. 우연을 가장한 건지 그건 지금도 알지 못 하지만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열차를 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친구의 목소리가 저 멀리로 희미하게 들렸다. ‘가방 예쁜 거 멨네’ 그 두근거림이 조바심이었는지 두려움이었는지 아니면 성적 흥분이었는지, 이외에 다른 데에서 기인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모든 게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지켜보고 있다는 거, 그 사람이 알게 되면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집까지 따라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불안과 떠오르는 어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친구와 같은 역에서 내리는 것은 어쩌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주변을 살피면서 ‘저 사람이면 좋겠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자지를 복기했다. 양가감정.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흘러 하차할 역이 가까워 오자 나는 친구와 함께 출입문 앞에 섰고 그 사람은 다시 내 뒤에 섰다. 출근할 때만큼 바짝 붙지는 않았지만 창밖은 어두웠다. 그 날 처음으로 모자 쓴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어둡고 희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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