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통 공감을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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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치기엔 저도 좀 걸려서 언급되는 것들에 대해서 변론을 해볼게요. 아 그리고 전 원래 익명에만 씁니다.
일단 아무리 자본주의를 살아간다지만 여러 리스크를 짊어지고 섹스장에 나온 여성에 대한 배려를 돈으로라도 대체해야 하지 않겠냐는 데에 전혀 공감할 수가 없네요. 물론 동등하지야 않겠지만 그 이전에 선택의 문제가 있고요, 거기서 더 들어가 보자면 욕망의 문제가 있어요. 게다가 결심을 했다 한다면 자신의 욕망을 누릴 권리를 여성에게 돌려줘야 함이 맞지 않을까 싶고, 그래야 더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해 질 기회도 갖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또 정작 그런 리스크 앞에 남성이 해야 할 일은 돈의 준비가 아니라 혹시 모를 일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마음의 준비 아닐까 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리스크 헷징을 돈 따위로 한다는 것 만큼 미련한 짓은 없는 것 같네요. 더군다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가정한다면 더 참여적인 쪽이 더 충실할 수 있게 마련 아닐까요. 그렇다면 욕망의 만남에서 비열함을 꺼내든 몇몇의 얘기는 리스크를 짊어진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존중을 표해야 하는 게 맞을 테고, 어찌보면 되려 동등한 입장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깃장이 놓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남성이 해야 할 일은 여성의 지불 기회도 열어 놓아야 함이 맞을 테고요, 그렇지 않다면 되려 리스크의 틀 안에 가두는 억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 어떤 리스크를 떠나 욕망의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불균형이 편력적 성별 중심 사회를 가져 온 것 아닌가요. 그리고 이미 세상에서 거머쥘 수 있는 부의 차별은 운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는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무언가 쟁취하라는 말은 누군가에겐 착취이자 소진이고 박탈일 수 있지 않겠나요. 알파는 권력이 아니라 공감이라고 동물 행동학적으로도 이미 증명이 됐는데 왜 우리는 이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봐야 하나요. 그리고 뱃지. 물론 달라고 한 적 없으니 응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근데 그게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해서 왜 본질적으로 성매매가 되어야 하나요. 그런 논리라면 뱃지 보내는 사람들의 호응을 에피타이저로, 그 자신을 노출한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어떤 대상으로 만드는 걸까요. 차라리 그렇게나 꾸준히 관심을 보였는데 대꾸 한번 안 해주냐는 서운함과 투정이 난폭하게 변한 태도 그 자체를 지적함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성매매의 부정적 시각의 본질이 보편적인 존엄의 요구라면, 그게 일부 취향과 회복의 근간이 되는 경우를 상정할 경우엔 언급하지 말았어야 할 부분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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