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lty-Pleasure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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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옷을 벗거나 벗기는 경우
2. 옷 속으로 손을 넣는 경우 3. 상대의 입 안에 신체 일부를 넣는 경우 우리는 벌칙을 수행할 조건을 정리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수면제를 먹고서 벽을 보고 옆으로 누워 그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또 나한테만 적용되는 조건 하나, 얼굴을 보지 말 것.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한 오르페우스에 견줄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더 재밌기 위한 조건이라면 뭐든 좋았다. ‘현관문은 열어뒀고 공동현관은 [동영상] 이거’ 가끔 배달기사님들이 공동현관을 잘 못 여는 경우가 있더라고. ‘찍으면서 젖었을 거 같은데’ ‘[사진] 어케 알았어’ ‘ㅋㅋㅋㅋㅋㅋㅋ 잘했어 예쁘다’ 수면제를 복용하더라도 매번 졸리지 않았다. 컨디션에 따라서 일일최대허용치를 먹었더라도 1시간이 넘도록 잠에 들지를 않아서 보조제를 먹고 나서야 겨우 잠드는 날이 있기도 했고, 수면제를 하루 반 알만 복용하거나 아니면 전혀 먹지 않더라도 곧장 잠에 빠져드는 날도 있었다. 그야말로 수면장애였다. 그 사람이 몇 시에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면제와 보조제를 한꺼번에 삼키고 곧장 담배를 피우러 갔었던 것 같다.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의 확률로, 그렇게 했을 때에 가장 쉽게 잠에 들었거든. 담배 한 개비를 빠르게 피우고서 집으로 들어와 이불 아래로 몸을 포갰을 때, 제습 기능으로 틀어둔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릴 뿐 벽을 보고 옆으로 돌아 눕더라도 전혀 졸리지 않아서 속으로 ‘좆됐다’만 거듭 되뇌었다. ‘너 왔는데 나 깨어 있으면 어떡해’ ‘어떡하긴 내가 재워주러 가는 건데 깨 있어야지’ ‘잠들어 있고 싶어’ ‘잠들어 있을 때 따먹히고 싶은 건 아니고?’ 음, 뭐든 좋았다. 몽롱한 상태에서 부스스 깨어났을 때에 조심스럽게 박히고 있는 상황도 꼴렸고, 팔베개를 한 채로 숨소리 들으면서 다독여지는 일도 편안했다. 배부른 섹스 후에 달게 잠드는 것도. 어떻게든 잠에 드는 건 좋았다. 그러나 내기는 내기고 벌칙은 벌칙이니까. 스마트워치로 수면을 추적하는 편은 아니지만 만일 그 날에도 내가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더라면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심박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알럿을 보내 왔을까. 여전히 얼굴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약에 취해,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리스크가 큰 만큼이나 큰 흥분이었다. 그 사람은 미리부터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언제쯤 도착할지 모르는 그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서 나는 등을 지고 두근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그 사람의 도착 예정 시각을 얼추라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긴장이 조금이라도 덜어졌다면 아마 곧장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긴장이 언제 풀렸느냐면, ‘[사진]’ 그 사람이 굳게 닫힌 우리집 공동현관 입구와 ‘[사진]’ 문틈이 살짝 벌어져 있는 현관문 사진을 일정한 텀을 두고 보내 왔을 때. 과연 긴장이 풀어졌던가.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나는 그 시점에 더 긴장했지 않았나 싶다. 답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응답 또한 응답이 되는 법이라고, 그 사람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었을 걸. 내가 사진을 확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아주 조용히 현관의 센서등이 켜졌고 곧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 도어락이 잠기는 전자음이 차례로 들렸다. 천천한 움직임으로 신발 벗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베개 아래로 넣고 자는 척을 했다. 곧장 들킬 걸 알면서. 가방을 내려두는 소리 역시 나지막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의 행동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밀봉하다시피 꼭꼭 눌러 덮은 이불이 천천히 들춰졌을 때 잠깐 숨을 참았던가. 내 등 뒤에 누운 누군가는 기척을 최대한 참으려는 것 같았다. 예컨대 숨소리랄지. 정말로 내가 잠든 줄로 믿고 깨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느껴졌다. 이불이 채 다 덮이기도 전에 가슴이나 둔부를 우악스럽게 주무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손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트막하게 술냄새가 풍겼다. “괜찮아.” 이미 알고 있던 목소리였다. 그제야 호흡기관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참았던 숨이 얕게 터지면서 잠든 척을 했던 게 탄로나 버렸다. “안 자고 있었어?” “못 자겠어.” “왜?” ‘꼴려서’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알량한 내 자존심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놈의 자존심. “말해 봐. 왜 못 자겠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사람의 손이 울대를 가볍게 주물렀다. 순식간에 오소소 소름이 퍼졌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어떤 대답을 듣든(설령 듣지 않게 되든) 괜찮은 거였을까. 그 손은 아래로 내려가서 이제는 어깨랑 팔꿈치를 쓰다듬다가 내 가슴을 가리고 있는 손을 찾아냈다. 손등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흥분할 수 있다는 걸 그 사람은 알고 그랬던 걸까. 팔베개를 해 주는 줄 알고 목을 들었다가 가벼운 초킹에 켁켁거렸다. ‘목 조르면서 멍멍 짖어 봐’ 통화하면서 자위할 때, 그 사람이 했던 지시였다. 그 사람은 내가 호흡하기 곤란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때에나 지금이나 킬킬 웃었다. “옷 속으로 손 안 넣었잖아. 그치?” 응, 그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또렷했다. 그리고 엉덩이로 느껴지는 자지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박히지도 않았는데 보지가 터질 것 같았다. 허벅지 사이가 미끄럽다 못 해 절여진 기분이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 새 나는 끙끙거리면서 말을 참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던 바지는 통이 넓었고 신축성이 좋았다. 그러니까, 벗기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내 맨살을 만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취할 수 있었다는 거지. 발목까지 덮고 있던 바짓단은 순식간에 젖혀져서 엉덩이를 드러냈다. “옷을 벗긴 것도 아니고. 그치?” 반칙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온다고 팬티도 안 입고 있으면 어떡해. 내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약올리는 사람에게 나는 뭘 할 수 있었을까. 강경한 거절의 의사가 없는 완력으로 그 사람을 저지하는 척 정도? 그 사람의 손을 붙잡았지만 아마 ‘존나 좋아’ 내지는 ‘더 해 줘’ 정도의 의사 표현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의 손이 드디어 앞으로 넘어와서 곱슬거리는 음모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움츠리고 있던 다리를 결코 노골적이지 않아 보이도록 아주 살짝 벌렸다. 갇혀 있던 습하고 뜨거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거의 동시에 그 사람은 내 바지를 벗겼다. 당시에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성적 흥분보다도 내기에서 지지 않았다는 쾌감이 우세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지 오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얼굴을 포함한 형체를 알아보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만질 수는 있었다. 뜨겁고 커다랬다. “아, 씨발 왜 이렇게 뜨거워.” 누가 할 소릴. 그 사람이 마침내 들어온 순간에 나는 다시 숨이 턱 막혀서는 무어라고도 답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지는 보지에 박혀 있는데 목이 메었다. “이상해, 잠깐만.” 그 사람의 기억력을 빌리자면 그 날의 나는 그랬댔다. 마치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처럼 토막들만 나열했다고. 정말로 그랬다. 그 사람이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장스탠드의 스위치를 베개 아래로 숨겨둔 것도 그 사람을 속이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스탠드의 선이 치렁치렁하게 바깥으로 노출되는 게 싫었던 거였지. 그 사람이 누운 베개 아래의 스위치가 눌려서 일순간 암흑이 깨졌고, 나는 조금 당황했었다. 그리고 그 당황은 곧장 흥분으로 다시 바뀌었다. 왜냐면, “내 얼굴 봤지.” 하고 나를 눕혀서 목을 조르더라고. 얼굴을 보기에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사실 그 때에는 얼굴을 못 봤는데 조금은 도발하고 싶었다. “어. 봤어.” 졸린 목에서부터 괴기스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씨발년아, 뒤질래? 일부러 그랬지, 너.” 나는 기침하는 와중에 있는 힘껏 혀를 내밀었다.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자지로 혼날 때가 제일 좋았기 때문에 나는 매번 혼날 짓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뚫어버릴 것처럼 콱콱 박아대다가도 뺨을 쓰다듬으면서, 벌어진 입에 침을 흘려넣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예쁘다, 괜찮아.” 하는 목소리가 나는 좋았고, 그렇게 다독이면서도 다시 괴로워 하는 나를 보면서 짓궂다 못해 악랄하게 웃는 게 꼴렸다. 섹스를 마친 후에 질염이 재발할까 무서워서 별다른 후희 없이 화장실로 도망치는 나를 붙잡고 세면대를 붙잡게 하고서 뒤에서 무참하게 박아댈 때에는 꼴린다기보다도 고마움이 더 컸는데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이만큼이나 나한테 꼴려 주는 데에서 오는 고마움’일까. “얼굴 보니까 어때.” “음.” 별 생각 없었다.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너도 나랑 별 다를 거 없는 사람이구나. 대단히 다를 거란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섹스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기대했더라면 크든 작든 실망은 분명했지 않았을까. 못생겼다는 의미는 아니고. “근데 너 뒤돌아 보던데.” “언제?” “친구랑 집에 간 날.” “친구?” “독서모임 갔다왔다고 했었나.” “아-” 바람 때문에 담배에 불이 잘 안 붙었었다. 뒤를 돌아볼 요량은 아니었다. “너 따라오고 있었어?” “응.” “왜?” “몰라. 그 날은 그러고 싶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싫어?” “응. 그리고 무서워. 안 그랬으면 좋겠어.” “너가 부를 때 아니면 안 올게.” 나는 부연 설명 대신에 새끼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사람은 이유를 묻는 대신에 고리를 걸었고. “이제 지하철 같이 안 타?” “응?” “섹스했으니까 지하철 안 타는 거 아니야?” “왜, 또 아침부터 존나 발정나 있는 거 봐달라고?” “싫음 말고.” “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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