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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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징크스 같은 거 없어?”
“글쎄.”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 특정한 조건에서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을 기억해야만이 징크스일 텐데, “기억력 안 좋으면 징크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라.” 너가 물었을 때만 해도 나는 내 징크스가 뭐더라- 눈알을 위에서 옆으로 두어 번쯤 굴리는 게 답변의 전부였다. 아! 기억났다, 내 징크스. 어젯밤엔 어떤 꿈을 꿨다. 가수 정인의 노래가 잔잔했다. 그의 대부분의 노랫말처럼 꿈속에서 들었던 곡도 애달프고 처절한 가사였다. 잔잔한데도 잘 들렸다. 네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는 메신저의 알림을 확인해 보니 나와 함께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다. 흐뭇하기도 전부터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 찰나에 프로필 사진이 사라지더니 다시 너랑 어떤 여자가 나란히 찍은 사진. 그렇게 열 몇 장의 사진을 넘겨서 보다가 너한테서 전화가 왔던가. “미안해. 나 너한테 거짓말했어. 여자친구 있는데 없다고 했었어. 한국에 있는 건 아니고 장거리 연애한지가 오래됐는데 권태기가 오던 차에 너를 알게 된 거야. 처음부터 속이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너랑 노는 게 너무 재밌어졌어. 여자친구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너한테 상처주는 건데 말을 도저히 못 하겠더라. 너랑 있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서 나는 여자친구가 싫어진 줄 알았어. 너 친구들이랑 놀러 갔던 주말에, 여자친구가 한국 왔었거든. 너도 있고 하니까, 헤어지자고 정리하려고 마음 먹고 만났는데, 그랬는데, 응, 못 그랬어. 존나 병신 같지. 욕해도 돼. 너가 예전에 그랬지, 거짓말해도 된다고.” “지금도 해도 돼.” “ㅇㅇ이랑 같이 있는 거 너무 행복했어. 지금은 거짓말 아니야.” “나도.” 꿈 속의 너는 울었고 꿈에서 깨어난 나는 담담했다. 꿈을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전남자친구도 꼭 같은 말을 했었다. 나랑 있으면 걱정이 잠시 사라지는 것 같다고 그랬다. Y는 휴식의 중요성을 알려주어 고맙다고 그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무개ㅡ아, H였다ㅡ는 내가 너무 순수해서 같이 있노라면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추함을 잊게 된다고 그랬던가.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까무룩. 꼭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그랬다. 자랑이 될 일은 결코 못 되겠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나를 거쳐갔는데, 그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됐다. 권태기가 있는 여자친구와 관계를 회복하게 되고, 아니면 훨씬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 결혼한 사람도 두어 명. 그러니까 내 징크스였다. 나랑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짝이 생겼고, 그게 내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 만남의 끝에는 대체로 새로운 시작이 함께였는데 그 시작을 나는 모르는 채로일 뿐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나는 그 시작들을 응원해야만 했다. 이게 내 지독한 외로움이 되어서 나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게끔 했던 거지. 너는 꼭 내 징크스를 알았던 것도 아니면서 꽤 오래 전부터 나한테 단단히 일러두기를, 사람 믿지 말랬다. 사람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근데 그 말은 꼭 너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암시나 주문 같아 보여서 그냥 “응.”하고 말았었다. 자기위로를 위한 개소리 몇 자 휘갈겨 본다면 어차피 연인이나 배우자는 있거나 없거나, 두 가지의 옵션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치 하나만 바뀐 것뿐이고 나는 ‘슬프고 외로운 나’를 타인으로부터 고립하기 위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거겠지. 특정하지도 않은 조건과 비슷하지도 않은 결과를 내 맘대로 얼기설기 기워 붙여 놓고는 징크스라고 말하는 게 어설펐다. ‘…… 이런 꿈이었어’ ‘울었어?’ ‘아니’ ‘울어’ ‘눈물 안 나와’ ‘꼬집어 그럼’ ‘싫어 아파’ ‘호해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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