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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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게 미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면 나는 모르긴 몰라도 이별 앞에서는 어른이 아님에 틀림없다. 다른 데라고 성숙한가 물으면 그것 또한 오래 뜸을 들이며 모호하게 답하겠지.
어릴 때부터 쭉 꾸준하게 눈물이 많았다. 화가 나서 울었고 억울해서 울었다. 어떤ㅡ불과 몇 년이 안 된 어느ㅡ때에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좌석에 우두커니 앉아 마스크 속에서 눈물을 낼름거렸다. 퇴사하고 나니 눈물이 그제야 멈췄다. 어떤 이별은 매번 나를 울게 한다. 이별의 첫 순간도 그러했고 이별을 주변에 전하면서도, 괜찮아진 줄로 알았던 부지불식간에 그 이별이 떠올려지는 순간에도 그랬다. 그런데 아무개들은 나의 눈물에 대체로 갸웃거리는 반응이더라고. 반응의 크기가 어떻든 공통되게 둥실거리는 물음표 앞에서 나는 이미 눈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나. 아, 내 눈물의 대부분은 혼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네 앞에서는 벌써 몇 번이나 울었는지 기억해낼 재간이 없다. 앞서 적은 이별을 복기하면서도 울었지. 내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날이면 꾸역거리며 참던 울음을 네 품 안에서 기어이 터뜨렸다. 이제 와 생각하지만 그 울음들은 너와 이별하게 될까 하는 불안이었으리라. 너는 내가 울 때마다, “왜 울어!” 하고 짐짓 놀란 목소리에 장난기를 섞었다가 “울어도 돼.” 곧장 등을 다독였다. 하염없이, 내 울음이 모두 멎을 때까지 등을 쓸었다. 누군가는 못된 생각이라며 나무라겠지만 아무튼 세상에 대가나 조건이 없는 게 얼마나 있겠냐는 굳은 고집은 변하지가 않아서, 네가 나를 가만하게 위로할 때에도 나는 무례하게도, 그 값을 스스로 책정했다. 고마움의 값은 어떻게 쳐야 하나. 앞으로 얼마나 더 갚아야 하나. 미안하게도. 희한한 일이지, 그렇게 운 날에 나누는 섹스는 여느 때보다도 훨씬 좋았다. 하마터면 사랑한다고 말할 뻔했을 정도로. 이토록이나 계산적인 나는 섹스를 위해 울지 않아도 될 일에 일부러 눈물지었던 적이 그간 전혀 없진 않은 것 같다. 가짜 울음이란다면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다만, 스스로 꾸짖고자 하는 점은 그것보다도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눈물을 남용했다는 거. 뭐가 됐든 결국 무뎌지니까. 언젠가의 네가 고백하기를, 내가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삼켰다고 했다. “그랬어?” 내 대답이 혹여 시큰둥하게 들리지 않았기를 바란다. 너는 그게 언제인지 스스로도 까마득하다며 말을 이었다. 그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와는 무관한 일들(집이나 일 따위)로 지쳤다는 핑계에 더해 네가 편해졌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짜증을 부린 날에는 혼자 누운 베개가 눈물에 젖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울었다. 너는 목소리만 듣고도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더라. 번번이 아니라 거짓말했다. 너는 다 알고도 속아 넘어간 거였겠지만. 언젠가의 내가 너에게 했던 말처럼 고함을 지르며 싸우더라도 너와 나의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믿음을 마음 한 켠에 뿌리 내리고 싶었다. 이 싸움으로 서로의 견해 차를 좁히고 선호와 비선호를 조금 더 분별해내서는 서로가 서로를 더 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믿음. 그래서 그 믿음을 너한테도 주고 싶었다. 관계에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면 믿음이 유효기간을 늘려주는 방부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로 무뎌졌다. 너랑 내가 우스개로 했던 말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까워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너는 꼭 내 감정을 전부 읽는 양, 아니면 과장을 섞어서 어느 한 켠을 공유하고 있는 양, 나와 아주 비슷한 속도로 좋아했다. 네가 나를 아끼는 게 내 눈에 보였고 내가 너를 예뻐 하는 게 네 눈에 보였댔다. 연쇄적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속도로 지쳐 갔던 것 같다. 조심스러웠고 더이상 편하지 않았다. 한 쪽에서 미안함을 건네면 다른 쪽에서는 미안함을 거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더이상의 걱정도 불필요해졌다. 어쩌면 눈물을 남용한 대가가 이거였을까. 아직 못 갚은 고마움이 수두룩한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언제에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별 앞에 울지 않으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덤덤한 척하는 이별은 이제 많이 지겹다. 그러고 보면 너는 나를 ‘아기’라고 자주 호칭했었네. 아직은 아닌 이별의 두어 발짝 뒤에서 궁싯거리는 생각들이 나를 조금만 더 차분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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