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클럽 : 속초 -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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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은 벚꽃이 만개한 날이었다. 레홀에 간간히 접속하던 나는 어느 날 긴 장문의 글을 써놓는 이를 보게 되었고, 별 감흥없이 선선히 읽거나 안읽으며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꾸준함이 결실을 낳는다고 했던가. 전혀 반응조차 없던 그의 글에 하나 둘 뭇 여성들이 반응하게 되었고, 급기야 섹스를 전제로하지 않아도 만나보고 싶다는 댓글도 달렸다. (솔.직.히! 나는 이부분이 매우 불만이었다!! 왜! 만나고 책 읽으면서 섹스하면 안되나! 음... 으음...농담...) 그렇게 왠지 곧 뭔가 만남이 성사될 것 같다는 촉은 강하게 오기 시작했다. 2. 벼락. 무슨 사전 공지도, 예고도 없이 천둥치듯 찾아온 모임 결성. 갑자기 사람을 모은댔다, 그것도 독서 모임. 코드네임 : '경기도.' 운동 모임을 비롯해서 글쓰기 모임도 가봤지만 거기는 죄다 섹스와의 견련은 1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섹스 농도 108%인 이 곳에서, 무제한 책 토의라니! 좋았다. 신청해야지? 아니야... 신청하지 말고 우선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까?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미끌거리는 뒷모습만을 남기고 사라지기 일쑤였지. 그 머뭇거리는 손가락을 때려잡고 무지성 신청을 눌렀다. 마이 코드네임 is 속초. 멤버들은 내가 속초에서 오는지 속초에 사는지 궁금해 했고, 심지어 묻고 싶다고도 은근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룰은 룰이다. 나는 익명으로만 남기로 했다. 코드네임을 고민하던 한 숙녀를 뒤로 하고 나는 그렇게 이 그룹의 막차를 탔다. 3. 오픈채팅 이 분들은 책만 읽어서 너무 순진한건가? 모임이 순연하면서, 처음부터 왠지 잘되어가는 분위기는 좋긴했다. 하지만 뭔가 살짝, 이상하기 시작했다. 익명이라지만 대놓고 오픈된 레홀 게시판에서 만남 장소등을 논의하다니. 사칭자가 떡하니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들 저러시지? 이곳은 정글이다 정글! 사주 경계하시라! 나는 모임의 보안을 위해서라도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충분한 의견 조율과 대략적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고 고민했고, 나름 방안의 하나로 오픈 채팅을 제안했다. 4. 평화. 리더인 코드네임 경기도의 추진력과 화끈함은 발군이었다. 순식간에 나의 의사는 수용되었고, 그녀는 깔끔한 일처리로 오픈 채팅방을 개설함과 동시에 입장 제한 또한 담백하게 걸었다. 암구어는 redH. 방에는 곧 나와 경기도, 아현이 자리하게 되었고 우리 셋은 잠시였지만 훈훈한 평화의 시간을 누리며 첫 인사의 설레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만해도 몰랐다. 이 곳, 레홀이라는 정글을 벗어나 독서를 기반으로 한 우리들의 작은 만남이, 지식인의 요람이자 휴식처라고만 믿으며 혼자 생글생글댔으니. 5. 인외마경. 분명, 아현은 자신은 민주주의자라고 했었다. 솔직히, 나는 독서 얘기만하면 자칫 지루해질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베이스가 레홀이니까, 약간의 섹드립(?)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모임에서 약간의 색적인 얘기를 해도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현은 다수의 소수에 대한, 특히 흡연의 폐혜를 예를 들며- 납득할 수 밖에 없는 논리를 들어 만장일치를 제안했다. 나는 논리적인 것에는 입장이 달라도 찬성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의견이 옳다고 여겼고, 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 60분도 지나지 않아서 발생하고 말았지...으..) 정동, 혜화, 영등포가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질 않는 것이었다. 첫 만남이었지만, 장문의 글을 쏟아내는 만큼 아현은 모임에서도 말수가 적진 않았다. 경기도는 타임손을 언급하면서 적절히 대화의 길이를 조율해 나갔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리더는 경기도가 썩 괜찮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 "아니,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안들어오지? 내가 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하나?" 라고 리더인 경기도, 그녀가 말했다. 그때만해도 나는 속으로 '무슨 조치?' 라고 속으로 되묻기도 전에, 리더 경기도는 레홀에 서비스 샷이라도 올려야 하나? 라고 과감한 멘트를 실시간으로 읊조렸던 것이다. 이게 농담이라고?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순간적으로 분위기는 점잖고 현학적이던 문체의 방에서 급속하게 새빨간 조명이 방을 드리우고 코를 간질이는 야릇한 향이 오픈 채팅방을 확확 채워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현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흐음, 그거 흥미롭네요." 라고 뱉었다. 분명히, 그런 뉘앙스였다. (설혹, 억울하셔도 이 글에 댓글로라도 부정하지 마시라 ㅋㅋ) '아니, 나한테는 만장일치 어쩌고 절차적 바리케이트를 겹겹으로 치던 양반이, 상대가 리더라서 권력에 굴종한것인가? 아니면 성별 권력에 굴복한 것인가? 당연히 소수인 나의 의견을 먼저 묻는것이 공정하지 않은가? 왜 리더 경기도에게는 지금 그런 발언을 하시기에는 - 여기 다른 분인 속초님도 계시니 속초님 의견을 물어보죠. 속초님 이런 수위, 괜찮으신가요?' 라고 물어야 하는것 아닐까? ....라고 이의를 제기할 새도 없었다. 실은, 나도 "으흥, 으흥, 오!, 어맛!" 이따위 추임새로 납작 엎드리고 있었으니까. -_-;; 1분정도 걸렸나, 경기도와 아현은 갑자기 브레이크가 풀린(아니 박살난)듯이 우리 모임의 출생 본산이 바로, '레홀' 이라는 것을 나에게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나에게 남긴 낙인은 '쑥맥'. 하...처음 6명에서 남3: 여3이었으면 오...1:1 매칭이 가능하겠는데? 이랬다가 남4여2가 되니까 잠시 실망했다가, 'ㅋㅋ 이러면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쓰리썸! 그리고 2팀이 되는건가?' 근데 이런 농담 던지면 식겁들 하시겠지? 역시, 이런걸 농담이라고 던져도 되는걸까? 독서 모임에서? 실례일 것 같은데...했었던 나의 응큼함은 어느새 그정도는 '예의' 수준으로, 처절히 박살나고 있었다. 그랬다, 정글을 피해 도망친 곳은 지식의 요람과 천국이 아니라 뜨거운 용암이 철철 넘쳐 흐르는! 새빨간 혀와 젖꼭지, 불뚝 솟은 육봉이 날름거리는 인외마경이었던 것이다. 6. 피폭. 대화 도중 혜화가 들어왔다. 그는 별 말이 없었다. 일을 한다며 곧 잠수를 탔다. 그리고 정말,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리고 몇 시간후... 또다른 이가 들어왔다. 그의 코드 네임은 "혜화". 브레이크없이 내달리던 기차는 갑자기 급정거를 했고, 엔진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결말을 현실에서 실시간으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의외로 아현은 덤덤했다. 자신을 사칭할 사람이 분명 있었을 수도 있을거라면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봤을때, 확실히 이 양반은 농담하고는 거리가 멀다. 아현을 사칭 하려면 아현만큼의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기껏해야 그가 내밭는 언어를 해독 정도만 가능한 수준인데도 아현을 사칭할 깜냥이 없는데, 누가 뭐하러 고난이도인 아현을 사칭하겠는가. 효율이 적은 일이다. 하려면 속초, 혜화, 영등포를 하겠지.) 그렇게 혜화가 당첨되었고, 우리는 빠르게 검증 작업에 돌입했다. 7. 폭파. 답은 꽤나 간단하게 나왔다. 레홀에서 자신이 작성한 댓글에는 휴지통 아이콘이 붙는다. 그것으로 검증하는 것으로 간단히 결론이 났다. 나중에 들어온 '혜화'는 깔끔하게 그 요구를 완성해 내었고 첫 '혜화' 는 그렇지 못했다. 그 와중에 옵챗의 노란 숫자는 빠르게 없어져 있었다. 그냥 들어오고 싶었다고 솔직 담백하게 얘기했다면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수용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침묵, 여튼 경기도는 첫 '혜화' 를 내보냈고, 곧 그와 동시에 입장 초기 경험이 불쾌했는지 두번째 '혜화'도 방에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아쉬움과 놀람이 반반 섞인 감정을 가득 안고, 나는 남은 경기도와 아현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달변이던 둘이 말이 없다. 둘 다 충격이 컸으려나, 방 안에서 독백하는 이가 나 하나 뿐이라니. 허나, 이번엔 느낌이 이상했다. 8. 다시 돋돛좇졷?을 올리자, 발항! 급하게 레홀을 찾았다. 경기도와 아현은 저격을 맞아 쓰러져 겨우 레홀로 귀환한 상태였다. 그랬다, 레홀은 어디까지나 '은밀한' 취미다. 역시 이 곳 아니면 나의 하이드를 풀어 낼 곳은 없구나. 둘은 입마개를 당한채로 꽁꽁 묶여 레홀로 반품되었다, 허허. 이젠 나는 솔직히 경기도, 아현, 정동외에는 믿을 수가 없다. 영등포에게는 아직 기회의 문이 열려있고, 혜화는 이제 첫 혜화인지 둘째 혜화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혜화, 아직 그가 화가 나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또 중간에 문을 박차고 나갈지 솔직히 걱정스럽다. 이 글로 인해 혜화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이 좋지 않아질 리스크가 있지만서도 이렇게 쓰는 것은, 나와 경기도, 아현은 찐 혜화를 발견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괏값이 나옴과 동시에 순간적인 그의 자리비움이 마음의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이 모임이 순항하여 추가 모집을 할 경우... 나중에 새로 들어온자가 첫'혜화'일 가능성이 없다는 게 담보가 될까? (그가 셜록 홈즈 빨간머리 연맹 정도의 지능자라면 더더욱 그렇겠다.) 하지만 독서 모임은, 그것도 홀딱 벗는 섹스를 얘기하는 레홀에서의 독서 모임은 상반된 기치인 지식과 본능을 함께 추구하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던가. 분명히 이런 상황에 대한 탈출구를 또한 모색하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익명을 보장하지만, 추가 모집이나 검증 및 공지의 수단으로 국내 메일인 네이버 메일로만 공지의 수단을 삼는다든지 하는 도구를 이용해서 말이지. 적어도 경기도, 아현, 정동은 가혹한 검증 시험대를 거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벌써부터 이 모임에 대해 상당한 내구력을 내비치는 분들이다. 뭐, 딜레이가 될 수 있겠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코드명으로 소통하는 이 단체(?)가 벌써 정들고 꽤 재미있어졌다. 지식에 목마른 자들에게 행동력이 부여되면 분명히 가만히 있지 못한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꼭 만나게 될 것임을 기대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ㅋㅋ 9. 후기? 이 글을 끝으로 더이상의 후기는 없다. (아직은 말이지...) 나는 결코 익명의 익명을 벗지 않을 것이다. 끝내주는 상대가 앞에 있다면, 어쩌면 옷은 벗어제낄지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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