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인간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을 상기하면, 정작 우리가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은 자유 그 자체보다 책임과 계약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유의 토대 위에 놓여 있다고 믿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가축화 한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오히려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꺼내드는 명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유는 환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나. 실질적인 자유는 오히려 어떤 관계의 지탱에서 비롯되며, 그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원천이 사랑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타인의 자유를 함께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기결정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개인의 고립된 선택권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사랑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갑작스럽지만 죽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도, 단순히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만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죽음은 명확한 계약, 다시 말해 모든 가능성을 수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한다. 그렇게 보면, 죽음은 무한한 선택지 앞에 선 인간에게 어떤 결정의 필연성을 부여하는,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해방’일 수도 있다.
결국 자기결정권은 자유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책임의 윤리, 그리고 죽음 같은 한계 속에서 비로소 실현 가능한 계약의 형식이 아닐까. 우리가 자유를 말할 때, 그 자유가 누구와 어떤 관계 안에서, 어떤 책임의 형태로 발현되는지를 함께 질문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결국 그저 말뿐인 허상이 아닌가 싶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