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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 밖의 허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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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별을 고했던 날 너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다고 그랬다. 사실 하늘은 그 날에도 그 이후로도 영영 맑거나 아님 흐렸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것처럼 우르릉거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화창할 것이다. 그 날 무너진 건 하늘이 아니고 아마 너와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노을이 예쁜 계절에.
흐지부지의 방법으로는 무엇 하나 해결되는 게 없었다. 너는 그것을 해결이라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내 욕심대로 나는 너에게 이해를 받고 싶었고, 그리고 비슷한 크기만큼의 욕심으로 너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이해의 시도는 번번이 무너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너와 나 사이에 교집합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그건 사소한 문제들의 덩치를 비대하게 만들기에 딱 좋은 구조였다. 문제가 문제를 야기했고 외면은 서로를 지치게만 만들었다. 너는 내가 되고자 나의 방식을 차용했고 이따금씩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되물었지만, 이미 너는 내가 아니고 너라서. 나에게 비춰지는 너의 기표는 이미 비아냥과 이죽거림에서 그쳐서는 더 나아가지를 못 했다. 너를 향한 이해의 시도는 아마 그 무렵 멈추었을 것이다. 이해의 시도를 멈춘 탓에 나는 너를 곡해했을 것이다. 나 역시 너의 흉내를 냈었다. 문제라고 생각되더라도 그 물음을 그쳤다. 너의 표현을 빌려, ‘쓸 데 없는 고민’들을 꿀꺽 삼켜댔다. 그렇게 해서 내가 기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결국 미끄러져서 내 경우에는 울화가 되던데. 역시 나는 너가 아니고 여전히 나라서. 너를 이해하고자 건넸던 내 호기심은 너에게 반기 드는 양상으로 가닿았었던 것 같다. 그 반기는 산산이 갈가리 부서지고 찢어졌다. 질문은 반문이었으며 평서문은 조롱 내지 함부로의 판단이 되고 말았다. 반문은?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댔다. 그 무렵 후기, 나한테는 ‘그렇구나’, ‘출근 잘했어?’, ‘점심은 뭐 먹었어?’ 말고는 할 수 있는 말들이 남지 않아 있었다. 내가 청할 수 있는 도움이라곤 겨우 너 아닌 AI에 그동안의 텍스트를 긁어 붙이고 나서, 대화상대의 성격과 심리분석을 부탁하고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할 거 같아? 어떻게 말해야 원만한 대화가 가능할까?’하고 감리를 맡기는 거.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반복적인 갈등 관계를 극복한 후 마침내 결혼하게 된 오랜 친구에게 그 방법을 묻는 것. 조막만한 머리에서 나온 해결책은 고루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ㅡ잘못된ㅡ입력들은 모두 오해로 출력되었다. 반복되는 갈등과 회피, 기권 선언과 반려, 무마 시도와 마지못한 호응, 사이사이 찰나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다시 의문들. 그들이 누적되고 또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때까지 뒤섞이면서 너와 나는 결코 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거의 동시에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랑 내 힘만 가지고서는 이 패턴을 깨뜨릴 수 없다고, 나는 무력감을 매일처럼 느껴야 했다. 또 매일같이, 아무렇지 않은 행복도 있었지, 분명. 좋았다. 그리고 절망적이었다. 타고 싶은 적 없었던 롤러코스터의 레일 위에서 매일같이 비명을 질렀다. 감정의 진폭이 이렇게까지 컸던 시기가 또 있었나. 너도 그랬을까. 고맙게도 너를 만나면서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의 필요성을 잠시 잊었었다. 수면제는 내성이 생긴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너랑 시간을 보낸 후에는, 너가 코를 골며 나를 와락 끌어안는 날에는, 수면제 없이 입면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다. 사건의 직전에는 4개월 가까이 가지 않았던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었다. 내가 너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하는 마음은 큰 오만이라서 우선 나부터 변화하고자 했다. 감정의 충동을 더 잘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고 내 표현으로 인해 너에게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불필요한 마찰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못 가게 됐지만. 갈등의 책임은 상호에게 주어지는 데에 반해 범죄는 일방의 결과다. 그 둘을 구분하는 작업부터 필요했다. 반복은 부디 갈등에서 그치기를, 범죄행위가 반복되는 일은 절대로 없기를, 그 뒤에 무력하게 용인하는 내가 없기를, 너와 내가 결코 괴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매사에 냉철한 척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은 (적어도 내 삶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속에서는)찾아볼 수 없었다. 내 경우에는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했다. 드러내도 되는 타이밍인지, 아니면 표현을 보류해야 좋을지. 좋아한다는 말을 그런 이유로 삼킨 일이 수 차례였고, 너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서 흡, 멈추는 일은 그와 비등하게 잦았다. 그러다 종국에는 그 빈도가 점점 늘었다. “신고자분 되세요?” 문자로 신고하면서 익명 처리를 부탁한지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에 도착한 경찰의 첫 마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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