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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조필의 철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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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애들과 겸상하지 않습니다] 영화 넘버3에서 송강호가 청부살인의뢰인에게 날린 명대사죠. 대사를 만든 제작진이 “얘들과 겸상하지 않는다.”는 말의 어원을 알고 썼을 까요? 조필(송강호 분)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캐릭터였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막연히 감칠맛을 위해 지른 대사는 아니었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폭력이 발생하는 난맥상은 이루 열거 할 수 없지만, 권위를 기반으로 한 관계 서열화는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할 겁니다. 대가족 시대 가장(주로 아버지)는 대체로 독상을 받았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을 따로 상차림 하는 것은 관행이었습니다. 관행의 시작은 조선시대부터였습니다. 조선은 농업국이었죠.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했고 대부분이 소규모 자작농 또는 소작농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족은 단순히 주거를 공유하는 관계를 넘어 소규모 생산집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장임과 동시에 농사를 주도하는 CEO이기도 했죠. 아들은 핏줄이전에 오너의 지시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부하직원이었습니다. 아침식사시간은 영양보충으로 끝나지 않고 기업조례성격도 겸했습니다. 아들은 밥상머리에서 머리도 들지 못할 정도로 아버지에게 폭풍지적질을 듣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가장의 잔소리가 극에 달하면, 참다못한 아들이 밥상을 뒤엎고 아버지를 때려죽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게 조선이었습니다. 이 일을 기화로 탄생한 속담이“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입니다. 친족인 부자살해가 사회문제로 골치를 썩이자, 조정이 내린 응급처방이 부자 간 밥상분리정책이였죠. (뇌피셜 아닙니다. 근거는 조선왕조 실록에서 찾아 보시길) 여기까지 읽고 남자들은 왜 이리 폭력적이냐? 라고 비난 할 수 있겠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고부간 폭력도 만만치 않았던 게 조선입니다. 폭력은 모든 개체를 초월합니다. 국가, 인종,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다방면에서 발생합니다. 한 때 백의의 천사 민낯을 보여준 간호사 ‘태움’이 그것이었고. 여군 내에서 벌어지는 위계 폭력도 남군 못지않습니다. 종교단체 안에서 성직자 간 폭력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여군 대위에게 전투화로 까인 조인트 상처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여성을 비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의 무 차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폭력은 힘의 불균형이 생기면 어김없이 발생합니다. 힘이 약한 쪽은 힘이 강한 상대에게 당 할 수밖에 없죠. 여성이 아니더라도, 아동,학교,노인,장애,이주민에 이르기까지 힘이 약한 개체는 늘 폭력에 노출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마에 피마를 일 없었던 질풍노도 학창시절, 군대, 도로, 직장, 생업으로 시작했던 야간업소 거래에서 조직폭력배들과의 극단대치까지. 피해자로, 때론 가해자로 무수한 폭력사태를 겪으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고통 받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성인 남녀가 일대일로 대치되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 가해자는 폭력의 정반합에서 물리적 힘이 강한 남자가 가해자일 수밖에 없죠. 이건 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면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에서도 폭력시비는 일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폭력이 위계라는 신분질서에서 비롯된다면 이건 심각한 사회문제죠. 위계,신분이라는 질서가 경쟁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경쟁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논리를 저는 배척합니다. 역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쟁 없는 사회는 없을 테니까요.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무결점 이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집단이 되고, 필연적으로 위계라는 주도권 다툼이 시작됩니다. 데이트 폭력도 위계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위계가 만들어지고, 파행으로 치닫는 데는 모래알만큼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겁니다. 학교에서부터 시작된 성적 줄 세우기, 가정에서 발생하는 권위문화. 군대나 직장이 만들어 내는 계급 간 서열에 이르기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작게는 군대선임부터 크게는 조직의 최고책임자까지 겪어 본 본인의 경험으로는. ‘조필’처럼 권위에 도전 받거나, 흔들리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폭력 유혹에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극단의 환경변화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학교나 다른 경로를 통해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본인노력과 성찰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었죠. 현재도, 미래도 위계폭력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조직생활을 하는 이상. 조직은 위계의 진실을 함부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죠. 현명한 조직가라면 조직작동원리를 철저히 함구한 채 조작된 이념으로 집단에 주입시킬 수밖에 없죠. 거짓정보로 교육되고 훈련된 개인이 상호 합의하에 구축되는 권력관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연인이나 부부폭력도 권력과 위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엽적인 문제라면 좀 더 크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전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 입장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여성이라고 여성문제를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 할 수는 없겠죠. 여성피해문제로 논제가 흐르면 남성이란 성별을 쉽게 특정해서 단두대에 세우고 무차별 비판으로 결론 짓는 건 굉장히 편의적이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판단합니다. 남성이란 성을 선택한 건 제 의지가 아니죠. 완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남성도 각박한 현시대를 살기에 너무 벅찹니다. 대다수 남성은 여성문제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죠. 의지가 있어도 물리적인 조건이 허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특정 남성과 여성문제를 고민하려면, 초장부터 죄인으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역지사지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스스로 비판대에 오르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하물며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자체가 불길하고 끔찍할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면 굉장히 위축되고 불쾌합니다. 성별 갈등을 주제가 좀 더 폭넓은 대화장으로 나아가려면 남성을 죄인으로 미리정해 놓고 시작하는 전략적 토론풍토는 개선돼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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