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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서 나로. 그렇게 전달하는 의미가 내 자의식을 거쳐 마음에 새겨지는 일련의 과정도 어쩌면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달되는 의미를 소화해 밖으로 꺼내놓는 과정 앞에서 아무런 불안 없이 온전함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좋을런지.
현존재 자체의 불완전성이 원인이라면 구사하는 언어 또한 그러할 수 밖에 없어서, 온전함을 향한 갈망일랑 도무지 그칠 수가 없는게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통에서의 상충이 덧씌워지는 번역의 반복이라면, 흰고래의 흼이 절대 흰색이 아닌 것 처럼 교환되는 언어 너머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몸을 그렇게나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채에 걸러진 말로는 도저히 충만해 질 수 없어서, 기어코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이, 결국은 언어 너머에 있는 몸의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결코 일치될 수 없는 그 차이가 서로를 부름으로써 우리를 공명하게 하겠지. 완벽하게 번역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대화하게 하고 더 깊이 서로를 탐색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결국 우리의 사이에는 투명한 이해라는 게 드물고, 늘 어긋남과 해석의 차이가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 아이러니가, 그 어긋남 덕분에 관계가 계속 새롭게 구성되고, 서로를 다르게 배움으로 지속의 가능성을 얻게 되는게 아닐까 한다.




오해를 줄이려면 솔직함과 작은 노력이 꼭 필요해요
내 마음조차 온전히 알기 힘든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결코 완전히 닿을 수 없지만, 그 불가능이야말로 가장 큰 가능성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