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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무것도 품에 없어서.
없는데 꼽자면, 정말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필이면 점점 다가오는 겨울에, 이번 겨울도 역시 하고 있을 것 같은거다.
아마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나는 그 마음을 기뻐하며 나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겠지. 반대라면 그렇지 않게 되고, 나를 좋아하게 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온당한, 좋아한다는 것의 수순이겠다.
뭐 좋아해 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경우는 뭐라 하느냐면, 좋아하는 당시의 너는 착각하고 있지 않느냐 물을 수 있을 테니까 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좋아함의 구조가 아니려나.
하지만 사실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의 시차는 늘 다르게 다가와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미련함은 나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 골격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 그게 그런 마음이었구나 싶다가도 매번 같을 수는 없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같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시한 연애 놀이를 지나, 자본주의의 옷걸이 역할을 내팽개치고서는 정말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게 어떤 건지, 이 두 손으로 그 마음을 안아보고 싶다.
새를 손으로 쥐는 마음이든, 주물러 터뜨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든 벌렁거리면서도 펄떡이고 싶다.
평온한 삶은 복이라던데, 생의 실감이 부족한 걸까.
뭐 잔잔한 지금을 훗날에 복이라고 알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타오르다 잿더미가 되어 그보다 더하게 휘발되어 버려도, 너의 얼굴을 보면 그랬었다는 마음이 상기되는 것조차도 좋아함의 일환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기꺼이 복 따위는 반납할 수 있을 것 같다. 복보다 더 좋은 게 행복이라는 것 아닐까.
가벼움과 무거움이 지향하는 이면 관계를 요즘 자주 본다. 그들도 같은 마음이라면 부러워할 일만은 아닌거겠지. 니들은 니들의 놀이를 해라. 나는 나만의 놀이를 하고야 말 거라고 겨울이 오기 전에 다짐해 본다.




내가 그를 알아보고 그도 나를 알아봐줄거라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