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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랬만이네요. 긴 시간 들르지 않아서 과거 어떤 톤으로 썼는지도 가물가물할 지경이군요. 역시 그렇습니다, 딱히 야할 이야기 없습니다. 딱히조차 불필요하죠. - 간단히 근황을 전한다면(안물안궁이지 싶은데?) 전업 준비를 하느라 매우 바빴더랍니다. 결과는 성공적이고 지금은 일종의 대기중입니다. 놀고 있단 이야기고 두어 주 정도 후부터 바빠지겠네요. 거의 한 달을 놀다가 문득 이 곳이 떠올라 접속했다가 고맙게도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더군요. - 지금은 간만에 독서를 해보고 있습니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라는 책인데,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최근 서점에서 눈에 띄여 집고는 다시 읽고 있네요. 엄청나게 방대한 내용이긴 한데 대강의 맥락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충 하이에크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시장경제가 자연적 질서라고 주장했어요. 아주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개인의 이기적 행동에 의한 시장경제에 대해 최대 긍정하는 그런 입장인 셈이죠. 이 책은 시장경제는 자연적 질서가 아니야, 그런 내용입니다.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의 오래된 카운터라고 볼 수도 있지요. 마이클 센델이라는 분 있죠? 그 분 책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던가? 그게 대강 이 책의 현대화 버전쯤 된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거대한 전환의 핵심적 내용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상품화해선 안될 것을 상품화했거나 그 전부를 모조리 상품화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대강 이렇거든요. - 이 책을 아주 딥하게 다루기는 너무 방대하지만, 제목 자체가 거대한 전환이죠. 대상무형, 대음희성. 너무 큰 것은 형체를 알 수 없고 너무 큰 소리는 흐릿하게 들린다. 제가 인상적으로 본 부분 중 하나는 겸허함입니다. 너무 거대한 것을 알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겠죠. 눈에 담기도 어렵고 그것이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일일히 좇기도 어렵습니다. 거대한 만큼 그것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그냥 주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환경 그 자체거든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을 갈아엎을 정도로 크다고 해야겠죠. 이 책은 1944년에 쓰여진 것 같네요. 시장경제가 발생했을 시점 정도가 아니라 대공황 나고 양차대전 거의 끝나갈 시점에야 나온 것이죠. 그 거대함이 다 움직이고도 한참 지나서야, 그렇게 긴 시간을 조사하고 검토하고 발상하고 재검토하고... 그런 과정을 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 이런 것 아니었을까? 했다는 이야기에요. - 그러나 사람들은 되돌아보는 것보다는 당장 미래를 바라보길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맑스는 역사 발전의 5단계를 주장했는데 대충 자본주의 망하면 공산주의가 도래하리라 이런 이야깁니다. 그렇게 되진 않았는데, 물론 어떤 분들은 아직 안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맞는 말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과거를 잘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너무 섣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란 책을 써서 맑스의 카운터를 친 셈인데, 보니까 실제로 승리한 체제는 자본주의/민주주의고 공산진영은 다 망하지 않았냐 이거죠. 이대로 시스템이라는 면에서 역사는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이란거죠. 그러나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삐걱대도 굴러가긴 하는데 민주주의가 확고히 승리한 체제라 보기엔 좀 어렵죠. 후쿠야마도 섣부르다면 섣부른 셈이죠. - 역사학자 중에 에릭 홉스봄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역사서를 쓰니 과거를 꼼꼼히 검토하는 작업부터 시작한 셈이죠. 서술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근대 3부작이라고 혁명/자본/제국의 시대라고 있습니다. 혁명의 시대를 예로 들자면 혁명 전의 시대를 묘사하죠. 그리고 혁명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시대를 서술합니다. 그 두 시대는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혁명이라는 사건이 얼마나 시대를 뒤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주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거대한 전환도 비슷한 느낌인거에요. - 요즘 여러 변화가 닥치고 있죠. 기후변화는 한참이고 국제정세는 격변한다 할만 합니다. 인공지능도 그렇죠. 여러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합니다. 미래를 대비하여야 한다. 저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다양하게 해보기도 했지요. 간만에 이 책을 읽으니 다소 다른 생각도 듭니다. 어떤 특이점의 이전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특이점 이후의 시대를 예상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전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요. 혁명 전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혁명 후의 시대가 어떨지 상상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상상한들 거의 틀렸을 것 같고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 전에 이에 대해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세대가 큰 사건을 겪었을 때 그 경험은 매우 강렬하게 남지만 그게 두 세대를 넘어 전해지기 어렵다더군요. 겪지 않고 전해 들은 말, 옜날에 그랬다더라 하는 정도로는 와닿지 않는다는거에요.(80년대 고금리를 경험한 세대는 고금리 환경을 알지만 태어나서 혹은 경제생활을 하면서부터 내내 초저금리 내지 저금리를 살아온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그 환경에 대한 감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난이도와 맞을 확률보다는 과거를 꼼꼼히 되짚어보는 편이 낫다 싶군요. -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이어지겠죠. 그게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특이점이라 할만한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거대한 변화는 겪는 중에는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 끝나고서도 상당한 기간이 흘러서야 아 그랬던건가? 겨우 할 수 있겠다 하는게 이 책을 읽다 느낀 소감입니다. 윤여정 배우가 그러셨던가요? 어떤 인터뷰였던가, 나도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는거라 모른다고요. 미래의 변화가 어떤 면에서 두려울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지요.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시작하는게 좋잖을까 싶습니다. 불안은 항상 삶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지만 어느 정도 담백해지는 편이 좀 더 도움되는 태도라 생각합니다. -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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