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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화가 났었다.
ㅋ 라는 글자의 반복만큼 화를 덮음에도, 사실은 눈앞에 있으면 당장에라도 짓이겨버릴 것 같은 분노가 어지러울 정도로 치솟았었다. 하찮은 조롱과 이유 따위는 거슬리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내 것이자 경험이라 할 만한 것들을 끝내 뒤적여 추적하는 그 침범이, 그게 정말 더럽게 느껴졌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물러났던 건 각자 저마다의 경계를 품고 살기 마련이니까. 내 딴에는, 같잖게 보일 수도 있는 존중을 나름 하려는 구색 아니었겠나. 어지간하면 경계를 분명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신호 위반도 한 번 하고 나면 곧잘 아무렇지 않은 게 나도 당연하니까, 타당한 사유가 아니라면 그래도 애써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요즘은 약속된 관계에서의 정조라 할 만한 것을 혼자인 채로도 지켜야 할 이유를 조금 잃었다고 해야 할까. 어찌 보면 나와의 관계 맺음에 대한 믿음이 나와 타인에 대한 불만족의 역치를 키우는 것 같기도 해서 개인의 윤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조금 자유롭게 두고 싶었다. 그마저도 없는 게 눈앞에 지천인데 뭐. 해방되고픈 마음만큼이나 두려움도 늘 있다. 쾌락이 어떤 실감이나 절실한 도피와 회복이 될 수 있음에도, 무제한적 탐닉은 생각과 몸의 마비, 그리고 자기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는 개인적 관념은 아직도 통쾌함을 방해하고 있다. 어쩌면 이 틀로 그나마 타인을 목표로 사용하지 않게 됐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동등히 필요한 건 두려움이다. 종종 누구는 이런 것들을 슬프다고 하기도 한다만, 난 아직도 저렴한 공감이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만지려 드는 것 같아서 쉽게 받지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더군다나 이젠 요구받는 것도 고갈되어서, 돌보지 않은 요청이 더는 달갑지가 않다. 말했듯이 같은 위상의 침범처럼 느껴진다. 공감이라는 말로 쉽게 만지려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한 무게나 온도가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 않나. 제멋대로 정리하려 들고 의미를 붙여버리는 자기 확신의 오만이 이런 편린들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에 대해 말했던 사강처럼 슬픔도 각자를 파괴할지언정 조금은 소중히 다뤄주고 싶은 마음이 나도 이제는 약간이나마 생겨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는 건 역시 모순덩어리 어깃장일까. 어쨌거나 그마저의 저렴한 공감마저 못 하는 침범 앞에서 제약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우회적 요청이나 연대를 위함이라 할지라도 응할 이유 역시 없다. 설사 공감의 요청이라 하더라도 편에 서서 비루한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없다. 뜯어보면 그건 위로의 요구일지 몰라도 자기 감정의 주도권을 외부에 넘기는 행위 같기도 해서 증오나 의심이 배가 되기 십상이지 않겠나. 설사 따뜻한 성질의 것이라고 해도 전달이 쉽고 이해받기 쉬운 말로써 변질된다면 가장 날것인 감정은 응어리져 끝내 처박히고 곪게 되겠지. 자기 해석이 없는 외력으로부터의 종결이 감정을 유예시키고 은폐하여 무의식에 남는 것은 정말 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가벼운 요청이 분명 나쁜 일은 아니다. 감당의 한계와 숨 돌릴 틈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마취 같아서 줄어드는 통증만큼이나 감각이 줄어드는 것처럼 마취를 넘어 마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늘 염려된다. 경계를 상실한 침범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애써 연대할 공감을 찾았다면 그 안에서 머물면 될 일이다. 그게 부정적인 거라면 전염된 공감의 연대끼리 저 경계를 넘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허기진들 그래야 하지 않나. 이 모든 게 보편의 윤리가 아닌 개인의 것에 가깝고, 경계란 것은 흐리며 자기적 침범이 일어나는 경우라도 말이다. 존중은 애초에 경계를 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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