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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 가면이라 쓰고 얼굴이라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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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어떤 얼굴로 살아간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상황에 맞는 표정을 고르고, 말의 높낮이를 조정한다. 그걸 사회성이라 부르거나 성숙함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가끔은,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서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부터가 얼굴이었는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명예나 체면 같은 말들은 그 가면을 쉽게 벗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이지 않기 위해 유지되는 것들에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라기보다, 흔들리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태도에 가까운 쪽. 그래서 사람들은 슬퍼도 괜찮은 방식으로만 슬퍼하고, 아파도 버틸 수 있는 선에서만 아파한다. 울더라도 얼굴을 가리고,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끝까지 자신은 숨긴 채로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다. 의도한 선택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내가 어떤 얼굴로 남아 있는지를 가만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나를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어디까지가 나의 선택이고,어디부터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반응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보다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 말을 나누는 순간들에서 내 얼굴이 더 또렷해졌다. 설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이어지는 말들 속에서 내가 어떤 표정으로 반응하고 있는지가 생각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문득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가 정말 나였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아니면 오래 써온 얼굴에 그저 익숙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존엄이나 존재 같은 말은 보통 거창한 순간에나 떠올리게 되지만, 실은 아주 사소한 장면들에서 더 자주 시험받는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의 태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의 선택,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한 대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반응들 같은 것들에서. 어쩌면 성찰이라는 건 더 나은 얼굴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이 나를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가리고 있는지를 잠시 멈춰서 살펴보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진짜 얼굴이란 처음부터 솔직한 표정이라기보다는 적어도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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