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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 물속에서 눈을 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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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우리는 대개 어떤 자리와 조건 속에서 서로를 만난다. 그 안에서 관계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비슷한 욕망이 맞물리고, 스스로 지켜오던 선을 조금쯤 넘을 만큼의 열이 더해지면 관계는 성립한다. 그 정도로 충분한 경우도 많다. 찰나의 감정이나 일시적인 욕구만으로도 사람은 이어지고, 또 흩어진다. 그런 식의 만남이 낯설었던 건 아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살아왔고,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갈증이 생기면 채우고, 채운 만큼 다시 비워내는 반복. 채워도 남고, 남아서 또 채우는 식의 허기가 조금은 피곤해졌다. 순간의 밀도는 분명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백이 더 선명해졌다. 그 공백이 몇 번쯤 반복되자,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 기대했다가 어긋난 기억이 겹치면서,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조금씩 옅어졌다. 굳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았고, 서로에게 피해만 없다면 그만이라는 태도 역시 나름의 방어였다. 사람이라는 역할은 이해했지만, 인간이라는 본질까지 기대하지는 않으려 했다. 솔직해질 때마다 관계 속에서 내가 한 발 물러났던 기억도 있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이 더 많이 드러났고, 드러난 만큼 균형은 묘하게 기울었다. 이상하게도 어떤 관계들은 그 벽을 계속 두드린다. 더 보라고, 더 말하라고, 진짜를 보여달라고. 몇 번쯤은 스스로 넘지 않던 선을 넘었다. 오래 쌓아둔 벽을 허물고, 생각과 진심을 내보였다. 나름의 각오를 하고 꺼낸 것들이었다. 그런데 더 보라고 하던 쪽이 먼저 물러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선 안으로 들어왔다.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는 방식이, 적어도 덜 흔들리는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어느 정도의 담대함도 생겼고, 웬만한 감정은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예전처럼 쉽게 휘청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함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물론 감정은 스스로 소화한다. 하지만 한때는 그 정리가 늘 나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드러내지 않는 편이 더 편하다고 믿었고, 숨기는 것이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를 지키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솔직함을 내비친다고 해서 말을 꺼낸 뒤의 공백을 견디지 못해 혼자 의미를 덧붙이는 일은 없다. 그건 단지 내가 단단해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상대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 분명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존중이, 그의 존재가 뚜렷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하게 앞서지도, 애써 거리를 두지도 않는 태도.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남는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욕심이 크고, 갖고 싶은 마음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함부로 다루고 싶지는 않다. 열망하면서도 조심스럽고, 가까이 가고 싶으면서도 가볍게 소비하고 싶지는 않은 상태.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가벼워 보이는 공간에서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겠지만, 나에게는 물건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연보다 감정의 동기화, 사상의 방향, 존중과 배려의 방식이 더 중요해졌다. 욕망의 크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가 맞닿을 때, 만남은 조금 다른 결을 갖는다. 요즘은 감정보다는 관계가 먼저 보인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름 붙이기보다,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본다.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태도. 나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 선. 욕망과 존중이 함께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그 균형 위에 서 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지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동안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지는 느낌에 가깝다. 무뎌졌다고 여겼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빛이 눈 안쪽에서 조용히 되살아나는 느낌. 선명해지는 건 어쩌면, 그 안에 서 있는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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