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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 침묵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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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체로 침묵을 그냥 두지 못한다.
잠깐 비어 있는 순간만 생겨도 먼저 말을 얹고, 무언가를 덧붙이고, 어수선하게라도 그 간격을 메우려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침묵을 바로 건드리는 편이 아니다. 그 사이를 조금 천천히 있는 그대로 두고 본다. 아마 내 침묵도 대개는 그런 데서 온다. 금방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말 앞에서도 한 번 멈추게 되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문장을 괜히 한 번 더 굴려보게 된다. 이해를 해보려 하고, 말을 고르고, 내가 짚은 것이 맞는지 아닌지 잠깐 더 들여다보다 보면 사이사이에 침묵이 생긴다. 나는 그것을 매번 정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라고 길게 설명하고, 내가 왜 잠깐 멈추었는지 왜 바로 말하지 않았는지를 하나하나 풀어놓는 일은 대개 너무 늦은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려버린 사람에게는 그런 해명이 오히려 더 쓸데없을 때가 많다. 그런 식으로 말을 다루다 보면 마음이 닳는 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건 별로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대개는 손이 많이 간다. 이해하려는 것도 그렇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어휘를 고르는 것도 그렇고, 상대가 말하지 않은 쪽까지 괜히 한 번 더 보게 되는 것도 그렇다. 겉으로는 잠잠한데 안에서는 몇 번씩 지나간다. 그러니 닳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늘 바닥을 본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소진은 있었지만, 끝내 내가 견디지 못할 만큼의 크기로 번진 적은 드물었다. 시리고 조용해지는 날은 있어도 거기서 전부를 접고 싶어지지는 않았다. 쉽게 넘치지 않고, 그렇다고 쉽게 비워지지도 않는 쪽이었다. 다만 더 이상의 여유가 없다면 그때는 정말 넘쳐버리려나.. 아마 차갑다는 인상은 그런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쉽게 들뜨지 않고, 금방 가까워지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는 생각보다 더 단정한 쪽으로 정리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날을 먼저 보는 사람도 있고, 그 아래 남아 있는 미세한 온도까지 읽는 사람도 있다. 여하튼 요즘은 사람 사이의 여백에 다 뜻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달라진 것은 달라진 대로, 짧아진 것은 짧아진 대로, 지금 보이는 상태를 그저 상태로 두는 쪽. 굳이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모든 변화가 해석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것들은 그대로 두는 편이 더 오래 맞을 때도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아주 초연한 것은 아니다. 어이없는 날도 있고, 인간적으로 조금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끝까지 몰고 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해서 내가 먼저 닳는 쪽은 별로니까. 어떤 누가 굳이 아프고 싶고, 다치고 싶겠는가. 한 발쯤 떨어져 바라보고, 내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그 상태를 그대로 두는 일. 하여간, 나는 끝내 완전히 차가운 쪽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의 결을 먼저 본다고 해서 그때마다 전부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안의 온기를 아무 데나 쉽게 쏟는 편은 아니다.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것과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아무리 시선이 달라지고 방법이 달라졌다 한들, 내 안의 마음과 정서,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쪽의 결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원래의 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덜 허술하게 그것을 지키는 쪽으로 기울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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