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nto bloom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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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터벨트와 밴드스타킹, 각종 코스튬 의상, 초커와 리드줄, 본디지용 로프, 저온초와 선크림, 애널플러그와 니플클립, 딜도와 흡입식 자위기구. 모두 내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하다 못해 그 흔한 아로마캔들도 없었다. 엑스맨이 양 손 가득히 들고 온 쇼핑백 안에는 단지 경추베개 두 개와 플라스틱용기 안에 담긴 오일이 전부였다. 경추베개라니... 이메일로 보낸 사진에 다크서클이 짙었나, 아니면 피곤한 인상이었을까. 조금은 달아오를 뻔 했던 분위기가 다시 짜게 식는 중이었다.
전라의 상태가 되었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좀체 흥분이 되지 않았다. 엑스맨은 날 눕히고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팔을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 했다가, 허벅지를 쿡 눌러도 봤다가.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으리라. 제 멋대로 굴어대는 엑스맨의 태도에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불쾌감이 들 것 같았다. “예뻐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정적을 깨는 그의 말에 흠칫 놀랐다.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빙 둘러 표현한 게 아니라 직접적인 호의 표시였다. 예쁘단 말이 귀에 설었다. 예뻐요, 예뻐요, 예뻐요... 그의 말을 곱씹다가, “너무 마르지도, 살 찌지도 않은 균형잡힌 몸이 예쁜데, 특히 피부가 예쁘네요. 너무 밝아서 핏줄이 비치지도 않고 어두워서 혈색을 관찰하기 어렵지도 않고.” 거의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이 있던 나였는데, 엑스맨의 말을 듣노라니 내 피부가 썩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사춘기 때에도 여드름 하나 난 적 없는 피부였다. 몇몇의 급우들이 부럽다며 한 번씩 쓰다듬어보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그저 입에 발린 얼음깨기 정도라고 생각했다. 팔 안쪽의 야들야들한 살결을 보며 조금은 흐뭇해졌다. “생각이 모조리 드러나는 이 얼굴도 맘에 들어.” 엑스맨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괴고 내 옆에 누워,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정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환희에 찬 미소를 보였다. 그러다가 내 하악(下顎, 아래턱)을 쥐고 내 눈동자를 바로 쳐다보기도 했다. 짐짓 부끄러워진 나는 고개를 살짝 틀며 발치에 놓인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깨까지 덮어버렸다. 급격하게 빨라진 맥박음이 설마 안 들리지는 않겠지. 숨소리마저도 천둥처럼 들리는 이 공간에 벌거벗은 여자와 전혀 벗지 않은 남자가 있다. 척추를 타고 전해오는 찌르르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었다. 차가운 오일이 기립근과 기립근 사이에 고인다. 고인 오일은 내 체온정도로 데워지며 척추 아래의 커다란 언덕 새로 흘러내려간다. 귀마개로 단단하게 틀어막힌 귓구멍으로 바깥의 소리가 들릴 리 없다. 오직 내가 내는 숨소리와 신음만이 증폭될 뿐이다. 눈을 가린 채로 섹스를 해 본 적은 있어도, 귀를 막고 한 적은 없었다. 과연 이게 섹스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엑스맨은 손끝인지 국자의 손잡이 끝인지 모를 가느다랗지만 끝이 뭉툭한 것으로 내 목덜미를 쓸고있다. 자꾸만 몸이 가늘게 떨린다. 파르르. 그것은 내 목덜미를 가볍게 터치하다가, 이내 경추로, 요추로, 척추로 내려온다. 아아. 하으. 여지껏 내 신음을 이렇게까지 큰 소리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내 신음을 들을 새가 없었다. 거의 반 혼절하다시피 섹스에 임해왔기 때문에 그저 포르노에서 본 여느 여인들과 비슷한 소리일 것이라고 ‘짐작’만을 해왔을 뿐이다. 눈을 가린 것보다 훨씬 수치스러웠고, 그 어떤 자극보다 자극적이었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타진기로 두드리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차기가 되는 경험을 누구든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몸부림을 하는 중이다. 알루미늄인지 스뎅인지 알 건 없다. 스틸 특유의 차가운 성질이 나를 덥히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 몸 곳곳에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매끄럽지만 끈적이지 않는 오일과 아찔하게 차가운 국자, 온전하게 들리는 내가 내는 모든 소리들이 엄청났다. 내 몸에 있는 모든 수용체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열린다기보다 진공상태의 몸 안에다 무언갈 자꾸 꾸역꾸역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내가 담을 수 있는 자극만을 담다가 오르가즘을 통해 폭발시키는데, 이미 나의 한계치를 충분히 넘었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져왔다. 엑스맨은 국자의 뭉툭하고 둥그런 머리부분으로 내 몸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가 그리는 그림 아래에 나는, 순백의 커다란 도화지였다. 그러다 뻥. 진공상태가 해제되며 담겨져 있던 것들이 분출하듯 빨려나갔다. 제 정신의 10%나 남았을까 싶을 정도로 온전치 못한 컨디션이었다. 아니, 컨디션은 외려 좋았다. 평소의 11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해일과도 같은 오르가즘이 나를 뒤덮었고, 그 해일이 지나간 자리마다 흔적이 스며있었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면, 모두가 놀라겠군.” 대단했다고?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엑스맨은 삽입도 없이 스펀지로 된 귀마개와 오일, 국자만으로 나를 고무시켰다. 아마 한동안, 아니 오래도록 찌개를 끓이기 힘들 것 같다. 계란 후라이를 할 때에도 기름을 두르지 못 할 것 같다. 대단한 선물은 받은 그날 밤, 단체톡방에 초대가 되었다. 그 곳엔 3명의 크루와 엑스맨, 그리고 내가 있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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