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사줄 테니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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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아 아까 터미널에 있었어?’
전혀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친구였다. 정확하게는 전남자친구. 프로필을 보니 여자친구와의 사진이 모조리 지워져있었다. 축하한다며 이번에는 좀 오래 가라고 연락했던 게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나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를 지금은 외쳐도 되려나. 그를 만나는 당시 나는 곱창처돌이였다. 약속이 잡히는 족족 곱창을 반 강요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곱창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전처럼 주 5회 곱창을 먹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와도 곱창을 먹은 적이 있다. 기억한다. 어찌 잊겠는가. 곱창이 너무 맛있는 바람에 주량을 훨씬 넘겼고 모기가 잔뜩 있던 공원을 걸었다. 후텁지근함이 피부에 찰싹 달라붙는 끈적함이 몹시도 불쾌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공원을 돌았다. 눈 앞도 살짝씩 핑핑거렸다. 갓 전역한 풋풋한 남자애는 내 손을 어설프게도 스쳐댔다. 감질맛나는 게 싫어서 그 손을 덜컥 잡아버린 건 나였다. 무슨 핑계를 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자였는지 벤치였는지에서 잠시 앉아있자며 잡은 손을 이끌었다. 그는 스치우던 손만큼이나 어색하게 ‘사귈래?’ 했던 것 같다. 대답하기 머쓱하기도 했고, 그 상황이 간지럽기도 했다. 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애를 쳐다봤다. 손을 처음으로 잡은지 30분도 되지 않아 키스를 했다. 정말로 더웠고 정말로 찝찝했다. “샤워하러 갈래?” 이제 갓 남자친구가 된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꺼내든 내 어설픔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샤워만 하고 싶었다. 물론 샤워만 하지는 않았다. ‘음 아니’ ‘아 그래 ㅋㅋ 넌 줄 알았는데 잘못 봤나보네’ ‘반가웠겠네 ㅋㅋㅋ 불러보지’ ‘그냥 지나는 중이었어 요새 뭐하고 지내?’ 전에 사귀던 사람이든 섹스를 했던 사이든 그런 거 없는 사이든. 어딘가에서 마주치면 나는 반갑게 인사하는 편이고, 꿈에 나왔다면 곧이곧대로 얘기하는 편이다. 쉽게 말하자면, 연락 끊긴 사이더라도 안부 묻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도 그런 차원의 안부 인사라고 생각했 는데 아니었나보다. 아마 얼음깨기 정도? 자꾸 뭔가가 급한 사람처럼 굴었다. 곱창 얘기에, 새로 산 차 얘기에, 집 근처 포장마차 얘기에, 작년에는 보드를 타러 4번씩이나 스키장에 갔다며. 안부만 묻는 것 치고는 장황했다. 내 기억에 그가 말이 많아지는 건 딱 한 가지였는데. ‘얼굴 한 번 봐야지 놀러오면 오빠가 술 사줄게’ 아... 한 달 오빠였지, 참... 내 돈으로 사먹을게 ㅋㅋ 라고 타이핑하려다가 지워버리고 새로운 텍스트를 입력했다. ‘나 돌려말하는 거 싫어해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건데 너 나랑 섹스하고 싶어?’ 칼처럼 답변하던 그가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답장한 내용은 조급함에 대한 사과였다. 글쎄. 불쾌했다면 나는 진작 널 차단했을 거야- 했더니 그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아 ㅋㅋㅋㅋ 근데 너 그런 얘기 나한테 몇 번 했었다’ ‘뭘?’ ‘섹스하고 싶냐고 ㅋㅋㅋㅋㅋ’ ‘기억력 쩐다 ㅋㅋㅋ 난 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 안 나’ ‘응 또는 몰라 라고 했을 걸 ㅋㅋㅋㅋ’ ‘그럼 지금 대답은?’ ‘모르겠어 ㅋㅋㅋㅋㅋㅋ’ 그를 만나는 당시는 바닐라였다.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고 그저 내 성향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였다. 당연히 빨간 엉덩이나 침범벅, 멍든 가슴과는 거리가 아주 먼 섹스만 했었고. 대통령이 바뀌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으니. 오랜만에 만난 내가 갑자기 목을 졸라달라거나 침을 뱉어달라고 하면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어떻게 커밍아웃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근래에 썼던 글 두 편을 그에게 보냈다. ‘니 취향 아니면 그냥 뺀찌 놔도 돼’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존나 하고 싶댔다. 그는 이번 주말을 결전의 날로 치고 싶어 했으나 애석하게도 내 금주말은 이미 솔드아웃인 걸요. 남자친구의 승인은 이미 떨어졌으니 언제 합을 맞출지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두근두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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