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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에선 무슨 생각을 할까?
생활체육 수준으로, 체력 키우려고, 더 무거운거 들어보려고, 저녁에 딱히 약속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그냥 헬스장 다니는 입장에서 보자면요.
1, 여성의 옷차림 특히 레깅스 차림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가?
전혀요. 태반이 레깅스 차림이고 그런지가 하도 오래라 맨날 보는거라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2. 헬스장의 여성 회원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가?
성적 흥분을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뭔가 헬스장이 농땡이(?)에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운동하거나 운동해서 숨고르거나 운동하려고 물색하는 행동 외의 행동을 하기에는 좀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지인끼리 또는 트레이너와 스몰토크하는 정도의 농땡이나 되는 분위기인거죠. 그리고 대개 이어폰을 꽂고 있기 때문에 뭐라는지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없었냐, 그건 아니고요. 뭔가 머신에 앉아서 정면 시야가 트인 기구에서 운동을 하는데, 바로 정면에서 어느 여성분이 매트 깔고 엎드려서 운동을 하시는데 톱 차림이어서 상체를 바닥에 깔자 가슴이 새나오는걸 보고 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야.
3. 그럼 뭘 보나?
그냥 눈에 들어오는거 봅니다. 운동하는 위치 운동하는 자세에서 눈뜨면 들어오는 광경을 보는거죠. 어느 운동이나 시선은 운동 자체로 인해 생기기 마련입니다. 스쿼트하면 시선을 어디로, 데드하면 어디로. 자세에 신경쓰면 나오는 시선인거죠. 벤치하면 천장 보겠죠. 덤벨 하면 거울보는 것이고. 머신을 해도 뭔가 왠지 그 기구 그 운동이 원하는 자세로 인한 어떤 시선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운동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시선은 운동 자세로 인해 나올 뿐이지 무언가 피사체를 특정하는게 아닙니다.
4. 소결. 1~3을 종합하면 시선강간이라고 할만한게 나오질 않습니다. 레깅스 차림 정도에 성적 흥분을 하는 분이면 아마 운동하기가 힘드실거구요 그리고 어지간해서 곧 적응하시겠죠. 다 역치가 높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운동하는 중의 시선은 자세가 요구해서 나오는 시선이지 피사체를 특정한 시선이 아닙니다.
5. 그럼 뭐가 눈길을 끄나?
3하곤 좀 다른데, 이 질문의 의도는 '누군가가 무엇을 보려한다'는게 아니라 '무엇으로 인해 누군가의 시선이 사로잡혔다'의 뉘앙스입니다. 예컨대 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통상적이지 않은 광경을 본다고 해보죠. 그건 당연히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전 아직까지 경험이 없는데, 예컨대 헬스장에서 갑자기 개가 돌아다닌다고 해보죠-아마 안전 문제로 헬스장에 개와 동반입장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당연히 개를 보겠죠. 뭔가 피사체가 비일상적이어야 눈에 들어옵니다. 저를 예로 들면, 1) 엄청난 미인에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바디는 당연히 눈에 들어옵니다. 근데 사실은 엄청 미남도 엄청 다이너마이트 바디 형님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게 그 비주얼 자체가 '스펙타클'하기 때문입니다. 헬스장이 아닌 장소에서도 당연히 눈이 사로잡힙니다. 2) 문신, 저한텐 문신이 비일상적인 이미지거든요. 3) 화려한 스타일, 예컨대 화장이 쎄거나 트레이닝복의 패턴이나 프린트가 강렬하면 당연히 보이죠. 4) 놀라운 수행능력. 그냥 절대적으로 존나 무거운걸 든다던가 상대적으로 상상이 안되는 무거운걸 든다던가 뭐 여성분을 예로 든다면 평범한 체구인데 대충 데드나 스쿼트를 80키로 이상을 치고 있다던가 정자세 턱걸이를 한다던가 하는 경우죠.
덧. 사실 헬스장에서 가장 예쁜 여성은 카운터 직원(...)입니다. 여성 회원들은 운동하러 오시기 때문에 뭐 대단한 메이크업이나 스타일링을 하시는 경우를 못봤습니다. 카운터 직원은 마케팅 목적도 있는거라 치장을 잘하고 계시죠. 오히려 성적 환상을 품는다면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잔을까.
덧덧. 그래도 시선을 느끼신다구요?
여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생각하신대로 정말로 흑심을 품은 시선일 수 있겠죠. 2) 외양이 뭔가 헬스장에서 비일상적일 수 있습니다. 엄청난 미인이거나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바디의 소유자시군요! 또는 스타일링이 화려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제 의견은 님에게 특정 의도 이 경우는 흑심을 품고 바라본다기보다 본인의 피사체가 무언가 시선을 사로잡는 비일상적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3) 혹은 수행능력이 너무 좋으시다던가요. 앞에는 근력을 이야기했지만 남자로서는 엄두도 못낼 놀라운 스트레칭을 하시는 분들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4) 님이 아니라 님의 점유한 위치에 대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 경우가 가장 많을거라 생각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그 남자는 님을 내내 보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내내 보고 있으면 너무 이상하기도 하니까 보통 내내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그 남자는 무언가 다른 운동을 하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직인가? 다시 다른 운동을 하고 와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직인가? 그냥 이 반복일 뿐이죠.
덧덧덧. 이상은 그냥 제 개인적 소견이라서 꼭 현실을 정확히 혹은 상당히라도 설명한다고 믿으실 이유는 없답니다.
무거운 주제지만 눈치없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글 고맙습니다.
파생하게 한 본문은 놓쳤지만 고맙게도 보존해 주시는 분 덕에 가령의 상황만으로도 제 생각을 늘어놓아도 좋다면,
1. 성적대상화에 대한 동의 여부
같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상황과 관계와 때 등등등의 조건들에 따라 “난 장난인데 왜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반응해?”가 도출되곤 하죠. 학창 시절의 왕따만 두고 보아도 그렇겠고, 민감한 주제지만 참여자 모두가 원한다면 BDSM도 폭력이 아닌 역할극의 일종이고요. 다시 말해 논섹슈얼에서든 섹슈얼에서든 당사자끼리의 사전합의는 중요합니다. 반드시 언어적인 수단이 아니더라도요.
2. 자기 성적대상화와 성적 자기결정권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할 권리가 있습니다. 타인의 의사에 반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입힐 가능성이 있거나) 조금 다른 접근이지만 장애 요소가 없다는 전제에서요. 장애 요소는 불가항적이므로 논외로 두고요. 타이트한 운동복을 반드시 관절 가동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입을 필요는 없잖은가요? 스스로가 타인으로 하여금 섹시해 보이기 위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영역이 아니므로 비판의 이유가 되기에는 합당치 않아 보입니다.
3. 성엄숙주의
그런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스스로를 성적대상화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섹스=더러운 것’, 즉 스스로를 소비하여 섹스를 연상하게 하는 행위 또는 인간은 고결하지 못 하다는 인식이 자리한 거죠. 예시로, (러셀님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짙은 화장을 즐기고 곳곳에 문신이 있는 주짓떼라 A가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A는 노출이 많거나 밀착되는 의상을 주로 입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자주 착용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대부분이 명품이네요.
가. “저거 다 섹파들이 사 준 거래.”
나. “화장은 왜 하고 와, 운동하는 곳에.”
다. “남자 꼬시러 왔나 봐.”
‘가’목과 ‘다’목의 경우, “너희가 관여할 바 아니므로 신경 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목은 일견 타당한데, 주짓수와 같이 격투기의 경우 상대방을 오염 시킬 수 있으니까요. 다만 테니스, 골프, 육상 트랙 등 야외 스포츠의 경우에는 무관한 비난이 되겠네요.
지나친 성엄숙주의의 폐해는 또 있는데요, 이러한 환경에 자주 또 오래 노출될수록 아래와 같은 답변을 내기가 쉬워지더군요.
“이거 내 돈으로 산 거야.” “피부과 치료 받고 와서 연고 바른 거야.” “호신술 배우려고 등록했어.”
섹파로부터 선물받은 것이 맞음에도, 더 생기 있어 보이고픈 마음에도, 근육질의 남성들과 살 맞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A는 다짜고짜 퍼부어지는 비난 앞에 반사적으로 움츠러들 테고요. 타인에게 거짓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독하게 자기세뇌를 해야 할까요.
글재주가 없어 매번 구구절절 늘어지네요 ㅜ 요약하자면
1. 스스로를 성적대상화하는 것: 문제 없음
2. 스스로를 성적대상화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3. 상호 합의한 관계와 상황에서 서로를 성적대상화하는 것: 역시 문제 없음
4. 당사자가 동의했는지 애매한 경우의 성적대상화: 범죄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함
정도가 되겠습니다.
환기시켜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ㅋㅋ 농반진반으로 제 입장에서 “야, 나 너 본 거 아니거든?”라는 말 들으면 자존심 상할 듯 ㅜㅋㅋ 나 예쁘게 입었는데 잠깐만 봐 주라! ㅋㅋ
진짜 안되겠네요
눈에 밟히면 한번 보고 아님 내운동 열심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