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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레홀에 와서 주접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ㅎ
모두 행복한 주말 되시길...
#1 비 오는 오후였다. 숨결을 외부로 표출해 보지만,
차디찬 공기는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조각조각 상처를
주고 그 쓰라린 상처는 비뚤어진 내 어깨들을
거리로 향하게 했다.
조용하지만 무겁다. 바닥에 은은하게 쌓인 먼지들이
오늘따라 더 짓누르는 듯하고 귀를 기울이면
차들 지나가는 소리,
몰래 토해 버린 한숨들이 조용히 지나쳐 간다.
"오늘 같은 날 소주 한 병이 더 필요할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티끌같은 정열도 타오르는 이 도시에, 나만의 열정이
선선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밤거리는 이제 도시의 소란이 커지며, 더 짙은 어둠이
슬며시 침투하기 시작했고 너울거리며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이 도심을 덮치듯 마음속을 잔인하게 파고든 말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그만하자."
그 말은 생각 속에서 반사되어 흔적 없이 고통스러운
잔여물을 남겼다.
#2 내 발아래 천천히 빛나는 보도블록에는 꺼져가는
가로등 불빛이 기이하게 비치고 있었다.
도로 반대편으로는 새벽빛이 서서히 밝아오며 도시의
태동을 알리고 있었고, 별이 부서진 듯 검고 차가운
하늘 아래, 나 홀로 길을 걷고 있다.
귓가에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볼로부터 목덜미를 지나가며
부드러운 고백처럼 속삭였다.
'힘내라...'
이 거리에서 우리는 늘 손을 잡고 걸었다. 왼편에 자리한
작은 카페는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출발점.
손잡고 걸으면서 영원을 꿈꿨던 들뜬 마음이 이제는 무거운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거리에서 나는 그 예전의 행복한 시간을 보기라도 했다면
초조함에 미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3 곳곳에 널려 있는 신문 조각과 낡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리며 마치 내 감정을 짓이기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튜닝한 차량이 지나치며 순간의 아스팔트 향을 내 바로
옆에 남기고 사라진다.
그때 공허했던 심장이 덜컹거렸다.
가슴을 부여잡고 어두운 보도 아래에 있는 불규칙한 금을
응시했지만, 차갑게 얼어 붙은 돌들은 묵음 속 질문에 어떤
대답도 주지 않았다.
바쁜 이방인들은 큰 우산을 쓰고 초조한 진동을 내며
바쁘게 도시를 활보하고 있었고,
내 마비된 절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떠돌았다.
길모퉁이에 멈춰 서면, 낡은 벤치가 보인다.
거친 나무 표면이 시간의 공격을 견디며 아직도 소박한
편안함을 제공하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 내 내면마저 겹쳐진다.
한시름 내려놓으려 주변의 소음을 귀찮게 들어보지만
도리 없이 삼켜진 그리움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내 마음속 울리는 소리와 어두운 빛의 간극 사이에
홀로 걸어온 길 속에서,
그렇게 그려진 잃어버린 인연을 태우기 위해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