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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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상한 시절입니다. 계엄의 충격으로 연이 바뀐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계엄보다 서부지법 폭동이 더 충격적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태에 대해 인생은 실전이니 대가를 치르라는 조소를 보냈습니다. 성인이 되서 그런 사리분별을 못하냐, 그러나 성인이니 대가를 치르라는거죠. 저는 성인인데도 왜 저런단 말인가, 그 자체가 너무 기괴해서 생각이 멎는 느낌이 들더군요. 왜 폭력을 행사하면 안될까요? 당연히 안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개인의 신념으로 타인을 해하지 않겠다 그럴 수도 있겠죠. 현대 국가는 폭력을 독점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에 따른 증오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각 개인이 폭력을 포기한거죠. 국가가 독점한 폭력은 공권력이라 불립니다. 이건 중대한 사회계약 중 하나죠. 우리가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지극히 제한되어있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도 매우 좁습니다. 기껏해야 투기 스포츠 정도 될까요? 그마저도 여러 룰로 제한되죠. 예전에 중남미사를 어쩌다 읽은 적 있는데 폭력이 아주 왕성하죠. 우리 사회는 그에 비해 폭력이 대단히 적은 사회입니다. 다들 준법의식이 좋은 것도 이유겠죠. 중남미사에서 얻은 느낌은 그 사회가 이견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살인멸구라는 선택지를 상당히 높은 순위로 떠올린다는겁니다. 이견이 있다고 죽여없애는 작정을 우리는 거의 하지 않고 아마 선택지에 아예 없는 사람이 태반일겁니다. 그렇게 믿고 살았죠. 서부지법 폭동, 그 배후의 선동자들이 국민 저항권 따위를 말하고 신의 이름을 갖다붙이며 폭력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죠. 국민 저항권의 발동 요건 따윈 없고 폭력을 위해 신의 이름을 참칭하는 것은 종교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들의 행태들을 눈여겨보며, 왜 현대 사회에 바바리안이 존재하고 이렇게 극렬히 날뛰는지 많이 고민스럽고, 그렇게 고민해도 개인 차원에선 딱히 답도 없으니 우려만 클 뿐이죠. 그러다 오늘 뉴스를 보니 이대 탄핵 찬성 시국선언에 외부인들이 쳐들어와 난리가 났더군요. 여학생 멱살을 붙잡은 남자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습니다. 저렇게 완력을 자유롭게 쓴단 말인가? 이견에 폭력으로 답한단 말인가? 폭력으로 강자의 서열을 매긴 계층 사회를 꿈꾸나? 더욱 우려스러운건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던 어느 극우 땡중의 말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들 있더군요. 좌파는 죽여도 돼, 페미는 죽여도 돼, 전장연은 죽여도 돼. 마치 사회에 암세포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을 봅니다. 자기에게 정당한 명분이 생겼다고 느껴지면 수단 방법에 제한이 없어진다는 듯이 무제한적인 가학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죠. 정당하다고 사람 죽일 권리가 생기지 않고 또한 사람 팰 권리도 생기지 않습니다. 요즘 행태로 보면 정당은 그냥 걸친 것일 뿐이고 쾌락적 가학을 보는 듯 합니다. 예컨대 서북청년단은 제주 4.3학살에서 광신적 믿음과 마약에 취해 쾌락 살인을 저질렀죠. 고삐풀린 저들에게 적절한 조치가 적절한 때 이뤄지지 않고 선동이 가열차게 진행되버린다면 어떤 식으로 폭주할지 모르죠. 어쨌든 개인 차원에서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엄벌로 될런지? 교화, 교정이라는게 가능할지? 경제적 성과가 좀 더 고루 돌아간다면 달라질지? 어떤 것도 그다지 맑은 전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탄핵 심판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한 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일은 또 이렇게 벌어지는군요. 언젠가는 근심거리가 좀 덜어지는 시절이 오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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