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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을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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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과수원길을 따라 하얀 아카시아꽃이 흩날리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시골 외갓집에 가면 그 길은 늘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했고 꽃잎은 눈송이처럼 부드럽게 흩날렸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오래된 동요처럼, 그 길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남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그 순수했던 기억 이면에 긴 역사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 소빙하기가 닥쳤다. 겨울은 길고 혹독했고, 사람들은 온돌을 데우기 위해 나무를 태웠다. 그 결과, 산은 하나둘 민둥산이 되었고 푸르러야 할 능선은 벌겋게 드러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림이 약탈당했고, 6·25전쟁은 남은 생명마저 삼켜버렸다.
1932년, 김동인 작가는 소설 『붉은 산』에서 고향의 민둥산과 흰옷의 환영을 떠올리며 숨을 거두는 인물을 남겼다. 그만큼, 산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의 삶도 거칠고 허기졌다.

비가 오면 황토가 하천으로 쓸려 내려가 강물이 흙탕물이 되었고 홍수는 더욱 자주, 더욱 거세게 밀려왔다.
산은 망가졌고, 강은 흘러넘쳤고, 농사는 망쳐졌고, 기아는 마치 한국인의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그 비극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1973년, 정부는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며, 산을 살리기 위한 첫 삽이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UN에서 받은 치산 지원금은 나무가 아니라 탄광 개발에 쓰였다. 그 역설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연탄은 산을 지켰다. 연탄 덕분에 나무는 베어지지 않았고, 산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산은 이미 죽어 있었다. 영양분이 말라버린 민둥산에 어떤 나무도, 어떤 풀도 정착하지 못했다.
비료조차 없던 그 시절, 희망은 아주 작고, 아주 질긴 생명에서 피어났다.
아카시아. 그 하얀 꽃으로 기억되지만, 실은 뿌리 아래 박테리아와 공생하며 공기 중 질소를 땅에 내리는 살아 있는 비료였다.

누군가는 '잡목'이라 했지만, 그 나무는 척박한 땅에 발을 내디뎠고, 그 뿌리 아래에서 흙은 다시 살아났다.
산이 되살아났다. 아카시아 덕분에, 다른 나무들도 뿌리를 내렸고, 산림은 점차 짙어졌다.
지금의 한국 산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울창하다. 그러나 그 시작은 하얀 꽃잎을 흔들며 고요히 자리를 지켰던 아카시아였다.

아카시아는 열매에 독이 있고, 목재는 뒤틀려 쓸모가 없다지만, 그 꽃은 꿀벌들에게 향기를 주었고, 사람들에게 생계를 안겨주었다.
수많은 양봉인들의 봄은, 하얀 꽃잎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아카시아는 수명을 다해 산속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동구 밖 과수원길도, 사람이 떠난 마을과 함께 기억 속 풍경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 길을 생각하면 여전히 꽃잎은 흩날리고, 하얀 향기가 가슴 어딘가를 간질인다.

아카시아꽃 피던, 먼 옛날의 과수원길. 그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움과 함께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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