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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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주자는 선발주자의 성공사례를 모방하며 배울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프로이센 독일을 모방해서 군국주의로 나아갔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한국의 수출주도 성장을 모방하여 경제대국의 기틀을 잡았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제한적으로 벤치마킹하여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신설하였지만 성과없이 폭망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견학하였지만 아직도 내전과 기아에 신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만의 TSMC를 벤치마킹 시도하지만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기업구조와 핵심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이 핵심인데 TSMC처럼 기민하게 고객 니즈에 대응하는 시스템과 상충관계에 있다. 벤치마킹은 훌륭한 교사지만 쉽게 모방되는 건 이미 핵심 강점이 아니고 설사 모방에 성공해도 고객 입장에서 차별화 이점이 없다. 어쩌면 성공사례보다 실례사례가 더 훌륭한 선생님일지 모른다.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그러나 단순히 실패사례의 반대로 행동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 실패의 이유는 성공 이유보다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소설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은 보편적으로 건강, 재정, 성격의 안정적 조화를 이루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독특한 사정이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대표작 "총 균 쇠"에서 톨스토이를 인용했다.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모두 비슷하지만, 실패한 동물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소, 말, 돼지, 양, 닭은 공통적으로 낮은 공격성, 높은 번식력이 있지만 가축화에 실패한 동물은 저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르마딜로는 한센병을 옮기므로 가축화에 실패했다는 식이다. 이 때 아르마딜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센병을 옮기지 않는 동물에 집중한다고 가축화에 성공할리 만무하다. 성공사례의 반대로 행동하면 확실히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실퍠사례의 반대가 꼭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히틀러는 소련(러시아) 침공을 주장하면서 자신은 나폴레옹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폴레옹은 오직 모스크바로만 단선 진격했기 때문에 사방에서 달려드는 러시아 군대에게 보급이 끊기고 포위당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300만명 이상의 대병력을 3개 집단군으로 나누어 레닌그라드(북부집단군)-모스크바(중부)-키이우(남부)로 동시 진격했다. 그러나 전력이 분산되어 장기전으로 밀려서 패배하고 말았다. 후세 전략가들은 차라리 모스크바에만 집중해서 신속히 점령했다면 소련의 철도와 행정 체계가 붕괴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랬다고 독일과 소련의 자원과 생산력 차이를 감안할 때 히틀러가 승리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나폴레옹의 반대 전략이 성공이라는 히틀러의 신념은 명백히 틀린 것이다. 과거의 교훈에서 무언가 배우기란 이렇게 어렵다. 1차대전의 파멸적인 참호전에서 프랑스는 총 830만명의 청년을 동원하여 그중 600만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지금까지도 이 손실은 온전히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은 적군의 기관총 앞으로 무지성 돌격을 감행한 참혹한 결과이거나 또는 비위생적인 진흙탕 참호 안에서 각종 질병으로 쓰러진 댓가다. 프랑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고 이와 반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종전 이후 프랑스 육군은 절대 돌격을 금지하고 위생적이고 철통 같은 현대식 콘크리트 방어벽을 구축했다. 독일과의 국경에 길게 이어진 마지노선을 완공하고 프랑스는 안심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은 마지노선이 없는 벨기에 국경을 전차 군단으로 돌파해버렸고 프랑스는 단 6주만에 항복했다. 2차대전은 전차와 항공기가 지배하는 전격전과 기동전의 시기였다.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워 기동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공권 없는 전격전은 실패했다. 맥아더 장군은 대규모 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고 전차와 항공기로 쾌속 북진했지만 산악지대의 능숙한 중공군 보병을 기동전으로 상대하기란 곤란했다. 중공군은 전차와 항공기가 없었지만 인해전술로 기동전 공세를 대신했다. 그러나 대량 포격으로 격퇴되었다. 한반도 같은 산악지형에서 2차대전의 기동전은 전혀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교훈으로 국군은 세계적인 포병전력을 구축했으나 이제 드론 공격을 염두에 둘 때다. 누군가 성공했을 때 시기하면 모두에게 해롭고 배우려고 하면 본인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본인에게 유리한 쪽보다 상대방을 해칠 수 있다면 본인의 손실도 감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누군가 실패했을 때 통쾌해 하면 아무 유익이 없고 교훈으로 배우면 본인에게 유익하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기 보다 유익함이 없더라고 타인의 불행 자체에 본인의 상대적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벤치마킹 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타인의 성공은 적용하는 것이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을 때는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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