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인간관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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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쇼펜하우어 철학이 유행했다. 그는 서양철학사에서 유명한 이정표다. 그 이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가 지배했다. 둘은 이상과 이성을 전제로 도덕적 의무를 주장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관념적 도덕에 무관심했다. 그는 현실의 고통에 주목했으며 고통을 벗어나는 구체적 방법론에 집중했다. 그는 고통의 본질이 욕망에 있다고 보았고 욕망을 통제하면 고통도 제어할 수 있다는 통찰을 남겼다. 주요한 욕망 중 하나가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는 사회적 인간의 본성이며 완전한 이데아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라고 보았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이데아 공동체 같은 건 관심도 두지 않고 인간관계는 한겨울의 고슴도치 같아서 멀면 춥고 가까우면 서로 찔린다고 했다. 체온을 나누되 찔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거리감이 중요하다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칸트는 고통 받는 이웃을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이성에 따른 보편적 도덕법칙이라는 것이다.(정언명령)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런 합리주의 도덕론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다만 본인의 마음에 연민과 측은지심이 넘치면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럴 경우 돕지 않으면 본인의 마음이 더 괴롭기 때문이다. 즉 불쌍해서 돕고 싶으면 돕고 아니면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너무 몰입하면 본인도 괴로워지니 고슴도치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도와야 한다는 고슴도치론을 반복했다. 그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이상이나 칸트의 도덕적 완성체 따윈 관심 영역 밖이었다. 그런 쇼펜하우어가 한국에서 갑자기 인기가 높아졌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더이상 발전과 성장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탓일까 무언가 완전한 것 이상적인 것 도덕적인 것 공동체적인 것 위대한 것을 향한 커다란 발걸음이 멈추어지고 서로를 찔러대는 개인적 고슴도치들을 피해서 잠시의 고통이나마 벗어나기만을 원하게 됐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옳다. 미시적으로는 매우 지혜롭다. 그러나 위대한 것이 성취되면 작은 고통들은 일시에 사라진다는 명언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은 고슴도치를 피하면 또다른 고슴도치가 나타난다. 이런 종류의 고통 회피는 끝이 없다. 그러나 위대한 것이 성취되는 순간, 사소한 고통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도덕과 완전함을 향한 소망과 노력을 버려서도 안되는 이유다. 쇼펜하우어는 진단에는 탁월했지만,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자는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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