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찌감치 정상성을 벗어나버린 성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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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시작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나는 몇가지 장면들이 있는 정도입니다 1. 어린 시절, 초등학교 2학년 쯤 됐을까요,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오셨고 그 딸도 같이 놀러왔습니다 부모님들은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 친구와 단둘이 있는 방의 침대 위에 앉아서 저는 그 친구에게 마녀 역할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이든 할테니 저를 조종해달라고 했어요 그 친구는 별 생각없이 마녀처럼 노래도 부르고 지팡이도 휘둘렀고 저는 눈을 감고 완전히 그녀에게 종속되는 기분에 야릇하면서도 초월적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저는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 날 제가 눈을 감고 노래와 명령에 맞춰 성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고양감을 느낀 순간을요 2. 고등학생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자들의 몸이 너무 좋아서 필히 바람을 필 것 같다고 했죠. 그 말을 하던 당시의 불길한 확신도 생생합니다. 3. 성욕에 완전히 무너지는 두려움을 오랫동안 느껴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스카 와일드의 삶 등을 읽어가며 저는 사랑과 성욕 그 사이 아슬한 무언가에 결국은 삶이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예감에 오랫동안 시달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혹은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는 약자에 대한 헌신, 숭고한 가치를 위한 희생, 뼈를 깎아가는 성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존중과 인정, 이런 모든 것들을 결국 저는 사랑, 혹은 성욕 (그 구분이 되는 날들이 있고, 희미해서 괴로운 날들이 있습니다)을 위해 무기력한 비명과 함께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 혹은 기대감. 제 성욕은 절대로 용납받을 수 없다는 생각. 그뿐 아니라 이런 제 성욕은 용납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제게 큰 절망의 이유가 되곤 합니다. 4. 스스로를 딱히 불쌍히 여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절망적인 기분에만 휩싸여서는 오늘을 살 기대감이 도무지 없다는게 문제겠죠. 그래서 요즘 발악같은 노력들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집착적으로 하던 헬스를 더 집착적으로 하고, 섹스에 대한 공부와 훈련을 하고요.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언젠가 만났을 때 이 성욕들이 용납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 그나마 열심이라도 내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게 용납받을 수 없다는 생각 못지 않게 용납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는한, 해피엔딩이 가능할지요. 오래 예감해 왔듯, 결국 제가 만신창이가 돼야 끝나는 이야기일지요. 5. 레드홀릭스에 고마운 건, 성욕과 섹스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가 저로 하여금 이런 제 그늘도 드러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가면 좋겠습니다. 해피엔딩의 희망이라던가, 산산조각 나지는 않을 수 있는 요령이나 태도라던가. 지난 세월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두려움에 떨게 해줄 무언가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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