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 자극이란 건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일반적으론 남녀가 성적 매력을 느끼는 신체 부위를 보는 것에서 자극을 받는다. 남녀가 상대의 몸에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부위가 있고 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성적 매력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신체 노출이 성적 자극을 부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예전에 누드비치를 갔었을 때 거기서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보게 되면 발기하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을 했다. 그리고 처음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나신으로 돌아다니는 처음 보는 풍경에 자연적으로 시선이 가는 것도 막을 수 없었고.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런 건 사라졌다. 그건 벗고 있는 사람들이 성적인 유혹이나 자극을 목적으로 벗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나 또한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성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꼴림이라 부르는 성적 자극은 노출이 없는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다. 긴바지를 입었을 때 살짝 드러나는 발목이나 목덜미, 손가락을 보고도 그런 자극을 느낄 수 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예전에 카페에서 한 여자와 성적인 뉘앙스의 대화 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 취미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는데도 대화 내내 쿠퍼액이 흘러나와 팬티를 다 적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성적 자극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상화가 그 자극의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상대방을 나의 욕망을 자극하고 채우는 존재로 인식하고 대상화한 순간부터 그 이전까진 아무 의미도 없었던 말이나 행동, 표현들이 자극과 꼴림의 원천이 된다. 그 대상화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나중엔 그저 보기만 해도 대화만 해도 성적 자극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화가 된 상대방이 성적 부위를 노출할 때 그 자극이 극대화 된다.
사회에서 상대방의 허락이 없는 대상화는 금기시 된다. 하지만 이 대상화가 인간의 본능적 욕망 중 하나와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기에 이것을 굳이 드러내지 한 대체로 용납되는 편이다. 원래 상상은 자유인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하는 이상 누가 뭐라고 할까?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닌 존재의 성기를 보게 되거나 성적인 언행을 들으면 자극은 커녕 불쾌감만 드는 이유도 이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연인, 파트너, 혹은 원나잇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대상화해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서로가 느끼게 되는 성적 자극도 극대화 된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불쾌감이 들었을 말과 표현들도 대상화된 상대방에게 들으면 무척이나 강한 자극이 된다. 누군가를 욕망하고 그 욕망을 상대에게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관계에서의 특권이 아닐까?
성에서 자유로운 것도 그저 불특정 다수와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 하고 대상화 되는 것에 열린 태도가 아닐까 한다.
나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그런 점에선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각자의 흑심을 내 비춰도 된다는 확신이 들 때, 폭발하죠.
저도 대상화에 대해 정리하고 있는 글이 있었는데,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이...
말씀하신 대로 성적 자극이란 건 단순히 신체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 맥락 안에서 대상화가 허용되었는가라는 지점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누드비치에서 자극을 느끼지 않는 이유도,
카페에서의 대화만으로 쿠퍼액이 흐른 이유도 결국
“이 사람에게 내 욕망을 투사해도 되는가”라는 내면의 허락이 있었느냐의 차이겠죠.
성향적으로 대상화에 친화적인 욕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욕망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반드시 ‘신뢰’와 ‘합의’라는 관계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내용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대상화는 본능일 수 있지만, 그 본능을 윤리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결국 관계의 밀도인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연인이나 파트너 관계 내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심리적 이중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어요.
특히 여성의 경우, 사회화나 양육, 혹은 진화심리학적 배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표현과 감정 간의 불일치가 생기곤 합니다.
겉으론 괜찮다 해도 내면에선 불쾌감이나 위협을 느끼는 경우,
혹은 그 반대, 그 미세한 신호를 ‘정확히 읽어내야만 한다’는 압박은 고스란히 남성의 몫이 되기도 하니까요.
결국 ‘허용된 대상화’조차도 늘 불안정한 합의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죠.
그걸 해결하는 길은 상호간에 신뢰뿐 아니라,
투명한 소통 역시 필요하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