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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시작은 말과 언어로부터 [JinTheStag님의 '대상화, 언어화' 글을 읽으며 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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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JinTheStag님이 이전에 쓰신 '대상화, 언어화' 라는 글을 읽고 오시면 더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글이 다소 긴 점 죄송합니다. 가독성을 위해 여러편에 나눠 올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현재는 제 생각 정리를 할 겸 쓰는 것이기도 해서 넘버링으로 대체하겠습니다. 1. 제가 레홀에 오고서 가장 고무적이었던 부분은, 이곳에는 적어도 성과 성생활, 몸과 몸적 욕망에 대한 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말과 언어는 조금 다르겠죠. 말을 아무리 모아도, 언어가 되지 못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언어에 능통하다고 말들이 자유롭게 내뱉어지는 것은 아니듯이요. 중요한 것은, 제가 언제부턴가 제 삶, 그리고 한국 사회, 더 넓게는 주류 문화 (저는 주로 유대기독교/헬레니즘에 뿌리를 둔 서구 지성사의 문화를 염두에 두고 있긴 합니다)에서 성, 성생활, 몸, 그리고 몸적 욕망에 대한 언술도, 언어도 너무나 편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성과 몸, 그리고 욕망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들이 말로 표현되는 것을 주변에서 잘 보지 못했고, 간혹 말로 표현되는 경우는 정상성을 벗어난, 혹은 안정성이 결여된, 혹은 윤리성이 훼손된 무언가로 격하된 채로의 묘사였습니다. 20대때 원나잇을 밥먹듯이 하고, 자신들의 외양, 혹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온갖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던 친구들도 제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들도 자신들의 '감각'에 충실했고, 그에 기반한 '실천'들이 많았을 뿐, 자신들이 겪은 모든 것에 대한 유의미한 '말' 그리고 '언어'를 구축해 가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30대가 돼보니, 그들은 일찍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는 저를 보며 "부럽다"라고 말하고, "나는 아직 철이 못들었다" 라고 하거나, "나 좀 정신차려야 하는데" 라는 식의 말을 다소 진심을 담아서 제게 하더군요. 그들의 그런 표현들이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묵묵히 그러한 제 감각과 욕망들을 억누르고, 그 통제와 절제를 합리화 할 나름의 '말', '언어', 그리고 나가아 '당위'까지도 갖고 살고 있었거든요. 그들도 자신들만의 그런 토대가 있다고 믿고 싶었나 봅니다. 2. BDSM 성향자나, LGBTQ커뮤니티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매번 감탄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몸과 욕망에 대한 말, 그리고 나아가 언어와 당위까지도 성실하게 구축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은 물론 마냥 축하할 일은 아니겠죠. 사회와 개인의 전면적 대립, 전통적 도덕/윤리, 혹은 종교적 세계관에 완전히 빗겨나간 듯한 자신의 실존에 대한 고뇌와 자기부정 및 자기이해의 피말리는 굴레를 통과하고 또 살아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쌓아올려진 눈물의 (그리고 문자 그대로 '피와 죽음의') 결과물들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제 말이 있고 언어가 있습니다. JinTheStag님이 말씀하신 제도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어딘가로부터 시작을 했고, 나아갈 이정표가 흐릿하게나마 있습니다. 문제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적 성향을 가진 남성, 여성들이겠죠. 저와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는 남녀 관계의 여러 준칙들 속에 살면서, 이해는 커녕 때로는 감당도 어려운 성적 감각과 욕망들을 안고 삽니다.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말과 언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정상적"인 남녀의 성적 욕망과 감각을 위한 말과 언어는 너무나 협소한 공간 속에서, 편협하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럼 점에서 우리들은 정처없이 떠돕니다. 운이 좋으면(?) 그 몇조금 안되는 말과 언어로, 자기 자신을 이해는 끝내 못한대도, 어떻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가 성적 감각과 욕망이 모두 퇴색되고 시들해질 때쯤에야 안도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자기가 무얼 원하고, 왜 원하는지 알지 못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후회할 방식으로 그러한 감각과 욕망을 억지로 해소하고 분출하려다가 더 깊은 자기혐오와 허무에 빠진 채로 허우적거릴 수도 있구요. 둘 다 제가 느끼기에 별로 바람직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방식입니다. 3. 물론 압니다. 그런 말과 언어가 없이도 무난하게 살 수 있는 복받은 천성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요 성적 욕망과 감각에 대해 비교적 무던하고 무감한 성정의 사람들 또한 많다는 것을요. 그들에게는 이런 제 고민들이 너무나 지엽적이고, 어찌보면 자기합리화적 무언가 일지 모르겠다는 자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고, 저는 하필 그렇게 못 살겠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거겠죠. 레드홀릭스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 저처럼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성을 위한 말과 언어가 구축돼가면 좋겠습니다. 저도 물론 나름의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일은 함께 할때 가장 잘 이뤄지고, 또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이해가 없을 때 자극이 우선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섹스도 그렇겠죠. 그런 점에서 JinTheStag님이 이번 글의 말미에 써주신 표현은 굉장히 와닿더라구요. 그 문구로 긴 글을 마치겠습니다. 혹시나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언어 없는 욕망은, 결국 ‘오해의 훈련’이 됩니다. 보고, 보이는 사람 모두가 보상과 강화의 체계에 익숙해질 뿐, 서로를 더는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는 자든, 보여지는 자든ㅡ 욕망은 결국 ‘전달’을 원합니다. 그리고 언어는 그 욕망을 온전하게 건너가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다리입니다." -JinThe Stag, '대상화, 언어화'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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