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婦>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神話 (1975)> 중에서 -
어리석은 신랑이 원망스럽고 그 자리 그대로 영문도 모른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 그 신부가 너무 안타까운 시 입니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일월산 황씨부인의 전설>이 있습니다. 어릴적 전설의 고향에서도 다뤘던 에피소드로 기억합니다.
오늘 9월 마지막날 잘 마무리 하시는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