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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 수상쩍은 책이었습니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가 237가지나 된다면 남성들이 섹스에 굶주릴 이유가 없겠죠.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원 없이 섹스를 즐겨야 함에도, 많은 남자들이 모쏠을 탈출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 한 사람이 2백가지가 넘는 섹스유발기재를 장착할 수는 당연히 없겠죠. 국가,인종,문화,나이,대륙,교육정도,수입,결혼유무등을 237로 나눈 사례이니만큼 섹스광이 아닌 이상, 개인별 접점은 치사할 정도로 빈약합니다. 바람둥이 치트키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런 책입니다.
죽어도 237가지를 몽땅 깨우치겠다는 분도 계실 테지만, 의미 없습니다. 그 많은 사례가 수록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이 책이 371쪽에 달하는 내용을 사례로만 채웠다면, 터널 출구만을 바라고 죽자고 달리는 유로스타처럼 답답한 기분에 휩싸였을 겁니다. 반갑게도 책 저자는 본인 글쓰기와 비슷한 서술취향을 가지고 있더군요. 여담이 많았습니다.
처녀성상실 이유를 기술하며 질막재생수술(주행기록계 0점 조작)비용까지 친절하게 소개하는 가하면, 교환과 거래(성매매)에선 국가별 매춘합법여부와 등급별 가격대까지 제공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주제와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하는 필벽임에도 산만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기름기를 걷어낸 듯 담백한 필력을 지녔습니다. 기존문헌을 인용하더라도 풍부한 인문학소양과 끈끈한 사유로, 재해석을 가미한 점도 신선합니다.
여성의 감각과 심리변화를 추상화된 관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생화학수치로 계량함으로써 직관적해석이 가능하도록 구체화시킨 점도 이 책의 미덕입니다. 고해성사 같은 그녀들 솔까발 중에는 섹스 중 살인충동도 끼어 있습니다. BDSM분석표를 단 3단계로 압축시키는 충격적인 통계 앞에. 내 자신에게도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섹스환경에 경악할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3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문헌을 인용한 자료이므로,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실험사례 하나를 소개하자면.
여자들은 100만 달러를 받고 낯선 사람과 동침할 것이냐는 가설적 질문을 앞에 놓고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옥신각신했다. 그녀들은 로버트 레드포드라면 거꾸로 1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동침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럼요’라고 동의했다.‘하지만 돈을 구해 올 시간을 주세요!’라고 한 발 빼긴 했지만 여자들도 성적으로 가치 있는 자원에 대해서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음을 증명했다.
첫 번째 질문은 주변시선을 의식한 의도성 회피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허세일 수 있지만, 여성들 심리라고 남성들과 별 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저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면 당연히 콜이죠. 두 번째 질문이 날아온다면 첫 번째 행운으로 벌어들인 수입을 여배우에게 아낌없이 지불할 겁니다.
책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마음에 드는 여성과 섹스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로맨스소설 주인공이 되면 된다’일 겁니다. 멋진 외모, 명석한 두뇌, 명망 높은 가문, 지적인 사고, 특출한 유머, 빛나는 성공, 감미로운 감성, 착하고 다정한 심성, 목표를 향한 불굴의 투지. 정의를 수호하는 용맹. 헌신. 급한 대로 정도까지만 갖추면 그리스여신이라도 섹스파트너를 만들 수 있겠죠.
현실 가능한 설정이 아님에도, 여성들은 백마 탄 왕자 환상을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로맨스소설 독자 95%는 여성이고, 포르노 시청 95%는 남성이라는 통계가 있었죠. (제가 볼 땐 둘 다 포르노지만...)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평범한 여성을 포르노 배우로 만들 수는 없어도, 평범한 남성이 로맨스소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복음과 같은 통찰이 말미에 숨어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청년들에겐 도움이 못 됩니다. 장년들에 한해서 (아주 몹쓸 외모만 아니라면) 백마 탄 왕자님으로 신분이 급부상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여성은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죠. 기혼 여성들은 남편보다 대체로 나이가 젊습니다. 60대 이후 독신가구 중에 여성가구비율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남편이 생존해 있어도 발기부전이라면,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없죠) 살아남은 남성들은 성비붕괴가 가져 올 100세 시대 특수를 누릴지도 모릅니다.
남성은 60세 이후가 되면 외모 기준이 바뀝니다. 준수한 이목구비? 이 딴 거 없습니다. 이 연세에는 좌,우 대칭만 나와도 미남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우람한 갑빠, 탄탄한 허벅지도 옛날 얘깁니다. 배만 안 나와도 몸매 좋다는 찬사가 따릅니다.
궁핍하지 않을 정도의 재력, 무식하지 않을 정도의 지식, 꾸준한 자기관리로 기본발기력만 유지한다면, 할머니들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꿈같은 세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는 정관수술도 필요 없습니다. 월경도 졸업한 마당입니다. 마음껏 질사를 즐겨도 기저귀 갈 일은 없습니다.
약속된 쾌락이 임박했음에도 자기관리 실패로 오나홀이나 소독하는 비극을 맛봐서는 곤란하겠습니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는 섹스경쟁에 지치고 한 맺힌 남성뿐 아니라, 건강하고 격조 있는 섹스라이프를 원하는 여성이라면 연령을 초월해서 일독을 권장할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