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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최치원과 쓰리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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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은 방문 소감에서 최치원의 시를 한 구절 읊었습니다. 한중 양국간에 유명한 옛 인물이어서 그랬겠지요. 최치원이라는 신라 말기 비운의 천재는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 율수현의 현위라는 벼슬을 할 때의 이야기를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라는 글로 남겨 놓았습니다.
최치원은 12세에 당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의 작은 관직을 제수받았다. 어느 날 그 지역 남쪽에 있는 초현관에 놀러갔다가 쌍녀분(雙女墳)이라는 무덤을 보고 석문에 시(詩)를 지어주고 외로운 혼백을 위로했다. 뉘 집 두 딸이 묻혀 있는 무덤인가
외로운 관사(館舍)에서 운우의 밀회를 즐길 수 있다면
시를 짓고 관에 돌아오자 달이 밝고 바람이 좋은데 문득 아름다운 여자가 손에 붉은 주머니를 가지고 들어왔다. 하녀였던 그녀는 시를 지어준 무덤에 살고 있는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가 보답하는 선물이라며 글귀가 쓰인 붉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살아있을 때는 나그네 대하기를 무척 부끄러워 하였는데 오늘은 알지 못하는 이에게 교태를 품나이다.
...... 잠시 서로 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최치원과 가까이 심사를 터놓고자 하는 뜻을 전하므로 기뻐하여 하녀에게 답시를 써 보냈다.
오늘밤 만약에 그대 선녀 만나지 못한다면
남은 생을 버려 지하에 구하리다.
하녀가 시를 가지고 사라지자 잠시 후 문득 향내가 나며 두 여자가 손에 연꽃을 들고 들어왔다. 그가 꿈인가 놀라고 기뻐하며 시를 짓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 살던 장씨의 딸로서 언니가 18세, 아우가 16세였을 때 아버지가 각각 소금장수와 차(茶)장수에게 시집 보내려 하였으나 두 낭자는 이 혼처가 불만스러워 우울하게 보내다가 요절했으며, 오늘 최치원을 만나 심오한 이치(?)를 논하게 되어 다행이라 하였다.
최치원은 무덤에 묻힌 지 오래인데 어찌 지나는 영웅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여인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비루한 남자들 뿐이었는데, 오늘 다행히 수재를 만나 기쁘다 하였다. 세 사람은 서로 술을 권하며 달과 바람을 시제 삼아 시를 짓고 하녀의 노래를 들으며 즐겼다. 최치원이 두 여인을 희롱하며
이제 아름다운 그대들의 꽃다운 마음을 허락한다면 좋은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하니 두 여인 모두 허락하여 말하기를 순(舜)임금도 임금이 될 때에 두 여자가 모시었고 주량(周良)이 장수가 되었을 때도 두 여자가 따랐지요. 옛날에도 그랬는데 이젠들 그렇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하여 곧 정갈한 베개 셋을 늘어놓고 새 이불 한 채를 펴놓더니 세 사람은 한 이불 아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다.
오백년 만에 처음으로 어진 이 만나
오늘 밤 나란히 잠자리 즐겼네.
날이 새어 닭이 울자 두 낭자는 놀라 일어나 천년의 한을 풀었다며 시를 지어주었다. 이에 최치원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뒷날 이곳에 오게 되면 거친 무덤을 살펴 달라 부탁하고 두 낭자가 사라지자, 그는 무덤으로 달려가 두 사람을 애도하는 장시를 지었다. 뒤에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여러 곳을 주류하다가 마지막에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다 죽었다. (fea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학자 이자 신선 사상의 원조격 이었던 최치원의 작품 중에 자매와 함께 뜨밤을 보내는 이야기이 있는 것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매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에 이런 스토리도 가능했겠지요.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 문희를 부인으로.… 태조 왕건은 자매를 황후로 맞이한 케이스가 2번이나 있었고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고려 현종은 충성을 다한 신하 김은부의 세 딸을~~)
김홍도의 운우도첩에도 쓰리썸 그림이 있는 걸 보면 완고한 조선 시대에서도 종종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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