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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불온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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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픽션 입니다. 이미지는 Ai 이미지 입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의 과거 연인인 진 태틀록은 그와 섹스를 하다 멈추게 된다. 그러던 중 오펜하이머는 그녀에게 자신이 융의 정신분석학을 배운 이유를 말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교수를 독살하려고 했다. 그를 존경했기에."라고 하자, 태틀록은 말한다. "섹스가 더 필요했던 거네." 오펜하이머는 그 이야기를 듣고 2년간 만난 상담치료사보다 명쾌하다고 말한다. 나도 공감한다. 상담치료사를 만나느니 섹스를 더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사람은 무척이나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누군가와 소통을 원하며, 타인을 관찰한다. 그뿐일까? 관심 받기를 원하고 섹스하기를 원한다. 인간은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고, 또한 사랑받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느낀다. 왜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공허하고, 불안하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까? 섹스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확히는 사랑을 나누는 진짜 섹스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분명 계절상 봄이 와야 하는 요일인데도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돋는다 애인과 딱 달라붙어 한산한 바람을 뚫고 모텔에 도착한다. 문을 닫자마자 꽉 찬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서로의 옷을 벗겨준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푼다. 가벼운 와인으로 몸에 열을 더하고 싱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시선은 상대의 눈에 고정. 유일한 예외는 몸 곳곳을 주물르고 아울러 줄 때다. 이따금 키스도 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온다. 녹는 듯한 나른함과 야릇한 긴장을 동시에 유지한다. 점차 생각은 지우고 감각에 집중한다. 이미 야릇한 상상은 모텔을 예약할 때 부터 계속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사실 정신을 못 차렸다. 머릿속에는 이미 벌써 한 열번 했으니 그대로 남겨두기엔 너무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이미 뇌는 내가 상상한 드라마를 또렷한 과거 내지 반드시 올 미래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별 수 있나. 파트너에게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우리 거품목욕 먼저 하자.... 러쉬에서 우주의 기운을 담은 보라색 은하수를 닮은 배쓰밤을 구매했다. 배쓰밤엔 거품을 내는 기능이 없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나는 버블바도 구매했다. 처음엔 첫 섹스가 끝나고 거품목욕하면서 한번 더 분위기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영화처럼 거품목욕내는 건 어려운것이라 생각했다. 예상 못 한 지출이 있었지만 올리브영에서 질 좋은 놈으로다가 콘돔을 골랐다. 철두철미하게 센스있는 음란마귀로 보여지고 싶었다. 어떤 로망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을 때 로망으로 성립할 수 있는 거다. 욕조에서 방으로 가는 길, 우리는 러쉬에 사온 밤으로 과장되게 연인 행색을 하고 올리브영에서 사온 콘돔으로는 과장되게 형형색색의 차력쇼를 나눴다. 신성한 섹스가 끝나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섹스 후에 단게 땡긴다나? 영상통화를 하며 초코와 나쵸 중에 뭘 살까? 초코송이 먹고 싶다고? 근데 나쵸의 짭짤함은 단짠단짠의 느낌을 주지 않을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길어지는 대화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30분 전까지 벌였던 짓거리를 복기했다. 문득 웃겼다. 서로를 탐미하고 과자를 탐미하는 지금은 우리가 도무지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짧지만 넓은 이 낙차. 허물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탄생한 것 같은 섹스 후 전희… 영상통화에서 나오는 우리의 음담패설이 불쾌했던 걸까... 편의점 앞에 있는 점원이 보는 우리는 벗은 껍질일까 뽀얀 속살일까. 그건 얼마나 다를까. 점원께서 엄청난 통찰력을 가진 걸까. 과자가 달고 짠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으름장을 놓는다. 불쾌하다는 신호다. 너희가 한 섹스는 불온하다. 그래서 너희는 불온하다. 간파당한 거다. 동시에 선언 당한 거다. 네깟게 아무리 달라진다 한들 그 요상한 껍질 속에 박제될 운명이라고. 아마도 모텔앞 편의점 점원은 섹스는 평생 불온하다고 느끼는 걸까? 바닷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과 같다. 쾌락을 주사기에 꽂아 뇌로 집어넣으려 해도 충만한 삶이 될 수가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 끝은 머금은 담배 연키만큼이나 텁텁하다. 손에 쥐어준 현찰 뭉치 만큼의 환각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끝은 공허하니까. 잠시 당황한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 답한다. 친절하게 나긋나긋 하게 무언가 맞긴 한데 무언가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좀 단순 무식한 면이 없지 않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확고한 태도만큼은 부럽습니다. 깔끔하게 존망을 결정하고 선언할 수 있다니, 그 현명함이 얼마나 편할지 가늠도 할 수 없군요. 아득한 통찰의 소유자여 선망합니다. 일단 물을 흐리고 찝찝한 칭찬을 날리고 도망간다. "당신은 섹스가 필요하군요?" 날 것의 분노와 슬픔은 모름지기 사건의 비하인드, 가장 뜬금없고 그래서 취약할 때 찾아오는 법. 초보적인 비방에 대응할 말을 왜 미리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우둔한 나는 뒤늦게야 스스로를 수호할 언어를 만들어 보려 한다. 우선 사건을 되돌아보려 하는데 그제야 빡이 치고 호흡이 가빠온다. 그리곤 정작 당사자는 들을 의지가 없는 말을 짓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어 그만둔다. 처리되지 않은 감정에게 방 한 켠을 내어주고 다시 외진 세상으로 돌아간다. 불쾌하지만 그래도 인사성 밝은 내가 30분 전까지 불온하면서 얼마나 매끈한 섹스를 즐겼단 걸 꿈에도 모를 거다. 다음에는 딜도를 넣고 여친하고 같이 올까? 지금 여기 우리 사이에 불온함은 없다. 지금 여기 우리 사이에 있던 친절도 곧 사라질 거다. 불온함이든 탁월함이든 빠르게 표백될 거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으로 도망갈 거고, 우리 사이엔 항상 시차가 있을 거다. 밤이 낮인것 처럼 낮이 밤인 것처럼 곱씹어 보니 나는 꽤 훌륭한 멘트를 날렸다. 점원의 말은 단순 무식한 게 맞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초코송이가 쥐어져 있다. 아깐 참 좋았는데 지금은 약간 쓸쓸해졌다. 파트너는 나쵸와 초코송이 둘다 말한 것 같은데.. 다른 편의점을 가야 하나? 편의점 몇군데는 찾은거 같은데… 다시 돌아갈려니 귀찮아 졌다. 결국 초코송이만 들고 모텔에 들어가니 서운한지 씁쓸한지 괜한 씅을 내며 토라진다. 아까전 불과 4~50분전 섹스로 춤을 추었던 우리가… 언제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너와 내가 오래도록 다시 포개어지는 게 가능한 걸까? 언제적 초코송이 사왔는데.. 씅을 내다니… 괜히 파트너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잡고 싶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질러버린 불순한 상상의 무게만큼 꽉. 그녀도 내 초코송이를 꽉 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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