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 가부장제를 하나씩 보이콧할 거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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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릴레이 서평③ Y에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한알 ▶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의 저자이자, 독일 페미니스트 잡지 [엠마]를 만든 알리스 슈바르처 우리는 결혼의 진짜 얼굴을 보았지 이제 이 책을 정말 너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다시 한 번 권하는 이유를 말할 차례가 됐어. 너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우주를 대하는 기대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어.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거야.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닫히고 내 몸에 그 사람의 몸이 닿는 것도 견디기 어려워졌어. 좀체 성관계에서 즐거움도 포근함도 느껴지지 않았지. 이 책에는 현역 혼인 관계에 있는 여성들과 이혼한 여성들의 입을 빌어 결혼 혹은 이성애 파트너십이 어떻게 지배종속 관계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랑이 얼마나 쉽게 ‘결단’나는지 보여주고 있어. 더구나 한 번도 내가 남자와 결혼할지, 여자와 결혼할지 혹은 결혼을 할지 말지조차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어. 책에 나오는 레나테와 도로테아처럼 말이야. <권력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남자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여자, 그런 역할을 맡은 경우는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남녀의 전통적 관계에는 남자의 우월성과 여자의 열등성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이 상황에서 여자들은 몸과 마음이 닫혀버린다. 이 책의 사례들에서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차단되고 쇳덩어리처럼 불신이 굳어진다. 레나테는 나에게 서슴없이 하는 얘기를 자기 남편한테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133쪽) <이렇듯 도로테아는 여러 규범에 맞춰 정상적으로 사는 척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결코 순응한 적이 없다. 착하고 얌전한 여자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거부반응은 감정적으로 이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났고, 그리고 남자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151쪽) <인간은 여성이거나 남성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제 3의 길은 있을 수 없다.>(153쪽) 벌써 수년 전부터 나는, 아무리 남편이 꾸준히 요청해도 도무지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았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섹스라는 교감을 전혀 원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이 혼인관계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어. 내가 알던 사랑, 내가 기대했던 평등하고 공정한 관계는 불가능했어. 나와 남편은 고유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남과 여로 가차 없이 갈라지는 잔인한 흑백 세계를 대표하는 파이터들이었어. 고유한 개체로서 만나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회는 우리를 여자라는 등번호, 남자라는 등번호를 달고 링에 오른 선수로만 보기 때문이지. 아내다움, 며느리다움, 엄마다움, 딸다움의 기준은 남편다움, 사위다움, 아빠다움, 아들다움과 확연히 구별됐고, 나와 남편은 그 생경한 규범 안에서 서로에게서 소외감을 느꼈고 결코 행복하지 못했어. 결혼한 너와 나는 어느덧 미혼 여성들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지. 그들은 눈치 볼 시댁도, 마음 안 맞는 남편도, 어려운 육아도 견딜 필요가 없으니까.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면 되고 여성운동도 어느 때고 시간 내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야.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이 넉넉한 주부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부부 사이가 꽤 원만할 거라고 추측했지. 하지만 지금 보니 가부장제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부자든 가난하든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결국 기혼과 비혼이 겪는 차별은 상황만 다를 뿐이고, 넉넉하든 빠듯하든 여성의 일은 오로지 여성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겠지. 이 책에서 ‘가정주부증후군’에 시달린다고 소개되는 이름가르트는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이지만, 사남매 독박 육아와 덤터기 가사노동에 분통을 터뜨리기는 매한가지야. <어쩌면 그렇게 염치들이 없어! 남편이 깜짝 놀라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도와달라고 말을 하면 안 되냐고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내가 맨날 쫓아다니며 이것 좀 도와주세요, 저것 좀 도와주세요, 사정해야만 하냐, 너희들은 눈이 없냐, 온 집안을 쓰레기 굴로 만들면서 그걸 모르냐고 악을 썼어요.>(187쪽) 더욱이 자신이 겪는 공기 같은 성차별을 인지하는 것도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앞장선 낙태죄 폐지운동 덕분이라고 말해. 생각 나? 나 역시 비혼 페미니스트들을 만난 덕분에, 내가 겪어왔던 뭔지 모를 우울감과 설명할 수 없지만 피부로 느끼던 소외감과 차별의 징후를 명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 것을? 나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을 택한 동료 여성들을 보면서 정상성의 규범에 가려 발견하지 못한 틈, 이 세계를 보는 다른 시선과 행동의 대안이 엄연히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다들 육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 때, 남성집단 전체는 또 다시 그 책임에서 면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도 페미니스트 여성동지들이었어. 이혼은 ‘나’라는 존재에 성큼 다가선 경험이었어 그래, 이쯤에서 고백하고 싶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흥분하면서 거의 모든 문장마다 밑줄을 그은 이야기는 바로 이혼녀 카타리나의 인터뷰였어. 카타리나는 “이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두렵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해. <“내가요?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깍지에요. 내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요. 아이들 다 키운 후에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함께 자는 남자가 없다고 불행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홀가분해서 날아갈 지경이지요. 옆에 남자 하나만 있어 봐요, 밥해 줘야지. 청소하고 빨래해야지, 내 맘대로 자고 일어날 수도 없잖아요. 난 정말 부족한 것 하나 없어요.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게 기쁠 따름이죠. 분홍빛 안경은 예전에 벗어던졌어요.”>(227쪽) 애초에 누가 있어야, 누구의 보호를 받으며 사랑받아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야. 우리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을 홀가분하게 할 수만 있으면 되었어. 맞아. 그랬어. 나 역시 기대했던 결혼의 진짜 얼굴을 접하고, 그저 맥 빠진 여자/남자의 꼬리표만 달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가, 그냥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성별 따위 구애받지 않고 내 모습을 찾아가고 그 자유를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굉장히 달라져. 이 당연한 권리를 모두가 누려야 한다는 것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게 돼.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혼자서만 행복하지 않아. 다른 사람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가장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내가 사는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 카타리나도 직업교육 자격 심사를 받으러 가서 그런 일을 겪었대. <“성전환 수술을 받은 남자래요. 나체쇼에서 무희로 일했다는데, 남자라고 탈락시킨 건 잘못된 것 같아요. 기회는 똑같이 주는 게 옳지 않나요?”>(228쪽) 자신도 남의 욕구에 맞춰 자의식을 내려놓고 살았지만, 다른 소수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 사회가 공평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깊어진 거야. 이혼을 감행하고, 삶에서 비뚤어져 있던 것을 바로잡고, 모든 인간은 그냥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한 여성의 잔잔한 일대기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어. 왜냐하면, 나 역시 바로 이 년 전에 이혼이라는 선택으로 더 ‘나’라는 존재에 성큼 다가서는 경험을 했으니까. 그 변화가 얼마나 나 개인은 물론이고 관계까지 윤택하게 만드는지 잘 아니까. 섹스에 대한 낯설지만 해방적인 시선을 배우며 Y야. 그날, 내가 남자처럼 하고 다닌다며 혀를 차다가도, 내 눈빛이 한결 반짝인다며 살짝 한숨을 쉬던 네가 떠올라. 너는 여유 있는 나를 보고 헷갈렸을 거야. 성별 규범을 잘 따르지 않고 이성애 가부장 제도를 하나씩 보이콧하며 사는 내가 편해보여서 기분이 묘했을 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기로 했어. 알리스가 열심히 발로 뛰며 담아온 여성들의 삶과 성 이야기, 그리고 책 뒤편에 그녀가 기술한 질 오르가즘을 둘러싼 허구의 역사를 읽으며 나는 또 다른 깊이를 탐험하고 있어. 이제 나는 “클리토리스가 여자의 성기”이고 “질은 생식기일 뿐”이라는 새로운 선언을 접했어. 앞으로 한동안은 이 새 인식을 가지고 주변을 탐구할 생각이야. 섹스에 대한 낯설지만 지극히 해방적인 시선을 받아들이고 나니, 성으로 비롯되는 수많은 관계 역시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눈이 트이게 되었어. 그래서 Y, 너의 말에 차분히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올 것 같아. 알리스의 말대로, 이제 나는 남과 여라는 정말 허무하고 쓸데없는 이 작은 차이를 “결연히 삭제”하기로 했어. 여자와 남자가 상대의 성별에 집착하지 않고, 누가 무슨 성 역할을 수행할지 일일이 정해두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나는 틈나는 대로 경계를 넘고 무엇이든 재미난 일탈로 너를 헷갈리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발설해보자. 내가 너의 인터뷰이가 되고, 네가 나의 인터뷰이가 되어 ‘차이의 역사’를 새로 쓰자. 너를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게. [필자 한알 - 비혼주의를 깨고 11년의 이성애 결혼 생활을 보낸 후, 2년 전부터는 ‘다시 비혼’으로 삽니다. 딸 둘과 같이 뭘 하면 제일 재미있을까를 연구하고 이를 실험하며 사는 게 낙입니다.] 출처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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