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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백래시(Backlash)로서의 여성혐오와 괄호 안의 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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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Backlash)로서의 여성혐오와 괄호 안의 불의

ㅇㅇ 때문에 없던 여혐도 생긴다.
메갈리아의 등장과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본격적인 활동 이후 굉장히 자주 들리는 소리다.
짐짓 남녀차별에는 반대하지만 현재의 페미니즘 방향에는 동의할 수 없다거나, 메갈리아와 진정한 페미니즘은 다르다거나,
지금 세계는 페미니즘처럼 편향된 운동이 아닌 이퀄리즘으로 가고 있다거나 하는, 페미니즘 후려치기가 판본만 바뀐 채
지난 2년간 반복되고 있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은 교묘하게 본인들의 여성혐오에 대한 책임을 여성운동에게 돌린다.
나는 원래는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너희의 과격함 때문에 엘리트주의 때문에 과도한 피씨함 때문에 지치고 화나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너희가 싫어졌다. 내가 여성을 혐오하는 건 너희 페미니스트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화 위에서 김윤태, 신태일 류의 양아치들은(나는 이런 부류를 ‘일베’를 비롯해 어떤 정치적 성향으로 묶고
분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갓건배나 메갈리아 등을 타깃 삼아 끔찍한 여성혐오 발화를 엔터테인먼트로 활용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의에 동의하고, 이들의 말이 모두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토록 여성혐오 발언이 노골적으로 나오던 때가 있었나. 혹시 - 그들 표현대로 - 잠재적 우군을 내친 것은 아닐까.
그냥 두면 큰 문제없이 살았을 선량한 남자가 ‘한남충’과 ‘자들자들’이란 표현 때문에 여혐러가 된 건 아닐까.
즉 원론적으론 페미니스트들이 옳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선 여혐러를 더 생산하고 세상의 불의를 더 키운 것은 아닐까.
이것은 한 남성 페미니스트인 페북 유저가 나에게 직접 메시지로 밝힌 고민이자 두려움이기도 하다.
백래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페미니스트에게 돌릴 수는 없을지언정 원인이 된 건 사실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그럴 지도 모른다.
반만 년 역사의 여성혐오와 달리, 현재 페미니즘 운동 앞에서 더 노골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성혐오의 발화에는 분명
어떤 반동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다면, 여혐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로 없던 여혐이 생기긴 한 걸까.
미러링을 비롯해 남성들과 싸우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려 한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싸움이 더 위험한 군비 경쟁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나는 여기에 어떤 착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로 ‘없던’ 여혐일까. 앞서 말한
‘ㅇㅇ 때문에 없던 여혐도 생긴다’라는 말은 사실 재밌는 텍스트다.

ㅇㅇ를 채워보자.
1. 나는 ‘한남충’이란 말 때문에 없던 여혐이 생겼다.
이 문장의 발화자가 정말로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여혐이 없는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1-1. 나는 (여성들이 한남충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이것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렇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1-2. 나는 (여성들이 김치녀, 된장녀라는 말에 노출되며 살아도 한남충이라는 말은 쓰지 않아야)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긴축해보자.
1-3. 나는 (여성들이 본인들이 당하는 부당한 공격에도 온화함을 유지하거나 참을 때만)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잘 보면 괄호 안의 가정과 문장의 술어 사이에 수행적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공격 앞에서 수동적
여성상을 강요 및 재생산하면서 여성혐오에 반대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발화자의 정의감에 대한 선의적 해석을 더해줘도
마찬가지다.
1-4. 나는 (여성들이 본인들이 부당한 공격에도 온화함을 유지하고 나처럼 정의로운 남성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때만)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솔직히 더 문제다. 여성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ㅇㅇ를 바꿔보자.
1. 나를 ‘가르치려는 태도’ 때문에 없던 여혐도 생겼다.
이것은
1-1. 나는 (여성들이 나를 가르치지 않을 때만)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1-2. 나는 (여성들이 무엇이 여성혐오인지에 대해 나를 가르치지 않을 때만)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1-3. 나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는 혐오가 왜 여성혐오인지 나에게 가르치지 않을 때만)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또 다시 수행적 모순이 발생한다. 여성혐오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여성혐오인지에 대해 배우고 그것에 반대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들을 괄호 안의 불의라 말하고 싶다.
만약 그동안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력을 쌓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어떤 반동으로서의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없던 여혐이 생겨난 게 아니라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난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할 것은 이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난 것이 실제로 이 세상 불의의 총량을 늘렸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보기 어렵다. 바로 그 괄호 안에 이미 불의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여성혐오의 발화는 아닐지라도
그 불의는 이미 구조적 습속적 여성혐오를 강화 및 재생산한다. 오히려 이러한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날 때 그동안
선량한 남성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던 이들이 얼마나 구조적 습속적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키워왔는지 드러나며
비로소 우리는 빙산의 밑 부분을 이루는 거대한 불의를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보기엔 불편하지만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니며, 싸움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무엇을 타격해야 하느냐는 차원에서
괄호 안의 불의가 드러나는 것은 실천적 차원에서 진보면 진보지 퇴보가 아니다. 이 지긋지긋한 반동의 시간도 언젠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진보의 궤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작가, 칼럼니스트 위근우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54616791277688&id=100001881490739
레몬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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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2017-11-01 15:22:15
이거 조금 애매한 문제같아요. 레디컬 페미니즘의 방향성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고, 그럼에도 생각이 짧은 대다수의 대중은 자기들이 원래 생각한 방향을 과격하게 실행에 옮길 뿐이거든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특히나 어느 한 쪽만 피해자라고 할 수도 없으니 더 풀기 어렵고...
레몬파이/ 생각이 짧은 대다수의 대중은 누군가요?
풍랑/ 레디컬 페미니즘을 목도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단지 그들만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요.
풍랑/ 나는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잘못된 건 너희들이다 라는 걸 생각없다고 말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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