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MA, 소장품기획전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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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일요일에 서울 용산에 새로 오픈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 다녀왔습니다. 용인에서 옮겨온 다음 처음 여는 전시로 'APMA, The Beginning'이라는 이름으로 소장품을 선보였어요. 친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꼭 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집을 나섰습니다. 선사시대부터 2010년대 작품까지 특별한 기준 없이 수장고에서 꺼내왔나 싶을 정도로 기획의도는 알 수 없고, 놀랍게도 모든 작품에 대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더욱 놀랍게도 작품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미흡했구요. 덕분에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근접해서 볼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다음 전시부터는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고한 선대 회장 때부터 오래 전부터 작품을 수집해왔다고 하는데 훌륭한 작품을 덜컥 벼룩시장에 내놓은 느낌이랄까. 3,000만 원대 롤렉스 시계를 무심하게 진열해놓은 일본 돈키호테에 온 느낌이랄까. 전시의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는 매우 만족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 젠더, 섹슈얼리티에 관한 작품도 적지 않게 보였는데요. 그 가운데 흥미롭게 본 몇 작품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미술관에서 제공한 해설에 제 감상을 덧붙였습니다.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Dorothy> 냄비를 이용하여 하이힐을 만들었어요. 요리는 여자가 할 일이라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전복시켜 현대적인 여성상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냄비가 반사하는 영롱한 빛깔이 공간을 가득 채워 요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보라고 가사의 가치를 되새기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네요. 데미안 허스트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Line of Control)이 슬쩍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하에 내려가 처음 마주한 작품이었는데 사람 키를 넘는 크기로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함이 강렬했습니다. <강형구, Woman> 초상화를 많이 그리는 작가라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캔버스가 아니라 알루미늄판에 유화물감으로 채색을 하고 공구로 긁어내어 저 번쩍이는 은발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감이 아닌 알루미늄의 속성을 제대로 활용한 것이지요. 회화이기도 하고 판화이기도 한 셈이군요. 이 작품도 사람 키만 한데 가까이에서 보면 점묘법처럼 은색 머리칼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긁어낸 자국이 보입니다.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Big Booby> 폴 스미스에서 거북이를??? 냄비받침을 입체적으로 확대한 것인데 레이스 뜨기와 헝겊 바느질 등 수공예를 작품에 적극 사용하여 일상적인 가내 수공업의 가치와 여성의 가슴을 연상하게 하여 여성성을 부각시킨 작품이라 합니다. 조명이 포인트입니다. 하이라이트를 중심이 아닌 위쪽에 두어 옆에서 볼 때 자연스레 중력에 순응하는 가슴의 형상을 끌어냈습니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 Make Out, Plasma Version> 관람객들이 신기해하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서면 센서가 그림자를 인식해서 작품에 밝은 빛이 납니다.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밝은 색은 실시간으로 바뀌죠. 그림자를 밝게 도치한 것도 신선한데 재미있게도 그림자 영역 안에서는 키스하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관객이 사라지면 키스도 끝이 나죠. 유쾌한 작품입니다. <그레고르 힐데브란트, Das Mosaik - A ce soir> 영화 Nelly(A ce soir)에서 소피 마르소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제목처럼 모자이크 작품인데 저 잘게 보이는 조각들은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카세트 테입의 옆면이에요. 1980년대의 우상 소피 마르소, 카세트 테잎, 침전의 예감, 멀어져 가는 추억. 응팔이 떠오르고 삼성 마이마이, 소니 워크맨... 작품에 쓰인 소재가 작가의 의도를 함축하여, 가만히 보노라면 애잔함이 밀려옵니다. <이불, Infinite Starburst of Your Cold Dark Eyes>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설치작가인 이불 작가의 작품입니다. 건축재료를 여성의 몸과 결합하여 디스토피아에 갖힌 몸이지만 빛을 받아 탄생한 그림자와 반사광은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암시합니다. 일견 무섭게 보이다가 잠시 후 이 공간을 느끼면 양가감정의 묘한 심상이 몰려 왔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오래 머물며 지켜보던 작품이었네요. <바네사 비크로프트, VB 52. 166.nt> 작가의 주된 관심사는 여성의 몸과 이를 둘러싼 시선으로, 모델과 작가의 친구들로 구성된 32명의 여성은 남성들이 서빙한 음식을 먹을지 말지 결정하는 퍼포먼스를 5시간 동안 벌였다고 합니다. 식탁 위의 풍성한 음식, 모델들의 화려함, 그 이면에는 작가의 식이장애 경험과 음식에 대한 애증이 얽혀 있습니다. 굉장히 크고 선명하고 원색적인 데다가 입체감이 있는 사진이라 눈에 확 들어왔어요. 글을 쓰다 보니 저도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살펴보고 제 감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네요. 레홀에서 다양한 글이 오가지만 성을 근본으로 한 성애, 성평등에 관한 정보와 글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썼습니다. 함께 보신 분들의 성적 심미안과 성인지적 관념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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