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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들에게 남아있는 것들 -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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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멋진 하루]

이별한 연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닮아있던 모습들, 사귀면서 맞아 우린 이래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 하는 공통점들,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공유했던 추억과 시간들. 그런 것들은 모두 그리움이 되고 아픔이 되어서 남는다. 왜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에서부터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아픈 것이라는 후회까지. 그런데 여기에 그런 것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남은 연인들이 있다. 350만원의 채무 관계. 영화는 그렇게 시작을 한다. 

여자와 남자는 1년 전 이별을 했다. 여자는 몰랐지만 만나는 동안 행복해했던 모습만큼이나 헤어지자고 말 하는 그때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남자는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350만원이라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을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뻔뻔함뿐이다. 여자의 사정은 알 수 없다. 남자가 떠난 이후 새로 차를 뽑고 남자가 경마장에 자주 들락거린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듣고는 그를 찾아 온 것이다. 여자는 정말로 350만원이라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을까? 그래서 헤어진 지 1년이나 지난 연인을, 간단하게 전화로 돈 갚으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 꼭 받아야겠다며 남자를 따라 나선 여자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1년 사이 남자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던 일이 망했고, 결혼을 한 것도 놀라운데 그 새 이혼까지 했단다. 하지만 남자는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간 일이고, 지나간 일은 어떻게든 좋게 좋게 생각한다. 지금 집 한 칸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지에 옛 여자 친구는 당장 돈을 내놓으라면서 옆에 꼭 붙어서는 남자가 여기저기 돈을 빌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화 한번 내지 않는다. 오히려 너스레를 떨며, 오지랖 넓게도 그 상황에서 조차 간헐적으로 옛 이야기들을 꺼내며 여자를 더욱 더 열 받게 한다. 여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내가 이래서 이 사람과 헤어졌지. 돈 350만원이 아니라 이 사람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어. 한때는 멋있어 보였고 그런 성격 때문에 여자는 남자를 만났었지만 이제 여자는 그런 남자가 징글징글하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여자가 보는 앞에서 여기저기 돈을 꾼다. 그리고 돈을 꾸는 대상은 주로 여자들이다. 여자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 속사정까지는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여자의 짜증은 그녀의 어울리지 않게 짙은 스모키 화장만큼이나 여자의 곁에서 어색하게 붙어있다. 이들은 제목과는 전혀 다른, 하나도 멋질 것 없는 하루 동안의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남자는 돈을 꾸고 여자는 그 돈을 차곡차곡 받아서 350만원을 채워가면서. 그러면서 둘은 별 수 없이 밥도 함께 먹고 아이스크림과 커피도 마신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지난 사랑의 그림자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같이 음악을 듣던 기억들, 여자에게 처음으로 남자가 말을 걸어왔던 순간들.

사랑이 끝나고 나서 만약 채무 관계가 남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돈을 끝까지 찾아내서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에라이 먹고 떨어져라 하며 쿨하게 잊어버려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이 하루 동안의 불편한 여행에는 조금의 아름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의 새로운 매력을 알아내지도 못하며 남자의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에 그를 돕겠다는 착한 생각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여자는 그저 감정을 숨긴 채 돈을 받아 낼 뿐이다. 아무리 여러 가지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도 여자는 나는 돈을 받으러 이 남자를 만나러 왔다 라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의 사정도 딱한 주제에 오지랖 넓게도 여러 사람들을 걱정하고 챙긴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전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던 돈 350만원은 그가 그렇게 걱정하고 챙겼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모아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함께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을 때 조차 그에게 밥을 사지 않는다. 오히려 이자를 받지 않고 원금만 받는 자신이 뭔가를 크게 손해보고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어떻게 헤어졌을지, 그리고 헤어질 때 얼마나 여자가 남자를 끔찍하게 느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한 배려라고는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그가 즐겨 마시던 캔 커피 하나를 계산 한 것뿐이다. 그 600원짜리 캔 커피 하나에 남자는 기뻐한다.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그러면서 남자는 세상의 비싼 커피들을 욕한다. 어쩌면 남자의 세상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단 자판기 커피나 간편한 캔 커피면 될 것을 사람들은 왜 에스프레소를 가지고 이것저것 섞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 시간을 기다리며 비용을 지불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그렇게 심플한 남자여서 그런지 그가 사는 방식은 여자가 볼 때 한심 그 자체이다.

만약 이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자도 한때는 그가 가진 특징들, 지금은 단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한심함 들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남자는 착하니까. 그녀가 말 하는 것처럼 남의 돈을 떼어먹고 부러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남자는 헤어질 무렵 또 다시 차용증을 써 준다. 아직 다 갚지 못한 돈 20만원에 자동차 견인비까지. 그러나 여자는 이번에는 그 차용증을 다른 의미로 보관할 것이다. 언젠가 돈이 급해지면 또 다시 남자를 찾아서 돈을 갚으라고 하는 대신 여자는 그냥 편지처럼. 마치 연애 때 주고 받은 작은 낙서처럼 간직 할 것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들은 참 많다. 그리고 우리는 되도록 최선을 다해 그것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랑을, 새로운 삶을 시작 할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헤어진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다시 만나면 그 이유는 마치 사라지지 않은 유령처럼 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약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딱 한 가지이다. 헤어질 때의 문제점이 잠시 헤어져 있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멋진 하루]

제목과는 역설적이게 전혀 멋지지 않은 하루 동안을 함께 보낸 이 연인들은 이제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잠깐 미련이 남아 남자를 내려준 곳으로 다시 가지만 남자는 여전히 길에서 누군가에게 너스레를 떨고 있고 여자는 웃으며 그 장면을 본다. 그리고 다시 유턴을 한다.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그가 안되어 보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더라도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그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일은 어쩌면 서로 조금씩이건 많이 건 달라져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사랑 하나를 더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욕심이다. 오리려 하나를 얻었으니 다른 하나를 잃을 각오를 할 때 그때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보낸 멋지지 않은 하루가 진짜 멋진 하루가 되려면 말이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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