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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나는 왜 남성성을 포기했는가에 대한 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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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을 어떻게든 구하긴 했어. 그냥 엄마한테 야자끝나고 떡볶이 먹게 만원만 달라고 하니까 순순히 주더라구...
(도저히 이야기를 풀 엄두가 나질 않아서) 만원을 받고 나서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어쩌면 안그래도 구겨진 내 평판  더 망가뜨릴지도 모르는데 여기다 내 돈까지 갈아넣어야 한다는게 이해가 안됐지. 그런데도 만원을 다음날 잊지않게 꼭꼭 지갑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욕먹기 싫어서 그랬겠지...

다음날에 학교를 가자마자 어제 그 1인자 여자애가 나한테 아는척하면서 다가왔다. 나는 쑥스러워서 바로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서 건넸다. 그애는 피식하고 웃고선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데 아마 그때 나한테 다른 할 얘기가 있었던것 같았음. 예를 들어 하기 싫으면 굳이 안해도 된다라던가...

점심시간 끝나갈때쯤 걔가 나를 다시 불러서 걔 자리로 갔더니 걔가 노트에 머리카락을 슥슥 그려서 나한테  보여줬다. 단발머리였고 너네가 흔히 예상할수 있는 뱅 앞머리 단발이었음. 여자애들은 궁금해죽겠다고 빨리  주문하라고 성화였고 주문담당이었던 여자애는 집에가자마자 주문하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나는 남자애들이 저쪽끝에서 내 뒷담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것 같았음... 가시방석...

그렇게 얼빠진 상태로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1인자 여자애 (이하 혜정)가 주말에 연습해보자고 한것에 얼떨결에 동의해버렸다. 물론 일본애니캐릭터들처럼 잠깐잠깐! 뭐라고!? 할 용기 따윈 없었다. 이미 고개를 끄덕여버렸기때문에 다시 물어볼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진짜 나 한심하지ㅋㅋ

이렇게해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애 번호를 저장하게 되었다. 당시엔 카톡이 그렇게 보급이 된 상태가 아니라서 무조건 번호였어야 했거든. 스마트폰도 아이폰3가 고작이고. 불안하긴 했지만 막상 여자번호를 따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만은 않았던걸로 기억해ㅋㅋ 게다가 그때 당시엔 그 여자애랑 1:1로 만날거라는 오만한 망상을 갖고 있었거든... 물론 주말이 되자마자 5명의 여자애들 이 떼거지로 나타나서 바로 혜정이 방으로 연행되어갔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 번호에 여자 방까지 구경하게 됐는데 점점 불안해졌음. 알지도 못하고 친하지도 않은 애들인데다가 안그래도 말도 버벅대는데 여자애들이니까... 게다가 오게 된 계기도 해괴했고 여자애들은 지들끼리 떠들다가 두명은 먹을거사러간다고 나갔고 나머지 두명은 메이크업 준비를 했음. 혜정은  나한테 씻고 오라면서 수건을 줬다. 정말 어지간히도 날 괴롭히고 싶었나보다하고 체념하고 세수하고 나오니까 아예 나보고 샤워를 하고 나오라대?


이건 아닌거같아서 내가 진짜 두눈 감고 이렇게 말했다. " 아무리그래도 처음 방문한 집에서 샤워까지 하는건 너무 실례같애 " 라고 했음. 너무 교과서적인 어투라서 아직까지 기억한다ㅋㅋ 혜정이는 나한테 신경쓰지말고 괜찮다고 문 안딴다고 장담을 했는데 문 안딴다는 장담이 더 이상했다.

다른 여자애들은 이미 준비를 마친상태였고 나한테 빨리 씻고나오라고 성화를 부려대서 어쩔수 없이 샤워를 했음... 내가 그렇게 더러워보였나 하는 수치심에 고개도 안들어졌음... 하긴 더벅머리에 앞머리는 코까지 내려올 지경이었고 지저분한 인상이긴 했으니까.

샤워를 하는건지 물질을 하는건지도 모를사이에 대충 씻고 나오니까 벌써 먹을거사러 나갔던 애들은 떡볶이랑  음료수랑 이것저것 사온 상태였다. 난 젖은 수건을 개어서 화장실 앞에 조심히 뒀다가 젖은 수건을 왜 개놓냐고 쿠사리 먹었고ㅋㅋ 아싸였던 나한테 그래도 여자애들은 잘해줬던거같다. 밥 먹었냐고 떡볶이 먹으라고 하고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없냐 왜 그렇게 우울해보이냐는 등의 온갖 소리를 다 했지만 나한테는 그마저도 목말랐으니까..ㅋㅋ 누군가랑 진솔하게 대화한적이 오랜만이었거든.

코로먹는건지 입으로 먹는건지도 몰랐지만 대충 처먹고 입 헹구고 돌아오니까 한 여자애가 가발을 나한테 씌워 줬다. 망으로 머리를 들어서 이마가 드러나니까 나도 모르게 손으로 가렸다가 찰싹하고 손뼉맞음... 가발을 일단 씌우니까 뭔가 답답했다. 혜정이는 나한테 거울 한번 보라고 갖다줬는데 나는 극구 사양했음... 볼 용기가 안나갖고..ㅋㅋ

한 그렇게 30분넘게 아무생각도 없이 얘네한테 내 얼굴을 맡겼다. 여자애들은 이따금씩 지들끼리 열을 내면서 이게 아니다 저거다하면서 내 얼굴을 지웠다 그렸다하고 있었음.난 그냥 외계인에 납치된 지구인의 심정을 체념하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진짜 엄청 시간 지나니까 이제 화장 끝났대. 혜정은 자기 교복 입어보라고 블라우스 여벌을 가지고 왔고 나는 왠지 이게 넘어서는 안될 선 같아서 옷은 안입겠다고 말했어.

혜정이는 정색을 하면서 니 화장하는데 얼마나 걸린줄 아냐고 약간 차갑게 말했어. 하긴 나같아도 짜증났을거야... 먹을거 먹여줘 씻는거 허용해줘 화장도 한시간넘게 해줬는데 여기서 초치니까 열받았겠지...결국 깨갱함..

꾸역꾸역 블라우스 입고 치마두르고 하는데 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눈물이 덜컥 나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었는지 내 자신도 잘 모르겠어... 근데 그때 진짜 닭똥처럼 눈물이 펑펑 나오드라 혜정은 갑자기 내가 눈물을 쏟으니까 당황했는지 왜 우냐고 다독여줬음. 그 목소리엔 굉장히 미안해하는 느낌이 섞여있었어. 아무래도 자기가 강제로 시켰나하는 생각이 들었나봐 내가 훌쩍거리니까 다른 여자애들도 왜 우냐고 당황해했다. 난 진짜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메는 목 붙잡고 발만 동동거렸음...어색하게 여자교복 입고 쭈뼛쭈뼛서서 울고있으니까 불쌍했는지 다들 아무말도 안하다가 혜정이가 나한테 거울을 들이밀었음...

난 내가 어떻게 보일까 무서워서 거울에서 일부러 시선을 떼느라 안간힘을 썼는데 혜정이가 한번 보라고 차분하게 말해서 꾹참고 돌아봤어. 처음 거울을 보고 든 생각은 온통 물음표밖에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선 물음표만 가득했음. 거울에 비춰진 저게 내 모습인가? 입술은 붉고 아이라인때문에 눈매는 강렬했고 내려온 앞머리 덕분에 더 어려보였어. 예쁘고 자시고를 떠나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보는 느낌이 들었음. 그냥 이해가 안되는거야.

그러다가 이게 내 얼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거울을 잠자코 봤음. 나도 꾸미면 이렇구나싶어서. 거울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애들이 멋쩍은지 나한테 예쁘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날렸어. 난 얼빠진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다가 혜정이한테 미안하다고 고개숙이고 사과했음.

혜정이는 나한테 진지하게 지금 이 모습 마음에 안들면 안해도 된다고 했어. 난 같은 고등학생인데도 목소리 에서 느껴지는 차분함때문에 걔를 두세살 위 누나처럼 생각했던거같애. 왠지 포근했음. 난 마음에 안드는건 아니고 어색해서 그랬다고 말했고 쑥스럼탄거같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음.

그 이후엔 기억이 잘 안나. 다른 옷 몇벌 더 입어본걸로 기억함. 나도 생각보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여자애들덕분에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점점 얘네 호응에 맞춰서 같이 놀았던거같애. 질질짠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옷입고 패션쇼하면서 놀고... 노는 애들에 대해서 막연히 선입견이 있었는데 얘네 떄문에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거같애ㅋㅋ 좋은 애들이었어 정말

그렇게 한 5시까지 옷입히고 놀다가 한 명 집에가고 혜정이랑 나머지 셋이랑 나 합쳐서 다섯이서 노래방을 갔음. 혜정이 교복입고ㅋㅋㅋ 여자애들한테 둘러쌓여서 노래방까지 가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청일점이라는 생각에 어색해하다가도 지나가다 건물 유리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면 그냥 영락없이 친구들과 노래방 놀러가는 여자애였으니까.(묘하게 흥분되기도 했고)

가서 노래는 몇곡 안불렀지만 일부러 재밌게 분위기 띄우려고 꽥꽥 소리지르면서 노래불렀음. 다행히도 호응해줫고 나는 새 친구들을 얻었다는 생각에 기뻐서 좋아했던거같애. 물론 얘네는 역시 좋은 학생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첫 담배를 여기서 배웠음...ㅋㅋ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다가 밤다되서 나오니까 다른 애들은 다 가고 혜정이랑 둘만 남아서 걔네집으로 갔어. 일단 걔 옷이기 때문에 돌려줘야했으니까 난 별생각없이 걔네 집으로 갔음.

난 이때 화장 지울때 기름으로 지운다는걸 처음알았음... 무릎꿇고 앉아있는데 혜정이가 화장솜에 클렌징 오일 묻혀서 이렇게 이렇게 닦으라고 닦아줬는데 발기 될 뻔함...  여자애집에 단둘이 게다가 난 걔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흥분했는데 걔한테 들킬까봐 마음속으로 반야심경 외움...

좀 있으면 엄마온다고 서둘러서 다 하고 밖에 나올때 걔가 버스 정류장 앞까지 와줬는데 이때만큼은 얘랑 내가 애틋한 사이가 된거같아서 진짜 심장이 엄청 뛰었다. 버스 올때까지 별 얘기 안하다가 버스타고 가면서 내가 손흔드니까 웃으면서 손흔들어 줬음... 걔의 그런 행동들이 나에대한 연민이라는건 나중에 알게 됐지...ㅠㅠ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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