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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나는 왜 남성성을 포기했는가에 대한 썰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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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전학을 가야할정도로 내 이미지는 완전 ㅆ창이 났어.2학기 기말고사 끝난 시점에서도 난 학교나오는게 무서웠음. 내가 반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이상한 눈으로 째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거든. 게다가 점심시간에 친구도 없이 웅크리고 있으면 뒤에서 발로 차대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발로 차대는건 1학기때도 있었는데 그땐 내가 뒤돌아보면 '미안 딴 놈인줄 알았어'하면서 둘러대기라도 했는데 이젠 돌아보면 '뭐 시발아'하면서 적반하장이 됐음... 그 이후로는 뒤에서 누가 발로 찍고 가도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그리고 7교시 끝나고 하는 보충수업때는 다른 반 누군가가 종이에 수치스러운 말을 써서 내 등에 붙이고 갔는데 그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ㅂ신'은 양반이었고, '자지 뽑아가세요' 도 있었고 '후1장딸 중독임', '트랜스젠더','발로 차고갈때마다 천원씩 드림' 등등 학교 생활하기 힘들정도로 괴롭힘 당했다. 게다가 붙여놓은거 떼려고 하면 붙인놈이 지켜보고 있다가 떼지말라고 엄포를 놨음.

낙서만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더 참기 힘들었던건 그 내용 그대로 실천해주는 애들이 많았다. 특히 발로 차고 갈때마다 천원씩 드림 이라는 낙서가 붙은 뒤에는 그날만 십몇대 뒤에서 발로 맞았다. 어떤 놈은 복도 끝에서 달려오면서 차는 애들도 있었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지갑은 개털이 됨. 진짜 천원씩 가져갔다. (5천원 한방에 가져간 놈도 있었음)

그리고 혜정... 연락도 안되고 이젠 아는체도 안해줬다. 나도 안했다. 괜히 아는 체 해야 걔만 곤란해지니까...그 짧은 기간동안 나는 '아싸'에서 '왕따'가 되었다. 그것도 전교급으로.성적도 개판에 학교 모두가 내 잠재적인 적이 되었음. 누가 날 괴롭히려고 들지 알 수가 없어지니까 대처하는것도 지쳐버린거임.담임이 눈치채고 나한테 무슨일 있냐고 교무실로 불러서 상담했는데 난 그냥 외면하고 괜찮다고만 얘기했다.어차피 담임선생이 일의 전말을 알고 대처한다고 한들 달라질게 없는건 분명하니까.그리고 마음속으로 여장 다시는 안하겠다고 다짐했다. 

겨울방학 되고나서는 난 의무적으로 방학때 나가야되는 보충수업을 안나갔다. 어차피 보충 나오는 애들은 나한테 별 관심도 없는 공부하는 애들이었지만 그래도 난 싫었다. 학교 건물 자체가 나한텐 거대한 지옥이었거든. (고3될 애들인데 방학보충 출석율이 30% 도 안됨. 학교수준 알만하지?ㅋㅋ)

이대로는 못살겠다 싶어서 전학도 생각해봤다. 그래서 엄마한테 여러핑계를 대면서 (학교 수준이 너무 낮다,다 양아치같은 애들밖에 없다는식) 전학하고 싶다고 했는데 말 꺼내자마자 바로 안된다는 소리 들음. 고3인데 왠 전학이냐고 핀잔만 먹고 1년만 더 참으라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엄마 원망은 안한다. 내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런 내 성격으론 어딜 가도 괴롭힘당할게 뻔했거든.혼자있는거 좋아하고 말도 없고 게이라고 놀림 받기 딱 좋게 생긴데다가 고등학교 2년다니면서 원래 친구들은날 버렸고 그나마 최근에 친해지고 마음에 뒀던 여자애한테도 이젠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데, 다른 곳을 간다고 나아질거같다곤 생각 안했음.


겨울방학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갑갑해서 일부러 잊어보려고 공부도 간만에 다시 잡아봤는데 한동안 놨더니 손에 더럽게 안잡히드라.1월중순까지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초저녁 쯤에 갑자기 혜정이한테 문자로 '뭐해?'라고 왔음.난 신난다기보단 불안해했다. 잘못했다가 또 그때처럼 얻어맞는거 아닐까 싶어서 답장 안하고 있다가 1시간 만에 겨우 '자고 있어'라고 답장함...ㅋㅋ 말도 안되는 답장...혜정이도 한참 있다가 답장 보냈는데 '밥 먹었어?'라고 왔음.안 먹었다고 답장했더니 '곱창 사줄까?'라고 왔다. 갑자기 가슴에서 뭔가 이상한게 뿜어져 나오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음.그때 감정은 묘사하기 존나 어려운거였다. 근 몇달간 아는척도 안하다가 갑자기 이런 문자가 오니까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밥 먹자고 하는데 아는체도 안하던 사이에서 나오기 힘든 소리였음.

순간 '다른 애들이 나 가지고 놀려고 얘 폰 뺏어서 이렇게 보내는건가'라는 의심도 품었는데 혜정이한테 만나자는 얘기가 나온게 훨씬 기뻐서 이성을 잃고 거의 일주일만에 씻음.때 벗기고 하느라 원래는 10분이면 다 씻는데 30분가까이 씻었다. 그리고 머리에 린스도 칠하고 드라이기도 확실히 해서 나름 뽀송뽀송(?)하게 하고 나갔음. 근데 내 옷 아빠가 입고 나가버려서 파란색 여성용 야상(엄마옷) 입어야 했음...ㅅㅂ... 신발은 남색 스코노...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데 저 쪽에서 혜정이가 걸어오는데 그때 가슴 멎을 뻔했다.평소에 입던 교복이 아니라 진짜 단정한 옷입고 나왔는데 내 눈엔 그게 그렇게 예뻤다. 우리 학교 애들은 겨울에도 꿋꿋하게 삼선쓰레빠를 신고다니는 ㅄ종족들이 많았고 얘도 학교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쓰레빠만 신고 다녔는데...

그날은 어그부츠도 신고 통통한 비니도 쓰고 나왔음. 그때 부의 상징이었던 노스페이스 패딩도 안입고 순록무늬?로 짜여진 두꺼운 카디건에 목도리하고 나왔음. 노는애라는 인상이 한방에 가실만큼 그만큼 단정했고, 또 예뻤다. 게다가 다른 애들이랑 같이 만나는줄 알았는데 얘 혼자만 왔고.. '다른 애들은?' 하니까 '누구?'라고 하면서 나한테만 사주는 거라고 얘기해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둘이 아무 얘기도 안함... 걸어서 5분거리였는데 한 50분 걸은거 같았음... 둘이 진짜 아무런 얘기도 안했거든.식당 들어가서 앉고 물 따라주고 수저 세팅까지 했다. 원래 내가 그렇게 세련된 성격은 아니었지만 혜정이랑 너무 어색하다 보니까 안하던 짓까지 함..ㅋㅋㅋ먼저 말을 꺼낸건 혜정이였음. 오랜만이라고. 나는 긴장돼서 대답은 안하고 고개만 끄덕임. 혜정이가 '아픈덴 없냐'고 묻는데 직감적으로 그날 처맞은곳 얘기하는걸 알았음. 당연히 '응...'혜정이는 한숨을 푹 쉬고서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미안해'라고 하더라. 내가 '뭐가?'라고 대꾸하니까 아무 말없음...나도 아무말 없이 있다가 '미안할게 뭐있어'라는 식으로 혜정이를 변호해줬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내 문제에 있어서 내 책임을 통감했을 뿐이지 혜정이를 원망한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주문한거 나올때까지 서로 아무말도 안했다; 곱창은 익었는데도 한마디도 안꺼내다가 내가 넌지시 '너 나랑 있는거 누가보면 곤란해지는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혜정이는 아무 말 없이 물만 마시다가 '괜찮아'라고 했음.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환희가 피어오르는것 같았다. 근데 한편으로는 얘가 왜이럴까 싶은 강한 불안감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먹다가 물로 입한번 헹구고 물어봄.' 나 같은 애한테 왜 밥 사주냐' 고 ㅋㅋ혜정이는 피식하고 웃다가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라고 답해줌. 분위기가 약간 풀려서 난 살짝 신났던거 같다.

코로 처먹듯이 맛도 못느끼면서 먹는데 '이 집 맛있지'라면서 나한테 말함... ㅋㅋㅋ 대충 맛있게 먹는척 하면서 '여기 괜찮네'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는데 사실 그 때 별로 맛 없었던거 같다 계산하고 나오려고 내가 지갑 꺼내니까 '내가 산다고 했잖아'라면서 내가 돈 못꺼내게 함... 엄마한테2만원 받은거 있어서 당당하게 내가 내려고 했는데 굳이 막더라. (엄마가 방학때 내가 너무 처박혀만 있으니까 바람좀 쐬고 오라고 준 용돈이었음)

잘먹었다고 하고 가려는데 얘가 커피 하나 먹자고 해서 이번에도 편의점인가 시발 했는데 이번엔 카페 감 ㅋㅋ한 10분 걸어가면 먹자골목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스타벅스 들어감. 평소에도 얘가 어느정도 사는 집이라는건 알았는데 막상 스타벅스 커피 사준다니까 어안이 벙벙했음. (워낙 우리집도 흙수저라)

둘이 바닐라 라떼 시키고 앉아있는데 얘가 갑자기 나한테 '너 진짜 괜찮은 애인거 같은데 왜 애들이 그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면서 동정아닌 동정을 해줌. 나는 움찔했다가 미소 쥐어짜내면서 '그러게'라고했는데 그 타이밍에 딱 눈물 흘러나옴 ㅋㅋ 그때 왜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를 안도감? 같은거였던거 같다. 힘든 시기에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것도 완벽히 혼자라고 생각한 시기에 그런 연민은 정말 묘사하기 힘들정도로 카타르시스가 컸던거같음.

내가 눈물 소매로 닦으니까 얘가 안타까웠는지 계속 미안하다고 했음. 지금 돌이켜봐도 참 성숙하고 인성 좋은 애였는데 왜 그런 양아치들이랑 어울려다니는건지 이해가 안됨.라떼 할짝거리다가 아직도 얘가 나를 왜 불렀는지 납득이 안가던 참에 얘가 넌지시 '넌 정말 좋은 애같다'고 말함. 난 이때 심장 두근거리는걸 주체할 길이 없었다. 설마설마 하면서 고백받는건가 하면서 김칫국을 코에 부어넣고 있었음. 그도 그럴게 이렇게 예쁘게 입고 나왔고 밥에 커피까지 사주는데 이런 호감 표현이 또 어딨겠노 '나 너랑 터놓고 지내도 괜찮아?'라고 하는데 가슴이 터져버릴거같더라. 나는 고개 끄덕거리면서 응응거렸는데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얘가 꺼낸게 자기 고민이었음.


내용을 간추리면 혜정이네 부모님이 최근에 빚때문에 서로 이혼소송을 하고 있다는 거였음. 워낙 부모 사이가험악해서 집에 있는게 죽기보다 더 싫었는데 나와서 놀려고 하면 애들은 전부 강제로 학원에 갇혀 있거나 다른 일 때문에 만날 수도 없었고 혼자서 독서실이라도 가서 공부하려고 하면 공부가 손에 안잡혀서 하루종일 10몇시간을 지루하게 보내고 있다는 거였음.그래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친구들이랑 통화로 좀 털어놓으려고 해도 깊게 사귄 애들이 아니라 그런지 다 소귀에 경읽듯 '힘내'라고 형식적으로만 조언해줄뿐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했다고하더라. 그래서 힘들게 지내다가 나라면 왠지 자기 얘기를 들어줄것 같았는데 혜정 걔 스스로도 자기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걸 알고 있어서 나한테 연락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솔직히 조금 화가 났음. 나는 학교에서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온갖 이지메는 당하고있었는데도 관심한번 없다가 막상 자기가 힘들때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날 찾았으니까.근데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얘가 솔직하게 날 무시한거에 대해서 사과하는걸 들으니 다시 화가 쪼그라들음. 게다가 나는 항상 나와 함께 말해줄 사람, 들어줄 사람이 너무나도 절실했었다. 겉으론 혼자있는거 좋아하고 그랬지만 솔직히 나도 친구랑 얘기하는거 좋고 이성교제도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혜정이가 내 눈엔 안쓰러워보였고, 무엇보다 나는 '너도 당해봐라ㅗㅗ'할만큼의 위치도 아니었음ㅋㅋ어쨌든 내가 내 어렸을때의 개판이었던 우리집 얘기 꺼내면서 혜정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나도 여러모로 공감을 해주려고 노력했던거같다. 한 얘기한지 두시간넘어서 얘가 눈물 흘리면서 '아빠가 무섭다'고 할때는 나도 같이 울었음. 괜찮아질거야... 그래 마음껏 울어... 같은 말 하면서 다독여줬음.

나중에 집에가기전에 같이 공원 지나가면서 걷는데 혜정이가 '니가 여자였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아 결국은 나는 얘한테 있어서 남자로 보이는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얼빠진것 처럼 넋놓고 있다가 나도 '그러게'라고 얼떨결에 말함ㅋㅋ 그리고 이게 얘한테 있어서 내가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오해를 심어주는 씨앗이 되었음...ㅠ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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