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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적인 섹스는 파트너도 희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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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졸업]

상담을 하다 보면 섹스만큼은 오직 남편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은 섹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이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희생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이라고 되어 있다. 
 
희생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 여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위해 희생적인 섹스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희생도 싫은 것을 하는 경우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싫은 것을 하는 경우는 그 자체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경우는 설령 희생을 한다 해도 그처럼 행복할 수가 없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설레고 들뜨고 마치 연애하는 기분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에 뿌듯함마저 느낀다. 
 
그런데 남편과의 섹스는 죽기보다도 싫다. 분명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를 하지만 하고 나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다. 그러면서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기까지 하다.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신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는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할 때는 행복하기까지 한데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남편과의 섹스는 지겹고 불행하기까지 하다. 사랑이 식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남편은 아내와의 섹스를 행복해할까? 아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섹스를 했다면 뭔가 대단한 성적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여자들은 남편이 사정을 했으니 만족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차라리 나무토막하고 섹스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불만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희생하며 살았다고 외칠 뿐이다. 
 
남편은 다른 것은 몰라도 아내와의 섹스만큼은 정말 재미없다고 말한다. 자신은 열심히 섹스를 하고 있는데 아내는 전혀 반응이 없고 마치 딴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느 때는 창녀와 섹스를 했을 때처럼 스스로 동물이 된 느낌이 들고 사정을 하고나면 허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정을 깰 수 없으니 참고 산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아내가 말하는 희생은 가정이라는 틀 속에 남편을 구속시키고 재미없는 섹스로 만족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섹스만큼은 오직 남편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고 말하지만 남편 역시 희생자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남자의 성적 즐거움은 아내를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아내가 성적 쾌감을 느끼면 몸이 유연해진다. 그리고 질이 수축과 이완을 하면서 남자의 성기에 다양한 기쁨을 준다. 그런 즐거움을 주지 못하니 남편은 아내가 나무토막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이다. 남편이 성적으로 무지해서 아내의 몸을 뜨겁게 만들 줄 모르고 삽입 위주로만 섹스를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남편과 함께 성지식을 쌓으면서 다양한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참고 견딘 것이 희생이라면 너무 무지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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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4 2015-01-22 06:39:19
"섹스는 피드백이다"라는  얘기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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