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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되게 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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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시>
 
결혼하는 순간 두 사람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서로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한 만큼 받으려고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는 것보다 특별히 잘해주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한다. 특별히 잘해줬다고 인정받을 때 배우자에게 가치 있는 존재, 즉 ‘특별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극히 평범한 것도 특별하게 느껴지고 일상적인 것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실 두 사람이 특별하게 느낀 것뿐이지 실제로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평범한 것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한번 만날 것을 두세 번 만나고 한번 통화할 것을 서너 번 통화했다. 조금 지나친 것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특별하게 느꼈던 것들이 서서히 평범해지고 지루해진다. 적극적이던 것도 지치고 지나친 것도 나태해진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서 두 사람이 변화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좋았으니까 다시 곧 좋아지겠지.’하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무수히 고민하는 것이 노력의 전부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큼 특별하지 않으면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어려워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것을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몹시 화가 치민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 것’으로 빠르게 바뀌게 된다. ‘특별히 잘해주는 것’과 ‘특별히 못되게 구는 것’은 목적이 같다. 상대방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자신이 ‘평범한 상태’에서 벗어나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다. 자신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굴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책임을 배우자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창피함과 수치심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배우자를 경멸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가장 손쉽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방법은 억지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못되게 구는 것이다. 자신은 남자고 가장이니 그것을 인정하라고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서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한다. 큰 소리를 내고 싸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에는 배우자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 일시적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배우자에 대해 복수할 수도 있다. 배우자를 난처하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심리인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이것을 ‘안이한 우월성의 추구’라고 한다.
 
원래 인간은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완성된 상태로 나아가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성장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린아이가 두 발로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것을 ‘우월성의 추구’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건전한 노력을 포기하고 주목받기 위해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안이한 우월성의 추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악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 소크라스테스의 역설逆說처럼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과 달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화도 일종의 ‘우월성 과시’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아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해서 결국 걷게 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무조건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본능이 아니라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섹스다.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들뜨고 흥분한다. 꼭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아서 한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래서 특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함께 알몸으로 누워 있어도 흥분이 되지 않는다. 섹스한다 해도 재미없고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다 보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성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능력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왜냐면 남자에게 섹스는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잘해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섹스를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일에 빠져 있거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고 직장으로 도망친다.
 
여자는 남자가 섹스를 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혹시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섹스를 했는데도 자신이 만족하지 않으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남자를 불신하고 무능을 탓하면서 다투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사랑해 달라고 보채는 사람을 보면 밉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너는 섹스가 그렇게 좋으냐?’라고 하면서 섹스를 밝히는 여자라고 경멸한다. 남이 볼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상처를 더 많이 받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못되게 구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여자들은 안 그런데 왜 너만 그러냐?’고 해보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더욱더 상대방에게 못되게 굴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계는 지식을 가지고 훈련을 하게 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완벽하면 그게 신이지 사람이냐?’고 하면서도 섹스를 말할 때는 완벽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섹스는 타고나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성적 동물이지만 성적으로 미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장하면 성적 능력은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되게 구는 이유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그것을 알고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함께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서로에게 가치 있는 존재, 즉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없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되게 굴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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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페르세우스l 2016-08-28 11:58:47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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