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들려주는 성(性)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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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는 섹슈얼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탄생은 성에 근거하였고,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평생 동안 우리가 접하는 성적인 경험(그게 상호적이든 일방적이든 자신과의 은밀한 연애든)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그 경험에 대한 무궁무진한 의구심과 호기심과 궁금증은 어떻게 풀 것인가.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하면 아랫목에서 고구마 까 먹으며 듣는 옛날 이야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온 수 요한슨 할머니는 다르다. 수 할머니는 우리에게 야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대한민국에 구성애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수 요한슨이 있다. 요한슨은 성교육자이자 작가이자 간호 자격증까지 있는 공개 연설가이고, 캐나다 정부로부터 공로 훈장까지 받은 여성이다. 동영상 하나만 봐도 이 할머니가 얼마나 쿨내 나는 할머니인지 알 수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디 물어볼 데도 없는 질문들에 신나게 대답을 하는 요한슨은 캐나다에서 모녀가 함께 보기도 할 정도로 사랑받는 방송인이다. 그녀의 미션은 잘못된 상식과 오해를 해소함으로써 모두가 성을 건강하게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핫텁에서 섹스를 해도 되냐는 질문에 손짓까지 곁들여 맛깔나고 명확하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항문성교와 삽입성교를 콘돔 없이 하는 연인을 둔 여성을 친할머니처럼 혼내는 요한슨을 보면 정말 신세계다.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는 바이브레이터를 보면 온갖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의 성교육은 사실상 고등학교 때 멈춘다. 그 이후로는 직장에서 하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는 등 돈을 들여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일상적으로 접하는 성에 대한 궁금증, 고민 등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좀 꽉 막혀있어야 말이지. 그런 곳에 가면 문제있는 사람 같아 보이니까 가지 않는다. 청소년 때는 섹스를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어 놓고 성인이 되고나면 건강하게 성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해 '니가 알아서 해라'라고 하니 어쩌란 말인가. 수 요한슨의 방송을 보면 이런 게 우리 나라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최근에 수 요한슨이 1995년도에 낸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다. 원제는 『Sex, Sex, and More Sex』이지만 차마 사회 풍토상 직역할 수는 없었나보다. 『우리 그 얘기 좀 해요』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에는 연인과 부부가 성관계를 하며 가졌을 고민에서부터 쓰리썸, 월경전증후군, 처녀성, 판타지, 페티쉬 등 우리가 한번쯤은 호기심을 가져봤을 법한 주제들까지 101가지 이야기가 수록돼있다. 모두 요한슨의 방송에 제보되어 요한슨이 직접 답변해주었던 내용을 토대로 문답 형식으로 쓰여 있다. 앤소니 기든스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이라거나 버트란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에 대한 10가지 성찰』, 니콜라스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 허버트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등 섹슈얼리티의 철학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 책들을 사유하며 읽으면 일면 뿌듯함을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삶에 당장 대입 가능한 성과 관계에 대한 분석보다는 관조적이며 대대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제목만 보고 별 뜻없이 집어들었을 사람에게 전혀 흡수되지 않는 정제되고 제련된 지식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 요한슨의 책은 정말 일단 집어들면 막힘 없이 술술 넘어간다. 성에 대해 가장 날 것의 형태로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기 때문에 이해의 과정이 전혀 복잡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매해 'Sexual Health Report Card'라는 이름으로 조사를 진행해 성교육, 성건강 등의 기준으로 대학교별 랭킹까지 메기는데, 우리나라는 성인들을 위한 필수이수 성교육이라고 해야 성범죄를 예방하는 성희롱예방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등밖에 없다. 우리가 소소하게 가지고 있는 성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친구들끼리 희희덕거리며 푸는 게 전부다. 문제가 건강이나 성병과도 연결될 여지가 있을 때 친구들과의 결론이 언제나 옳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위험하다. 이 책의 101가지 목차를 보고 있으면 성에 대한 궁금증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교육이 빈약한 우리 나라의 성인들에게도 희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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