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와 달리 속내를 곧이곧대로 말한다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론 여자들처럼, 그 난이도가 아랍어와 또이또이하다는 XX염색체 어족의 '여자인간언어'를 일상다반사로 구사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특유의 반어법("나 화 안 났어.", "그래, 재밌게 놀아.")에 뒷통수를 맞거나, 언어 구사자의 평소 생활 패턴과 취향을 사전 조사하여 말의 맥락 및 해답까지 도출해야 하는 수고(아무거나 먹자)를 할 일은 없다.
 
다만 남자인간의 언어 반응에의 해독이 필요한 경우는 대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평소 남자들의 말은 아랫도리에서 입까지 직행편으로 운행된다 믿고 있던 여자인간들이 이 특수한 상황에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아래 약식의 <남자인간반응해독매뉴얼>을 제공한다.
 
그 특수한 상황이라는 건 다름 아닌 '섹스 후, 남자가 현자모드에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 보편적으로 첫 섹스 혹은 원나잇 섹스 이후에 발생할 확률이 높다.
 
자, 아래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섹스 후, 남자가 말이 없다. (혀를 너무 놀린 탓에 잠깐 쉬는 걸 수도 있다.)
 
여자인 당신은 묻는다.
 
“무슨 생각해?”

 
그러면 남자는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하나, 남아일언중천금형
 
반응: 계속 침묵한다.
해독: 술이 깼다. 그리고 당신의 존재를 막 알아챘다.
 
둘, 색즉시공형
 
반응: “아무 생각도 안 해.”
해독: 사정을 너무 빨리 한 것에 자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신의 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기합리화 중이다.
 
셋, 반사형
 
반응: “넌 무슨 생각하는데?”
해독:  당신의 이름을 까먹었다. 머릿속으로 당신의 이름을 검색 중이다.
 
“웅- 미숙이는 배고프다는 생각해쩌염.” 하는 식으로 덫을 놓아 보라. 바로 “아, 우리 미.숙.이.- 배곱흐그나.” 라고 반응하면 100%다.
 
넷, 본질탐구형
 
반응: “그걸 왜 물어?”
해독: 당신이 다음에 또 보자고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내친 김에 집 주소도 넌지시 물어보라. 시나 구 단위로 답한다면, 오금을 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섯, 박리다매형
 
반응: “네가 참 예쁘다는 생각.”
해독: 10분만 쉬었다가 한 번 더 할 건데, 가능하면 펠라치오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
 
여섯, 애정결핍형
 
반응 : “사랑해.”
해독 : 남친일 경우, 당신이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나 싶어 으레 겁먹은 것이다.
원나잇 상대일 경우, 미친 새끼다. 도망쳐라.
 
물론 위의 해독이 100%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참고만 하라.
 
위 메뉴얼을 보고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불만을 쏟아낼 남자인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건 뭐 어쩌라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다만 자존심 때문에 본인은 저 여섯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주체적 개성남이어야만 하겠다는 남자인간들을 위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답은 사실 첫 꼭지에 이미 나와 있다.
 
섹스가 끝났으면, 무슨 말이든 해라. 여자가 “무슨 생각해?”라고 묻기 전에. 
 
잡담도 좋고(실은 잡담이 제일 좋다), 가당찮은 미래설계도 좋으니, 무슨 말이든.
 
여자인간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섹스 후에 곧바로 나불대는 건 남자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라는 거, 잘 안다. (어쩌면 섹스 후에 이내 담배를 피워 물거나 뭘 처먹거나 하는 건, 말 안 해도 될 핑계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해라.
 
정 할 말이 없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봐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