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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vs.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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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 메뉴를 정할 때, 대개는 상대방의 의사를 묻고 함께 결정한다. 물론 일단 식당에 들어간 후에는 각자 취향에 맞는 요리를 고를 수 있다. 그런데 섹스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흘러간다. 섹스의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때도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상대방을 아직 잘 모르는 경우 식사든 섹스든 입장 후에 그 메뉴판 중에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식사의 경우 상대방이 메뉴를 보고 일상적이고, 개방적이고, 당연하게 선택하도록 한다. 또 그런데, 섹스의 경우 메뉴판도 없거니와, 섹스 특유의 폐쇄성에 떄문에 자기가 원하는 섹스에 얘기하는 건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이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진 두 행위 중 하나는 당연하고 하나는 부당하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사회적 젠더이론이요. 두 번째는 생리적 관점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백 번째를 거쳐 이 이야기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팽팽히 맞서온 문제이다. 나는 여기에서 ‘상실(혹은 실망)’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내 비록 심리를 전공하거나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식사와 섹스라는 행위를 비교해 볼 때, 그 행위로 인한 상실의 비교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식사에 실망하는 경우 그 상실감은 크지 않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 섹스에 실망하는 경우와 그 상실감을 생각해보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훨씬 소중한 것(심지어는 고귀한 것)을 잃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 또 그 상실감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개념’들이다. 이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자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하거니와 나의 능력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내고 언어라는 체계 속에서 살아온 지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섹스에서 오는 상실감에 관한 관심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살아남아 유통되는 섹스 경험담을 ‘충족’과 ‘상실’로 나누어 볼 때, 단연 충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충족의 섹스 경험담은 남녀와 혐오의 문제를 떠나 판타지를 생산한다. 그 판타지는 원초적이기도 하고 합리적이기도 하다. 심지어 온갖 허구가 가미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유사품으로 야동을 들 수도 있다. 그 상실감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섹스의 해방이다. 非 일상성, 폐쇄성, 부당성뿐 아니라 섹스의 포지션까지 해방해야 한다. 사랑과 연애, 결혼의 하수인으로서의 섹스가 아닌 소통과 약속의 섹스. 상호존중과 이해, 끊임없는 발전의 대상으로 섹스는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홀릭스는 그 변화의 시작을 함께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곳에 실전적인 내용뿐 아니라, 섹스에 대한 본원적 토론과 의견이 활발하게 소통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ㅣ PleinSoleil 원문보기▶ http://goo.gl/GQtke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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