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라면 한 번쯤 공감할 만한 일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다 일어난 내 머리 왜 이렇게 섹시한 거니? 어떻게 된 게 미용실에서 세팅한 머리보다 더 잘빠지게 된 건지? 적당한 가르마에 덧칠해진 윤기와 절제된 세팅력. 이보다 더 환상적인 연출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르시즘에 빠지는 비율은 여성보다 남자가 압도적일 정도로 남자들의 자아도취는 상상외로 심각하다는 게 정설이다.
 
웬만한 남자들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특히 화장실 내 형광등 아래에서의 자신의 모습에는 유독 냉철한 객관성을 발휘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거기에다가 샤워하는 도중 거울에 은은하게 서린 수증기 아래 베일에 싸인 자신이란, 아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이해가 되지 않는 여성들을 위해 덧붙여 말하자면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어떤 여자라도 지금 당장 꼬실 수 있을 것만 같은 근자감, 포텐 충만, 근발기(근자감 풀발기) 상태에 빠진 거라는 것만 알아두면 되겠다.
 
남성의 근자감을 업시켜주는 훌륭한 아이템인 수증기의 기특함이란. 수증기는 내 얼굴만이 아닌 저질스런 몸도 완벽히 커버해주면서 흐릿한 윤곽으로 자신을 채색해준다. 술, 담배로 무장한 아랫배도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수증기 앞에만 선다면 천하무적 호날두도 저리 가라다. 포토그래퍼가 내 앞에 없다는 게 한이 될 정도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남자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에 끝없이 찬양을 늘어놓는 종족이면서도 유독 ‘한 부위’에 있어서는 이성적이면서도 때로는 절망적인 시선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치챘는가? 맞다. 남자의 분신이라 불리는, 남성성의 대표적 상징인, 페니스다.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쩌다 사우나에 가면 샤워기 앞에 물줄기를 맞으며 흐릿해진 거울의 수증기를 애써 물로 잠시 지우고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특히나 면도하고 나서 거품을 물로 닦은 다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 아저씨. 그 아저씨는 다른 아저씨에 비해 샤워기 앞에 서 있던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미남형 얼굴에 키도 컸던 거로 기억한다. 머리는 여성의 단발 리보다 조금 더 길었던 거로 기억된다.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눈을 살포시 찌 뿌리며 물줄기를 맞는다. 마치 거울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치르는 신성한 의식의 한 종류와 같았다.
 
이제 본격적인 의식에 앞서 뿌옇게 변해버린 거울에 물을 뿌린다. 베일에 싸인 자신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조각 같은 얼굴과 단단한 몸 조각이 잠시나마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거린다. 애석하게도 거울은 자신의 형상을 길게 비춰주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신성한 의식으로 돌아가 물줄기에 자신을 내맡기고 이어서 다시 거울에 물을 뿌리는 식으로 의식은 진행되어 간다. 나는 탕 안에서 그렇게 아저씨의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가 아저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를 기준으로 대략 45도 정도였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그렇게 사선으로 아저씨의 모습(측·후면)을 지켜보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뒤로 돌아서며 자신의 섹시함을 완전히 내게 노출시키고 말았다. 남자인 내가 왜 그 당시 여자도 아닌 잘생긴 한 남자의 행동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느냐고? 불행히도 그 남자는 일명 ‘번데기’의 소유자였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다른 성인 남성들에 비해 많이 귀여운 구석이 있는 ‘물건’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당시의 어린 나에겐 하나의 우상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
 
나는 그 당시 엄마가 어디에서 구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스트라이프 바지를 입고 다녀야만 했다. 스트라이프 바지가 뭐 어때서? 문제는 심하게 쪼여오는 일명 쫄바지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반바지였다. 따라서 아무리 어린아이의 ‘그것’이더라도 나의 ‘남성’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의도치 않게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왕자지, 왕 불알 어쩌고저쩌고. 이상하게도 그 당시 동네 애들은 자지가 작은 게 마치 축복이나 되었다는 듯이 굴었다. 자지가 남들보다 큰 녀석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재수 없게도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내 사이즈가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컸던 것도 아닌데, 문제의 옷으로 인해 내 ‘남성’은 유난히 도드라질 수 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짓궂게 나의 ‘물건’을 만지고 도망가거나 여자애들 앞에서 놀려대곤 했다. 나는 그때 정말이지 심각한 성적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저씨의 모습은 하나의 우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키에 조각 같은 몸매, 거기에다가 귀여운 ‘남성’의 소유자. 아니 우상을 넘어서 구원자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뜨거운 탕 안에서 멍하게 쳐다보았던 아저씨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겼는데 도대체 왜 사우나의 거울은 전신이 아닌 남자의 상체만 비춰지게 만든 걸까? 거울을 기다랗게 만들면 전신의 몸을 감상하며 샤워할 수 있으니 더욱 즐거울 거 같은데 왜 어느 사우나를 가도 탕 안의 거울은 항상 조그맣게, 기껏해야 상체 정도만 볼 수 있게 붙어있는 걸까? 이 궁금증은 내가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남성의 나르시즘에 있어 가장 커다란 방해물은 바로 페니스였으니 말이다.
 
한창 웨이트 운동으로 몸을 키울 때 나 역시 샤워하면서 거울 보는 재미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루하루 커지는 근육들은 나뿐만이 아닌 상대방에게도 인정받는, 물론 마지막까지 인정해주는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객관적인 성찰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런 성찰의 결과물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어느새 십여 년 전의 아저씨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나르시즘의 취기는 머리를 말리러 드라이기 앞에 서는 순간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샤워실의 은은한 형광등 아래에서의 거울 속의 나와 좀 더 노골적인 백열등을 등에 업고 위압적으로 세워진 듯한 거울 속에서의 나. 어떻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것은 빛깔의 차이도, 거울 사이즈의 차이도 아니었다. 바로 페니스가 비치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훌륭하게 다듬어지고 조각된 내 몸 중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부분’. 그 차이는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옆에 볼품없는 몸매의 어떤 중년 남성의 도톰하면서 휘어진 활 같은 형상의 페니스와 비교해보면 나의 나르시즘은 이미 김빠진 사이다와 같이 퇴색된 달콤함만 남은 꼴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나는 이미 그에게 나르시즘을 빼앗기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극히 평범한 페니스를 지니게 된 배경의 연유에는 어린 시절의 성적 콤플렉스로 인한 잠재의식의 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은 나를 위한 잠재의식의 발현. 거기에다가 덧붙이자면 그로부터 일 년 뒤에 행해진 포경수술. 지금도 당시의 수술 소리와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데, 마취 후에 들려오는 사각사각 가위질 속에 잘려나가는 나의 표피들과 꿰맬 때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날카로운 바늘의 관통. 마취 중에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관통의 느낌은 마취가 풀렸다는 반증임에도 나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의사는 엄살이 심하다며 계속 수술을 감행했었다.
 
나도 모르게 성기에 대한 나의 관념은 이때부터 어두워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혹시라도 나의 자식, 그중에서 아들이 태어난다면 절대로 포경수술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포경은 사춘기가 지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되는데, 발기 상태가 아닌 평상시에도 인위적으로 귀두를 감싸는 표피를 까주는 습관을 들이면 수술 없이 비교적 깔끔하게 페니스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수술 없이 평상시에도 귀두가 노출된다는 말이다. 귀두 테두리를 감싸는 주름진 표피가 장식으로 되어있는 것은 보너스이다.
 
남성이 페니스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남성성의 ‘상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상에서 페니스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뒤이어 달리는 댓글 들을 보면 대한민국 남성들의 성적 콤플렉스를 확실하게 엿볼 수 있다. 성적 콤플렉스에 대한 방어 기제 속에서 인터넷상에선 누구나 변강쇠요 대물로 활동하게 되는 것. 우스울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인터넷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래서 인터넷의 본질은 어쩌면 ‘허세’일지도 모르겠다. 상상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검증받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의 속 빈 강정과 같은 허세.
 
글이 어쩌다가 기승전’자지’로 흐르게 되었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그럼에도 남성의 나르시즘은 아름답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남자만이 아닌 인간의 나르시즘은 아름답다.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팍팍한 세상 속에서 잠시만의 나르시즘에 빠지는 여유를 앗아간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자기가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누구에게 사랑받는다는 게 바로 모순이며 끊임없이 확인을 구걸하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게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상대방을 달달 들볶기 전에 스스로를 칭찬해주며 확인해주자. 나란 녀석 참 멋지다고. 아니 아름답다고 말이다. 이참에 내 육체와 영혼에 모두 찐한 키스 한 방을 날려주자. 평생 잊지 못할 찐한 키스를 말이다. 믿을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스스로에 감동하면 자신에게 맞는 짝이 절로 다가온다고 한다. 덧붙여 육체도 그에 맞게 진화한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가? 그럼 안 믿어도 좋다. 다만 나는 강력하게 믿어서 현실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나의 나르시즘에 취한 그대를 기다리며 오늘도 욕실에서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우리 모두 육신(肉身)을 바라보며 ‘자신(自神)’감을 키워가는 사람이 되어보자.
 
 
Ps
자신감(自信感)과 자신감(自神感)은 다르면서도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하는 단어다. 스스로를 믿으면 결국 자기 자신이 신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나쁜 마음, 말을 쓰지 말고 좋은 말,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 보자. 산모가 태아에게 좋은 것만 들려주고 싶듯이 우리 영혼도 스스로에게 좋은 것만 내주고 들려주고 싶어한다. 사실 이게 영혼이 육체와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겠다. 다만 영혼은 그저 바라보면서 자신이 깨어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걸지도. 그러니 오늘 하루도 감사히 여기며 자기 전에 샤워하면서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고 도장 한 번 찍어주자.
 
 
글쓴이ㅣ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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