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스카이폴]
미옥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맥주를 다섯 통 이상이나 마셨다. 미옥은 난처했다. 다시 화장실을 가자니 강 건너 저편이라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근처에는 오줌을 눌 만한 곳이 없었다. 미옥은 가남에게 화장실을 가자고 했다. 화장실을 가려면 밧줄을 풀고 다시 노를 저어 강 저편으로 가야 했다. 시간도 20분은 족히 더 걸리고 힘도 들어야 한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미옥을 보고 가남은 킥킥거리며 장난을 쳤다.
“미옥씨 나 보는 데서 오줌을 누면 내가 그 오줌을 마시지”
미옥은 황당했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미옥은 황당하면서도 거칠 것이 없는 가남이 귀엽기도 했다. 설마하니 가남이 자기 오줌을 마시랴. 다만 화장실이 없는 여기 사정을 이용해 여자가 오줌을 누는지 못 누는지를 시험해 보려는 것 일거야. 미옥은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오기와 함께 장난끼가 동했다. 까짓껏 등 돌리고 오줌 한번 누면 되는 거야. 대신 저 남자가 오줌을 못 먹기만 해 봐라. 한방 갈길 껀수가 생기는 거지. 미옥은 태연했다.
“그러죠 뭐. 대신 못 마시면 어쩌죠?”
가남은 의외의 대답에 속으로는 놀랐면서도 태연하게 농을 걸었다.
“이따가 내려서 역까지 업어드리죠”
여자를 업고 가도 가남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다. 십분 거리라 좀 멀기는 해도 몰랑몰랑할 것 같은 미옥의 엉덩이를 합법적으로 만질 수 있다는 답이 나왔다. 오줌은 몸이 버리는 것 중 가장 많은 양이다. 대부분 물이고 요소와 무기염류 아미노산 홀몬과 많은 종류의 미량물질 등이 들어 있다. 오줌은 동서양에서 모두 비약으로 써 왔다. 요즘 오줌을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한 일본의 책자가 나와 있지도 않은가. 오줌은 실제로 깨끗하다. 오줌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줌누기훈련의 결과 생긴 잠재의식이다. 그래. 먹어보는 거야. 못 먹어도 여자를 업고 갈 수 있으니 좋고 먹으면 이 여자 나를 달리 볼거야. 아주 더럽게 보든지 아니면 아주 남다르게 볼거지. 손해는 없다.
“그럼 내가 오줌을 마신다면 미옥씨는 뭘 걸겠어요?”
“누가 마시랬어요? 난 뭐 걸 게 없는데”
“그럼 미옥씨는 입술을 주세요”
“입술요? 드리죠 뭐”
미옥도 가남도 말을 해 놓고는 둘 다 서로 놀랐다. 술 기운에 분위기 때문에 말이 말을 낳아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을탓이라고 미옥은 생각했다. 햇살은 따뜻하고 가끔 물살을 가르며 수상스키가 지나가고 그 물결로 배가 출렁거리며 능글맞는 가남의 대화에 홀려 미옥은 평상시의 마음이 아니었다.
“근데 오줌을 어디에 누어요? 그냥 이 배 위에 누어요?”
“아 그럴 수는 없지요. 간이요강을 만들어 드리죠”
가남은 배에 준비되어 있는 바가지를 주었다. 노란 프라스틱으로 된 바가지는 FRP 배지만 노를 저을 때 튕겨져 들어오는 물을 퍼내기 위한 도구였다.
“미옥씨 엉덩이에 비하면 조금 작지만 여기에 누세요”
“아니 내 엉덩이를 언제 보았다고 그런 실례의 말을 해요?”
“꼭 보아야만 압니까? 보지 않고도 척 하면 다 알아야죠”
미옥은 기가 막혔지만 터질 것 같은 방광 때문에 진저리를 칠 정도이니 도리가 없었다. 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저 남자 앞에서 엉덩이를 깐다는 것보다 오줌을 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이삼십 분을 견딜 도리가 없었다.
“알았어요. 대신 뒤돌아서세요. 보지 말구”
“뭐 보기 좋은 구경이라고 봅니까? 염려 붙들어 매세요”
가남이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고물에서 내려온 미옥은 몸을 돌리고 바지를 내렸다. 쏴악! 하면서 세찬 물줄기가 바가지에 쏟아졌다. 가남은 돌아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미옥의 쪼그려 앉은 하체를 그리고 있었다. 평소에 여자가 오줌 누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던 가남은 지금 미옥을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가남은 고개를 돌려 살짝 미옥을 보았다. 히멀건 동그란 엉덩이만 보였다. 등이 굽은 미옥을 보고 가남은 불뚝 성욕을 느꼈다. 얼른 고개를 돌린 가남은 어린 계집애들이 오줌을 누는 장면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배가 잠시 흔들리더니 미옥이 큰소리를 쳤다.
“자, 이젠 가남씨 차례에요. 못 먹기만 해봐라”
미옥이 건네준 바가지에는 절반 가까이 누런 오줌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가지 바닥을 통하여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고개를 숙여 입을 대 보니 지린내가 확 풍기면서 왈칵 속이 올라왔다. 억지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가남은 태연했다.
“거럼요 당연히 마셔야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가남은 짧은 순간에 머리를 굴렸다. 오줌이 뜨뜻하니까 김이 올라와서 더 지린내가 나는 것이다. 오줌을 차갑게 하면 된다. 어떻게든 미옥의 오줌을 마시면 양단간 결정은 난다. 이 여자가 더럽다고 나를 안 만나든지 기막힌 남자라고 애인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큰 손해는 없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가남은 근사한 꾀가 떠올랐다. 처음에 배를 탈 때 가게에서 사온 음료수 패트병이 보였다. 빈 패트병 뚜껑을 연 가남은 바가지의 오줌을 패트병에 부었다. 여자라 그런지 오줌의 양은 많? 않았다. 패트병 절반이 찼다. 가남은 배의 뾰족한 이물쪽으로 갔다. 배의 이물에는 강가의 고정밧줄에 배를 묶어놓기 위한 밧줄이 매달려 있다. 나무에 묶어놓은 밧줄을 푼 가남은 밧줄을 얇은 가닥으로 풀러 뚜껑을 막은 패트병의 목에 묶었다. 그리고 패트병을 물속에 던졌다.
“아니, 마시랬지 누가 강물에 버리랬어요?”
“염려 놓으십시오. 귀한 분의 귀한 몸의 것을 마시는데 그리 쉽게 마시면 쓰겠습니까?”
“그럼 어찌하려구요?”
“조금 있으면 강물이 온통 황금색으로 출렁일 겁니다. 그때 근사한 아리아 한 소절과 함께 축배를 들어야죠”
<중간생략>
미옥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옷매무새를 고치고 모자를 고쳐 썼다. 이물로 간 가남은 밧줄을 끌어당겼다. 아까 던진 패트병이 올라왔다. 가을 강물에 차게 냉각이 되어 손이 시릴 정도로 패트병이 찼다.
“미옥씨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사랑이 완전하기를 위하여”
가남은 패트병 뚜껑을 열고 오줌을 마셨다. 김 빠진 맥주맛이었다. 지린내가 나거나 짜거나 이상한 맛이 아니었다. 간이 아주 딱 맛았다. 오줌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꼭 김 빠진 맥주맛이었다. 저 이쁜 여자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야릇했다. 목이 마르던 가남은 패트병의 오줌을 삼분의 일이나 마셨다. 아까 빨아대던 미옥의 침과는 정반대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침은 미끈거리고 달콤하고 약간의 점착성이 있는 조청이라면 오줌은 향기가 있고 차고 싸한 청주맛이었다.
미옥은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 마시듯 꿀꺽꿀꺽 자기의 오줌을 마시는 가남을 보았다. 기가 찼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오줌을 마시는 남자가 다 있네. 저 남자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오줌을 마실까. 아무튼 연구대상의 남자였다. 완전한 사랑을 위하여라니. 배 한번 타고 오줌을 마셨다고 완전한 사랑을 외치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 그러면서도 미옥은 어쩔 수 없이 끌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보다 그런 상황이 신기했다. 미옥은 몇 년째 남자의 향기를 접하지 못했다. 남편과 별거한 지 오 년 뒤쯤에 우연히 한 남자와 잠시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미옥은 아까의 키스를 생각하면서 저 남자를 잠시 연구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 소설 애인열전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