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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봄이 되면, 봄빛에 연하게 빛나던 J의 갈색머리카락과 같은 색 눈동자, 그리고 교정을 뒤덮던 라일락 향기가 한꺼번에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J와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 일거다. J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열병처럼 첫사랑을 앓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J와 나는 단짝 친구였다. 열 세 살 여자아이들에게 우정이란 해병대 할아버지의 전우애보다 절실한 것이어서, 우리는 우정반지를 맞췄고 매일 교환 일기를 썼고 같이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같이 성에 눈을 떠갔다. 누구도 J와 내가 매일 야한 만화책과 그 애 부모님이 숨겨놓으신 성인비디오를 보는 줄 몰랐다. 나는 그만큼 조용했고, J는 그만큼 청순했다. 그렇게 붙어 다녔던 우리는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배정받고 한달 반이 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토요일, J가 집에 왔다. 우리는 엄마의 수 차례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수다를 멈추고 샤워를 했다. J의 하얀 피부가 따뜻한 물에 핑크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게 귀여웠다. J는 자신의 가슴이 예쁘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내 가슴보다 훨씬 더 큰 J의 가슴을, 그녀 몰래 계속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아니야. 너 르누아르 그림 알지. 그 그림에 나온 여자들처럼 가슴이 예뻐.” J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나는 좀 더 ‘친구’ 답게 대꾸하지 못한 내 입을 원망하며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렸다.
샤워를 마치고 J와 나는 침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누구의 새 학교가 더 안 좋은지 경쟁하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서로 장난이 붙어서 손발을 못 움직이게 누르고 간지럼을 태우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가슴을 터치하며 몸싸움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고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시끄럽게 굴었던지 엄마가 문을 벌컥 열었다. “얘들아, 좀 조용히 해라, 옆집 다 잔다.” J와 나는 그렇게 들떴던 게 멋쩍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헝클어진 이불을 밑으로 들어가서 비밀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비밀 이야기는 키스 이야기로 넘어갔다. 프렌치 키스, 버드 키스, 입에, 목에 하는 키스. 우리는 누구와 첫 키스를 할까, 평생 몇 명과 키스 할까, 영영 못하면 어떡하지.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언제 커서 키스를 하게 될 지였다.
‘대학가서?’ ‘드라마 보니까 스물일곱 살쯤 결혼할 때일걸?’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어떤 느낌일까,’ ‘부드러울 거야’, ‘물고기를 입에 넣는 느낌?’ ‘우웩’ ‘근데 어떻게 혀를 넣지? 으,’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J가 “OO야” 하고 나를 불렀다.
“응?”
“키스해줘.”
내가 잘못 들었나? 심장이 땅에 떨어지듯 쿵쿵거렸고 귀에서는 벌이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J는 그녀에게는 무척 드문,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그 작은 입술이 궁금했다. 나는 입술을 한번 꽉 깨물고 왠지 모를 오기로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맞닿은 그녀의 입술은 포근하고, 축축했다. 그리고 초콜릿 아이스크림 맛이 났다. 그녀의 윗입술, 아랫입술에 차례로 아주 천천히 입을 맞췄다. J를 만지고 싶었지만 몸이 굳어서 손끝도 대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 몸을 맞대고 정신 없이 입술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불이 홱 들춰졌다. 우리는 급하게 몸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너네 뭐하니! 얘들이 덥지도 않은 가봐.” 엄마였다.
옆을 보니, J의 붉은 뺨과 이마에 축축한 갈색 머리카락이 찰싹 붙어있어서 그 와중에도 무척 야하게 느껴졌다. “엄마! 지금 우리 비밀얘기하고 있었단 말이야. 방해하지마. J, 내일 집에 가야 되잖아.” 나는 엄마에게 징징거렸다. 엄마가 어련하겠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엄마 잔다. 니들도 얼른 자.” 하고 문 닫고 나갔다.
“너 입술 엄청 빨개.”
J는 대꾸도 없이 이불 밑으로 나를 끌어 당기더니 다시 내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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