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에게 달려든다. 막무가내로 여성에게 대드는 이 사내는 연신 키스를 퍼부으며 잔뜩 뒤틀린 여인의 허리를 힘차게 감싸 안고 있다 이 거친 시내는 숨쉴 틈조차 허락치 않고 한 손으로 여인의 치마 위에서 바로 여성의 깊은 곳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당황한 여인이 이 순간을 밀쳐내려 하지만 정작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내용만큼이나 과감하고 거친 색의 사용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야수파의 영향을 살필 수 있는 강한 보색의 사용과 넓은 색면을 이용한 작가의 의도는 주제에 걸맞는 형식을 찾으려 했던 고민의 흔적으로 보인다 푸른 벽면과 암갈색의 바닥면 대비. 붉은 치마색과 여인의 초록 윗도리는 단순할 정도로 이 그림을 장악한 조형의 완결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려야 할 것과 보여주어야 할 것만 그리는 화가의 임무{?)에 매우 충실했던 피카소답게 이 그림에서도 세세한 설명과 묘사가 생략되고 있다. 상징 또한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여성을 공격하는 손에 두터운 필치를 사용했고 얼굴에 강한 명암대비를 주어 강한 남성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인은 크게 웃고 있다. 왠지 이 상황이 즐겁고 덤벼드는 사내가 밉지 않다. 피카소는 여인의 이와 같은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남성을 밀쳐내는 여인의 팔을 평면화시켜 약한 느낌을 주었다. 크게 흔들리는 여체의 리듬있는 표현은 간결한 선과 속도감 있는 붓터치로 마무리 되어 있다.
이상은 심지출판사의 에로스 엿보기에 실린 그림의 평이다.
성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남녀에 따라 다르다. 고려 때만 하더라도 일반 서민 남녀의 성의식은 상당히 개방되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의 남녀는 다르다. 삼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모처럼 곱게 꾸미고 길을 나섰는데 아무 남자도 휘파람을 불든지 야 끝내주게 이쁘다 라든지 등등의 히야까시(희롱)을 하지 않으면 그 여자는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서 울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여자가 맘에 안 들면 남자는 고소를 당할 판이다.
동물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가장 순리적으로 산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놈이 수놈을 고른다. 동물들의 짝짓기는 인간의 짝짓기와 다르다. 분명 인간도 동물에서 진화되었든지 창조되었을 텐데 인간은 동물과 달리 수놈이 암놈을 고른다. 동물은 수놈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갖은 정성과 재주로 암놈을 유혹하고 암놈은 가장 자신의 새끼를 키우기 좋은 조건의 수놈을 골라 마침내 꽁무니를 열어준다. 건강하고 힘있는 우성유전자만이 계속되어 그 종족을 번영시킨다.
왜 인간만이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는가? 왜 여자는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갖은 애교와 유혹으로 남자의 꼬심을 기다리는가? 무엇이 동물과 사람의 짝짓기를 뒤바꾸어 놓았을까? 여러 학설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잉여재산을 완전한 자기 새끼에게 물려주려는 남자의 본능이 여성의 정절을 강요하였고 임신을 해야 하는 여성의 생리구조가 여성의 예속을 초래했다. 즉 피땀 흘려 만든 재산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려는데 여성이 낳은 자식이 누구 자식인지 애매할 경우 남자들은 여자를 감시하려고 한다.
둘째 인간은 육아기간이 어떤 동물보다 길다. 이삼십 년을 돌보아야 한다. 그러자면 여자는 의식주를 책임지는 남자를 계속 붙잡아야 한다. 그 방법이 남자를 성적으로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은 동물과 달리 발정기가 없고 언제나 성적으로 대기상태가 된 것이다.
셋째 남녀의 일이 분업이 되었다. 남자는 밖에서 벌어서 안으로 들여오고 여자는 안에서 가사와 양육을 맡게 되었다. 이런 서너 가지 이유로 인간 여자는 동물 암놈과 달리 수놈 인간을 꼬시기 위해 가꾸고 기다리고 선택되는 예속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천지가 개벽을 한 20세기에 들어서 여성들은 반기를 들었다. 정치적인 힘이 우선이었던 시절에 정치인들은 여성표를 의식하여 여성을 위한 입법을 깊은 연구 검토도 없이 졸속으로 베풀었다. 정치적인 여성해방은 곧 경제해방으로 이어졌다.
재봉틀의 발명으로 여성들이 의생활에서 해방이 되었고 이와 비슷하게 각종 가전제품의 발명으로 세탁, 요리, 주방 등의 분야에서 여성의 인력이 옛날의 오분의 일로 줄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정보사회가 열리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속도로 늘었고 많은 분야에서 남녀의 차별이 사라지고 있다. 더군다나 여자는 남자 몰래 마음대로 아이를 낳고 안 낳고 지울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여자들은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성 해방이다. <우린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법이 금지해 주어야 한다.> 이에 따라 여성은 성적으로 즐길 수도 있고 맘에 안 드는 남자는 법에 의해 처단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삼 십 년 안에 이렇게 변해버린 사회의 가치를 교육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교육은 종전대로 남자 여자 구별이 있고 세대에 따라 나이 든 세대일수록 종전의 가치를 고수하는 괴리현상도 생긴 것이다. 바야흐로 동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젠 남자는 수놈 동물처럼 가꾸고 꾸미고 기다리고 여자들은 남자를 고르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동물적이고 합리적일지라도 너무 급격한 변화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머리가 빙빙 도는 것이다.
우리 남자들은 잘 알고 있다. <안 돼요 돼요 돼>의 전설을. 많은 여자들은 (요즘 여자들은 빼고) 자신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자신은 당한 것으로 치부하고 인정이 되면 참았다. 돼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이 처한 사회와 문화는 그렇게 가르치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안 돼요 돼요 돼. 아! 얼마나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이 가치의 급격한 변화에서 울고 희생을 당하랴. 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림의 저 여자가 하는 말 - 나는 잘 들린다
안 돼요 돼요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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