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여운 여인]
수컷이란 동물이 으레 그렇듯 남자들은 애인이 생기면 곧바로 ‘섹스’의 시점을 상상하곤 한다. 요즘은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다지만, 보통 점잖게 만나서 점잖게 섹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럼 언제, 어디서? 라는 물음표가 남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테다. 여자친구와 설레는 첫섹스를 손잡고 모텔가서 하기도 민망하겠고, DVD방은 낭만이 부족해보이지 않나? 그렇다면 100일 기념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그림이 될 것이다. 여행까지 간 마당에 잠을 잘 땐 어차피 한 이불 덮을 테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남자는 여자를 사귄 후, 100일 기념 여행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날 무슨 속옷을 입고, 콘돔은 어떻게 꺼내지 하며 세상 끝난 것 마냥 김치찌개를 끓인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망의 100일 날 밤. 그야말로 여자는 이탈리아 빗장수비를 보여주게 된다. 이런 젠장. 과연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분명 순탄한 스킨십에 이어 순탄한 섹스가 되리라 생각했던 남자의 기대가 처참히 내동댕이쳐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남자들은 여자친구가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 말함은 곧 섹스의 허락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탑재하고 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내장되어있던 것이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가 무의미하다. 딥키스를 할 때도 손이 올라가려는 것을 참고 참으며 100일까지 기다린 당신. 진심으로 수고했다. 그러나 이제 여자친구가 1박 2일을 말할 때는 쾌재를 부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여자의 입장이라면 남자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함은 백이면 백 그날 밤에 섹스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남자가 말한다면 축하할 일이다. 당신은 외계인과 사귀는 중이니까.
어쨌든 이 땅의 수많은 연인들은, 성공적인 100일 기념여행을 위해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야한다. 여행계획이 잡혔다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대화를 통해 상대를 건드려보라. “우리 여행가기 전에 커플속옷 맞추고 그날 입고 갈까?” 하며 부끄러운 듯 살며시 던져보기도 하고 과감히 ‘월풀’이 설치되어 있는 펜션으로 예약해서 상대에게 확실히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괜스레 방심하고 있다가 빗장수비에 무너져내리는 일이 없도록, 항상 각성상태를 유지하시길.
그럼 이제 반대로 만약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친구와 1박 2일로 여행은 가고 싶은데 아직 섹스에 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남자친구가 실망하고 관계가 소원해질까봐 혼자 끙끙 앓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럼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고 상대에게 당당히 말하면 된다. 다만, 주의할 점은 여행 당일 날 막판에 가서 남자가 팬티까지 내렸을 때 그걸 말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남자도 준비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화를 하는 게 좋다. 그럼 처음에는 툴툴대겠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친구라면 당연히 이해하고 지켜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는 1박 2일의 허락이 섹스의 허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섹스든 뭐든 대화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섹스도 언제나 설렌다. 두 공통점이 맞물리는 아주 중요한 날에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대화가 필요하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상대의 의사를 묻고 이해해보자. 그러면 여행과 섹스의 설렘을 모두 그대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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